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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음감 Jan 26. 2022

엘사와 다윗은 같은 편

소년 다윗과 사울 왕

2013년, 겨울왕국의 엘사가 전국의 영유아를 강타한 시절. 놀이터에 나가면 무슨 군무하듯 다들 손에 잡힌 뭔가를 뿌리며 레디꼬~ 를 외쳤다.


레디꼬 시절에 4살이었던 큰 아이는 초등학생이 되어 겨울왕국 2의 주제가 ‘인 투 디 언논~’을 하루 종일 부른다. 렛잇고에서 렛잇고 말고는 다른 가사 없던 것처럼 이번 노래도 마찬가지다.


렛잇고야 4살 때였고 혀 짧은 한국말 할 때니 귀여웠다. 옆집 누구는 영어 챕터북을 줄줄 읽는다는 지금은 오로지 인투디언논~ 만 목놓아 부르는 게 영 못마땅했다. 그래도 괜히 말 잘못 꺼내면 싸움이 되니 조용히 컴퓨터를 켜서 가사를 다운로드하고 번역과 그림도 첨부해 출력했다. 아이에게 내밀며 상냥하게 말했다.


“인투디언논 만 하면 지겹지 않아? 앞뒤로 다른 부분도 좀 해 봐. 엄마가 정리했어”


아이가 쓱 보더니 하는 말, “엄마, 핸드폰 멜론 좀 줘 봐”


성의껏 만든 워크시트는 5초 만에 무시당하고 아이는 내 폰을 가지고 들어간다. 내 귀는 거대 깔때기가 되어 아이 방문에 붙었다. 대체 어쩌겠다는 건지.




소년 다윗은 아버지 심부름으로 전쟁터에 갔다가 골리앗이 이스라엘 군대를 조롱하는 말을 듣는다. 여기에 분노하며 본인이 골리앗을 상대하겠노라고 앞에 나선다. 


이 패기에 감동한 사울은 허락의 의미로 왕의 군장비를 준다. 머리에는 놋 투구를 씌워주고 몸에는 갑옷을 입혀 허리에는 왕의 칼을 채운다. 몇 발자국 걸어본 다윗이 다시 말하기를,


"이런 무장에는 제가 익숙하지 못합니다. 이렇게 무장을 한 채로는 걸어갈 수도 없습니다"


이러더니 왕의 군장을 다 벗었다. 그저 자기가 쓰던 새총 잡이 비슷한 걸 들고 적장 장수에게 나간다.


골리앗을 마주한 다윗은 그가 쓰던 돌멩이를 골리앗의 이마에 정통으로 맞췄고 골리앗은 쓰러진다. 골리앗이 쓰러진 걸 보고 당황한 블레셋 군사들은 도망갔고 이스라엘이 승리한다.




내 핸드폰을 가지고 간 아이는 방에 콕 박혀서 종일 노래만 부르더니 발갛게 상기된 얼굴로 나왔다.


"엄마, 내가 인투디언논 부르는 거 들어봐"


엘사처럼 레깅스로 갈아입었고 이불도 끌어왔다. 나보고 이불 끝을 잡고 높이 들란다. 아이는 이불의 각도를 맞춰서 파도타기 하는 엘사를 흉내 내며 노래를 시작한다. 중간에 막 빨리 지나가는, 그러니까 나는 가사를 보고 있어도 못 따라 하는 그 부분까지 얼추 비슷하게 넘어갔다.


만일 얘가 내 워크지로 했으면 이정도로 실감나게 인투디언논을 마스터 했을까? 아닐 거 같다. 조금 하다가 때려치웠겠지. 나야 19세기 방식으로 써서 달달 외우는 게 빠르겠지만 애는 아니었다. 사울의 전투 방식과 다윗의 전투 방식이 달랐던 것처럼 세대에 맞는 방법은 따로 있었다. 


사울은 다윗 세대를 이해하지 못했고 나는 아이 세대를 이해하지 못했다. 이해하지 못한 어른 세대의 군장비나 워크지는 구약시대에도, 21세기에도 무용했다. 


21세기의 감성을 따라가지 못하는 어미는 아이의 말을 조금 더 자세히 들어봐야겠다. 잘 들어주면 내 앞의 골리앗을 얘가 쓰러뜨려주지 않을까?라는 기대도 해본다. 섣불리 끼어들지 말고 아이의 방식을 더 기다려야겠다. 어른의 방식이 무조건 맞을 시대는 이미 끝났다. 




사_무엘서는 사무엘 선지자 이야기가 있는 줄 알았다.

무_려 반 이 상 다윗의 이야기다.

엘_사까지 불러오는 다윗이라니

기_기막힌 연결이 감사했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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