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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음감 Sep 19. 2022

이렇게 하면 백 퍼 실패합니다만

리뷰를 쓰지 못했습니다



작년에 아빠가 암 수술을 하셨습니다. 대장암 3기였고 30센티미터의 암을 떼어냈어요. 수술 하기 며칠 전, 아빠는 당신이 스물다섯 살 병장 시절에 다녔던 교회를 가보고 싶다는 말을 했습니다. 아빠는 군종이었고 그 교회의 장로님이 아빠를 무척 아끼셨대요.


세월이 흘러 아빠가 그 교회를 찾아봤을 때 그 장로님은 이미 한참 전에 소천하셨고 그때 담임목사님의 아들이 그 교회를 맡고 계셨대요. 아빠는 아빠 스물다섯의 추억을 이야기하고 그 교회에 헌금을 보냈다더군요. 그게 벌써 십몇 년 전 이야기였고요.


이걸 듣고 맏딸인 저는 숙제가 생겼지요. 해남에 아직도 있다는 그 교회를 가봐야겠다, 아빠 고향 목포를 한 번 다녀와야겠다...라는 숙제요.


항암을 거부한 아빠는 다행히 수술 6개월 후 전이가 없다는 판정을 받았고 그 판정을 받자마자 저는 해남(정확히는 진도 솔비치) 숙소를 잡아서 부모님께 통보를 했지요. 이거 환불 안 되니까 가셔야겠다고.(네, 그런 게 어딨습니까. 숙박 이틀 전에만 연락하면 환불 가능했지만 그런 말을 아빠에게 하진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생각했어요. 지금까지는 서울-경기에서만 리뷰를 썼으니 이번에는 전라도에서 리뷰를 써보겠어! 이렇게요.


그런데요. 저도 원가족 여행이 처음이었거든요. 저 어릴 때는 아빠가 주말 없이 일하는 사람이라 휴가의 개념이 아예 없었어요. 물론 돈도 없었지만요.


저와 동생이 결혼한 후로는 둘 다 나름대로 살아내느라 부모님과 여행을 간다는 생각 자체를 못했죠. 그러다 아빠가 암이라고 하니까 정신이 번쩍 든 거고요.


그렇게 목포-해남-진도를 가면서 나이 든 원가족의 여행의 편안함을 뒤늦게 알았고요. 리뷰를 쓰고 말고 할 정신이 없었어요. 리뷰를 쓰려면 사진도 많이 찍고 유용한 정보도 기록해놓고 막 그래야 하잖아요. 그걸 하나도 못했지요. 아침부터 그다음 날 저녁까지 꽉 채운 1박 2일이었지만 사진은 몇 장 찍지도 못했어요. 리뷰를 쓰려면 사진이 필수인데 말이죠.


리뷰를 쓰기 위한 사진은 챙기지 못했지만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넉넉하게 챙겼어요. 제가 부모님의 가이드가 된다는 게 이상하고 뿌듯하고 서글프고 하는 뒤죽박죽 감정이 있었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신 좋다 좋다를 하는 엄마를 보며 내가 왜 이제까지 이걸 안 했을까 하는 후회도 했고요. 별로 어렵지도 않은 단어 '솔비치'를 너무 낯설어하면서도 그걸 열심히 외우려고 하는 엄마의 분투에 코끝이 찡해지기도 하는 날이었습니다.


이번 주 저의 리뷰는 완벽하게 실패했고요. 이번 주 저의 딸 노릇은 완벽하게 성공한 거 같습니다. 리뷰 따위 실패하면 어때요. 제가 퍼스널 브랜딩이 끝내주게 되어서 제 리뷰를 기다리는 백만 독자가 있는 것도 아닌데요 뭐. 부모님의 신남을 48시간 내내 볼 수 있다는 것으로 그 모든 것을 상쇄했다 칩시다.


그래서 이번 주 저의 리뷰는 완벽하게 실패했습니다. 그리고 완벽하게 성공적이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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