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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음감 Jun 07. 2022

너무너무 쓰기 싫을 때 쓰는 법

7대 독자의 버르장머리 망치듯

사람이 어떻게 늘 즐거운 마음으로 쓰겠습니까. 더군다나 상품 리뷰를 쓰는 일을 말이죠. 일기는 내뱉는 속 시원함이라도 있죠. 리뷰는 그런 것도 없어요. 지난주에 쓴 것처럼 진상 사장님을 만나면 그 앞에서는 의연하게 대처했을지 몰라도 후유증이 남아요. 후유증은 때로 쓰기싫어병으로 나오기도 하죠.


대부분의 리뷰 사이트들은 마감날짜가 있습니다. 제 몸은 귀신같이 마감 날짜 코앞에서(혹은 당일!) 컨디션을 끌어안고 잠수를 타지요.


최재천 교수님은 모든 글의 마감을 열흘 전으로 당겨놓고 일하면 마감에 치일 일이 없다고 하셨어요. 그건 최재천 교수님이니까 가능하지요. 저도 최 씨지만 '최 씨 독하다'를 가끔 최재천 교수님을 보며 느껴요. 열흘 전은커녕 당일도 못 끝내는 날이 부지기수입니다.

 마감 날짜를 어기면 페널티가 쌓여요. 페널티가 쌓이면 블랙리스트 명단에 올라 리뷰 기회도 잃죠. 그러니 저를 살살 달래서 일단 식탁 의자에 앉혀놓습니다. 그래 놓고 기준을 매우 낮게 잡아요.


평소에 30분 동안 1500자를 썼다면 이 날은 5분에 한 줄만 써도 잘했다고 간식을 공급합니다. 전주 한옥마을 수제 초코파이, 이런 거 애들 안 주고 저 혼자 먹거든요.


이 패턴을 보면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의 강형욱 마스터가 강아지를 간식으로 조금씩 달래는 그림이 생각납니다. 저는 반려동물이 없지만 남들의 반려동물 이야기를 들어보면 인간이 걔네보다 딱히 잘난 거를 잘 모르겠더라고요. 제 패턴을 보며 강형욱의 개 훈련이 생각나신다면 정확히 잘 보셨어요.


수제 초코파이 같이 혀뿌리가 얼얼하게 단 간식을 먹으면 10분간은 매우 기분이 좋습니다. 그 기분으로 또 두 줄을 쓰는 거죠. 그래 놓고 너 좀 힘들지 않냐며 스트레칭을 시켜줘요. 옛날 할머니가 7대 독자 비위 맞춰주듯, 버르장머리 개판으로 만드는 그 짓을 제가 저한테 해줍니다.  


스스로에게 엄격한 사람이 성공한다고 하지만 세상엔 꼭 성공한 사람만 있는 건 아니잖아요. 더군다나 저는 성공할 거면 진작에 했어야 할 나이인 거 같아서 저를 그리 각박하게 몰아가지 않습니다.


제가 만일 아이들을 그리 버르장머리 없이 키운다면 민주 시민으로 양육해야 할 책임을 저버리는 일이 될겁니다. 허나 저 같은 능동적 외톨이는 좀 버르장머리 없어도 괜찮아요. 어차피 저 혼자 하는터라 누구에게 피해주진 않거든요.


반려견 간식 훈련시키듯 어르고 달래서 세 줄 정도 썼어요. 그래 놓으면 관성이란 게 약간 붙어요. 리뷰 쓰기가 대단한 문학적 감성을 요하지는 않잖아요. 그런 리뷰를 쓰는 분도 계시겠지만 그건 제가 넘볼 영역이 아닌 듯하여 아예 관심을 끕니다. 제가 할 수 있는 만큼의 관성만 있으면 되거든요. 그 관성으로 이제 열 줄을 채웁니다.


7대 독자님 한 번 더 나오셔야겠죠? 한 줄도 힘든 마당에 열 줄이라뇨. 칭찬받아 마땅합니다. 이제 노트북을 덮고 아까 그 초코파이를 더 잘라와서 넷플릭스 앞에 앉는 거죠.


 순간을 위해 킵해 두었던 영상을 봅니다. 우리 집 싱크대는 어쩌자고 이리 튼튼해서 산포 싱크 발주를 못하는가 식의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면서요. 네, 드라마 <나의 해방 일지> 남주가 산포 싱크에서 일하거든요. 드낳헛(드라마가 낳은 헛소리) 쯤이라고 해둡시다.


한 시간쯤 킬링타임을 보내고 나면 슬슬 뒤통수가 당깁니다. 초코파이의 단 맛도, 드라마 남주의 눈빛도 모두 남일이라는 걸 이토록 빨리도 깨닫지요. 한 시간 내로 아이들이 오겠어요. 여기부터는 7대 독자고 뭐고 그런 거 없습니다. 빨리 끝내야 합니다.


다행히 저는 자주 이러진 않습니다. 자랑할 만큼은 아니지만 나름 쌓아온 성실 사이클이 있잖아요. 시간으로 쌓은 건 그리 쉽게 배신하지 않거든요.




너무너무 쓰기 싫은 날이 있으신가요. 그날을 대비해 아껴두고 싶은 간식을 찾아놓으세요. 아껴보고 싶은 영상을, 혹은 아껴하고 싶은 그 무엇을 찾아놓으세요. 강형욱 마스터 님은 안 계시지만 나 스스로 강형욱도 되고 그의 반려견도 되어 셀프 조련을 해보세요. 7대 독자와 할머니를 동시에 해보세요. 그래 놓고 너무너무 하기 싫은 그날을 안전하게 넘겨보세요.




ps1. 실은 이 글도 리뷰 쓰기 싫어서 하는 딴짓입니다. 오늘은 둘째도 6교시라 여유시간이 한 시간 더 있거든요. 이제 정말 딴짓 그만해야지요.


ps2. 다음 주에는 지난주에 나왔던 진상 업체 사장님 업그레이드 버전의 다른 사장님 이야기를 써볼게요. 다음 주 월요일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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