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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음감 May 23. 2022

리뷰에 리뷰 같지 않은 단락 쓰기

말장난은 아닙니다만

정보성 글을 계속 쓰다 보면 뭔가 내가 고갈되는 느낌이 들어요. 물론 정보성 글만 쓰는 게 적성에 너무 잘 맞는 분도 계실 겁니다. 그런 분은 이번 칼럼은 패스하셔도 되고요. 이번 글은 저처럼 적성에 안 맞는데 써야 하는 분들을 위한 글이거든요.


고갈을 막기 위해 제가 지난번에 예시로  그런 문단을 씁니다. 서촌 브런치 카페 갔을 때 쓴 거요. 그런 단락을 어떻게 쓰냐고 물으신다면... 일단 많이 읽자!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너무 뻔한 답이라고요?


그럼 전략적 읽기라고 바꿔볼게요.


저는 이 전략을 RTM이라고 합니다. Return to me의 약자이지요. 책을 읽었다면 읽은 데서 끝나지 않고 그걸 다시 내 것으로 가지고 와서 내 데이터베이스를 쌓는 일입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어떤 온기 하나가 먼지처럼 구석에서 자라는 게 보인다. (이승희. 어떤 밤은 식물에 기대어 울었다)


— 구석에 쌓인 먼지가 폴폴 일어나 결국 큰 공간을 차지하는 것처럼 그의 말이 내 안에서 계속 둥둥 떠다녔다.


▶말랑하고 보송한 여운을 베개 삼아 (홍예진. 매우 탁월한 취향)


 — 폭신하고 동그란 그의 말을 쿠션 삼아


▶비성수기의 바닷가는 숙명적으로 쓸쓸했다 (홍예진. 매우 탁월한 취향)


 — 방학의 집은 숙명적으로 심란했다


이런 식으로 읽는 걸로 끝나지 말고 책 속의 문장을 나의 문장으로 바꿔보는 겁니다. 표절하라는 소린 아니고요. 아이디어를 얻는 거죠.


저는 이렇게 쌓은 데이터가 A4 300페이지가 넘어요. 어느 순간부터 좀 집착적으로 이걸 하고 있더라고요. 가르쳐 주는 사람은 없는데 혼자 배우는 기분이었어요.


이게 저한테만 적용되는 건가? 싶어서 카페를 만들어서 다른 사람들과 공유를 해봤는데요. 같이 하신 분들은 이런 후기를 남겨주셨습니다.






이제부터 그냥 읽지 마세요. 그냥 읽기만 했는데 잘 쓰는 사람들은 이미 그쪽 유전자가 있는 겁니다. 그 유전자가 아직까지 발현되지 않았다면 저도, 당신도 그 유전자 없는 거예요. 쿨하게 인정하고 없는 건 RTM으로 발굴해 봅시다.


위에 발굴한 문장으로 카페 리뷰에 어울릴만한 거 몇 개 써볼까요.


-- 큰 양상추 잎을 하나 베어물었다. 어떤 생기 하나가 툭 하고 내 옆에 떨어지는 거 같았다. 무심하게 왔지만 정중히 받들어 나의 것으로 만들어보려 한다. 샐러드는 내게 그런 힘이 있다.


큰 애가 그려준 샐러드



-- 리코타 치즈의 말랑한 여운이 입 안에 오래 감돌았다. 스르륵 없어지는 리코타 치즈가 어찌 오래 감돌 수 있겠느냐만 잔잔한 재즈음악이 곁들여진 카페에서는 없어져도 있는 것 같았다. 탁 트인 통창 뷰가 주는 공간의 힘일까, 취저였던 음악의 힘일까. 그게 무엇이든지 간에 집에서는 얻을 수 없던 여운이었다. 기어이 카페까지 꾸역꾸역 나오는 내 집착의 근거일지 모른다.  


자, 쓰는 것만 신경쓰고 싶은데 수시로 치고 들어오는 방해꾼들이 있습니다. 리뷰를 쓰다보면 필연적으로 만나게 되는 에너지 뱀파이어들이 있어요. 다음주에는 그들을 다루는 법에 대해서 써볼게요. 다음주 월요일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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