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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음감 Oct 03. 2022

귀찮음을 해결하는 법

근원을 파보자

“리뷰 쓰려면 귀찮잖아.”라는 말을 듣습니다. 당연한 말입니다. 귀찮음은 생존을 위한 강력한 본능이니까요. 리뷰 쓰는데 뭐 생존까지 나오냐고요?


우리는 4차 산업시대에 살고 있지만 우리의 뇌 구조는 선사시대 원시인과 별 차이가 없다고 뇌과학자들이 말합니다. 선사시대의 새로운 것은 생존을 위협하는 위험한 경우가 많았지요. 거기에서부터 추론하면 어제까지 없던 무언가를 추가한다는 것은 생존까진 아니더라도 불편하고 힘든 게 당연합니다.


그렇다고 또 변화 없는 일상만 반복된다면? 권태와 무기력함이 하이파이브합니다. 이쯤 되면 반사적으로 나오는 말이 있죠. “아! 어쩌라고!”


‘어쩌라고’를 해결하기 위해 귀찮음의 근원으로 조금 더 들어가 볼까요. 변화를 만든 인간은 그 변화가 일상에 플러스가 되길 바랍니다. 귀찮음을 견디며 했는데 그게 일상의 후퇴면 누가 좋아하겠냐고요. 그런데 내 깜냥을 가만 보니 변화를 만들어도 딱히 플러스가 없을 게 보인단 말이에요? 그럼 여기서 여우의 신포도가 나오는 거죠. 먹지 못하는 포도를 보며 여우가 그랬다잖아요. 저건 내 능력이 없어서 못 먹는 게 아니라 신포도라서 내가 안 먹는 거라고.


신포도까지만 하고 그냥 깨끗하게 물러나면 그나마 다행인데 누군가는 그걸 또 먹어요? 그럼 배알이 꼴립니다. ‘나는 회피했는데 쟤는 하네? 배 아프다’. 가 진짜 마음인데 그러면 내가 또 너무 없어 보이잖아요. 그러니 나도 모르게 나를 속여요. ‘뭐, 그들은 잘했네. 나는 능력이 없는 게 아니고 귀찮아서 안 한 거야.’ 이렇게요.


2030까지는 진짜 속마음을 숨겨 두고, 아니 진짜 마음이 뭔지도 모르는 채 ‘귀찮잖아’라고 퉁쳤으면 40대부터는 좀 달라야 진짜 어른 아니겠습니까. 나 데리고 40년 넘게 살았으면 내 깜냥에 익숙할 만도 하잖아요. 2030은 실체보다 더 나은 나를 기대하며 그쪽으로 나를 몰아가는 자기 계발이 필요하지만 40대부터는 자기 ‘계발’만큼 자기 ‘수용’도 필요해요.


수용을 너무 거창한 걸로 시작하면 내가 슬퍼져요. ‘블로그 퍼스널 브랜딩으로 월 천 달성은 내가 할 수 없는 거야.’라고 수용하면 팩트이긴 해도 서럽잖아요. 그러니 내가 못하는 걸 수용하는 거 말고 되는 걸 수용해보자 이거죠. 월 천 달성에 비해 리뷰 쓰기는 내가 조금만 움직이면 됩니다. 실행 단차가 아주 낮아요. 그렇게 ‘되는 나’를 수용하는 거죠.


2030은 하늘의 별 같은 목표를 보며 달릴 나이입니다. 그에 반해 40대는 안 되는 나를 탓하기보다 내 손의 반짝거리는 조약돌을 보며 미소 지을 수 있어요. 40대의 그 미소는 여유의 한 축이 되기도 하니까요.


자, 귀찮음을 넘어서서 여유까지 왔어요. 여유가 나쁜 건 아니지만 그래도 내 삶에 뭔가 더 좋은 게 없나 싶은 마음이 들잖아요? 있습니다. 그것도 40대에게 딱 맞게요. 다음 꼭지로 넘어가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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