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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음감 Jul 04. 2022

그깟 기준으로 날린 70만 원

그래도 못하겠더이다

지난주에 이어 기준에 대해서 얘기하려고요. 그깟 기준이 뭐라고 제가 70만 원을 날렸지 뭡니까.


어느 날, 청담동 피부과에서 문자를 받았어요.

네, 지난달에 쪽지가 왔길래 제가 신청했어요. 리뷰어로 에스테틱을 받아보니 괜찮아서 피부과도 괜찮지 않을까 싶었거든요.


당첨됐다는 문자이긴 한데 뭔가 이상합니다?


내산 진행, 이 부분이요. 내돈내산은 <내 돈 내고 내가 샀어요>의 줄임말입니다. 한마디로 체험단이지만 체험단 아닌 척하라는 거죠. 그리고 원고 검수도 있어요?


가이드라인이야 뭐 업체에서 강조하고 싶은 부분이 늘 있으니 그렇다 치지만 사전 원고 검수 있는 건 한 번도 안 해봤거든요.

그러고 나서 몇 시간 후, 다시 연락이 왔어요. 그게 한 번이 아니고 두 번이래요. 한 번에 35만 원짜리 쥬베룩이라는 시술이었거든요. 내돈내산으로 쓰라고 하고 원고 검수까지 있다고 해서 망설이고 있는데 70만 원에 마음이 요동칩니다. 7만 원도 아니고 70만 원인데!


일단 쥬베룩이 뭔지 찾아봤어요. 스킨 부스터의 일종이더군요. 가는 바늘을 수십 군데 찔러서 콜라겐 생성을 돕는대요. 아, 그렇다고 수십 번 진짜 찌르는 게 아니고 한 번에 몇십 개씩 찌르는 기계가 있더만요. 마취 크림 바르고 해도 눈물 찔끔 나게 아프대요.


대신 한 달 간격으로 두 번 하면 자가 콜라겐 생성을 1년 동안 돕는답니다.


눈이 번쩍 뜨이는 말이지요. 콜라겐은 20대 중반부터 감소하기 시작한다잖아요. 콜라겐이 감소하면 주름이 생기는 거고요. 반대로 탄력은 떨어지겠지요.


제 머릿속은 벌써 내돈내산을 그럴싸하게 쓸만한 문장들이 툭툭 튀어나옵니다. 70만 원의 위력으로 사전 검수 따위 가볍게 날릴 만큼의 마케팅적 언어가 샘솟아요. 어머, 나 천재인가?하는 착각도 잠깐 합니다. 천재는 무슨, 입금에 머리가 돌아가는 자본주의 노예일 뿐이죠.


그러다 결국 그 샘을 제 손으로 막아버립니다. 


리뷰를 쓸 때 맛없는 걸 맛있다고 쓰진 않거든요. 안 좋은 걸 좋다고 쓰지도 않아요. 다만 안 좋아요! 맛없어요!라고 대놓고 하지 않고 아예 빙 돌려서 다른 이야기를 해버립니다.


지금까지 한 리뷰는 모두 마지막에 '서비스나 물품을 제공받았습니다'를 꼭 넣었어요. 그게 공정위 기준이기도 하고요. 피부과나 성형외과는 공정위 문구를 안 넣는다는 말을 듣기는 했는데 그게 막상 제 일이 되니 좀, 아니 많이 흔들리더군요. 7만 원이면 안 흔들렸을 거 같은데 70만 원은 흔들리더이다.

남편과 얘기했어요. 남편도 하지 말라더군요. 남편은 공정위 문구 같은 건 잘 모르고요. 과정 샷 다 공개하는 게 별로래요.


생각해보면 그것도 웃겨요. 굳이 퉁퉁 부은 얼굴 공개하면서(바늘로 찌르는 거라 다운타임이 2-3일 있대요) 내돈내산이라고 하는 건 너무 거짓말처럼 보이잖아요. 결국 그깟 기준으로 70만 원을 날렸습니다.


쥬베룩 후기라고 검색하면 그 퉁퉁 부은 얼굴 다 공개하고, 굳이 체험단이라고 안 쓴 글 역시 많은데 저는 뭐 혼자 잘났다고 우아를 떨까요.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그냥 아직 그만큼 안 급한 거라고 스스로 세뇌하는 중입니다.


거짓말도 안 하고 그렇다고 완전 딸랑딸랑도 아니고 그 중간 줄타기를 나름 잘하고 있는데 70만 원에 그 줄타기를 무너뜨리고 싶지 않은 마음인 거 같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내돈내산을  믿게 할 기막힌 문장들이 그리 떠오르는 거 보면 저는 70만 원에 미련이 있는 것 또한 확실합니다.


무너뜨리고 싶지 않든, 미련이 있든 이미 안 한다는 답문은 보내버렸고요. 원래 이런 체험단은 하겠다는 사람이 줄을 서는 판이니 제게 다시는 기회가 오진 않을 겁니다.


어쩐지 쓸쓸해지는군요. 그래도 기준이 있다는 것에, 이 시리즈를 이어갈 소재 하나 건졌다는 것에 위로를 삼는 아침입니다. 이 글을 읽어주신 당신이 댓글로 토닥토닥 해주면 더 좋을 거 같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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