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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음감 Jan 31. 2022

며느리가 우는 건 이상해

이상한 며느리

남편은 우리 할머니를 만난 적이 없지만 헤이리에 갈 때마다 메모리얼 파크(납골당)에 들릴 거냐고 묻는다. 지난주 헤이리 나들이에서는 설을 앞둔 주말이었으니 당연하다는 듯 그가 먼저 운전대를 돌렸다.


쨍한 추위 앞에서 하늘은 파랬고 귀가 준비를 서두르는 햇빛은 노랗게 반짝였다. 다른 날보다 방문객이 많았고 간간히 눈이 빨갛게 부은 사람들이 보였다. 노란 햇빛은 그들의 머리를 부드럽게 어루만져 머리카락이 투명하게 반짝였다.


볕바른 담장을 따라 걸어가는 남편과 아이의 뒷모습을 나는 훌쩍거리며 카메라에 담았다. 집에 와서 15초짜리로 편집해서 아빠 엄마에게 보냈다.



남편은 할머니 돌아가신 지 15년이 넘었는데 아직도 눈물이 나냐고 물었다. 길석 님은 시어머니 돌아가신 지 15년이 넘었는데 아직도 눈물이 난다고 한다. 며느리가 그러는 건 이상한 거라고 내가 말했지만 그 '아직도'를 길석 님과 공유하는 순간은 포근한 슬픔이었다. 내 몸과 마음 구석구석에 배어 있는 보이지 않는 기억이 이런 날이면 수면 위로 올라와 천지사방에 꽉 찬다. 기억 없이 어둡게 앓았던 할머니의 2년이 상상되어 다시 눈가가 짓무른다.


창문을 열었다. 체기 같았던 울음을 찬바람의 도움으로 꿀꺽 삼켰다. 함께 우는 사람이 있다는 확인으로 눈물의 뒤끝이 평온했다. 그 2년 동안 기억을 잃지 않았더라면 이런 평온을 할머니와 나눌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기도 했다.


할머니의 사진도, 기록도 남아있는 게 별로 없다. 갈수록 기억도 흐려질 거다. 헐거운 기억일망정 16년 차에도 길석 님과 나는 '아직도' 우는 동료일까. 1년 후의 일은 모르겠지만 삶에서 내쫓은 죽음이 이런 날에는 또 선명하게 새겨질 것임을 안다. 습기 없는 바람이 한 번 더 눈가를 말리고 지나간다. 창문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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