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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음감 Oct 26. 2022

뱀처럼 지혜롭고

아니, 죄지은 거 아니라면서 뱀이 또 뭡니까. 혹시 이러셨나요? 그렇다면 뱀의 부정적 이미지만 떠올리셨겠군요.

옛 이집트 사람들은 뱀을 그들의 상용 문자에 지혜의 상징으로 나타냈습니다. 동물 중에서 자기에게 닥쳐오는 어려움을 가장 잘 파악하고 신속하게 대처하기 때문이래요. '뱀처럼 지혜롭고'라는 말은 성경에 있는 말이기도 하고 그전부터 유대인들 사이에 내려오는 격언이기도 합니다.


지혜로운 뱀이야 말로 리뷰 쓰는 40대 여자에게 기본 값입니다. 뱀 같은 지혜로 글을 쓰자고? 설마, 아닙니다.

왜 기본값인지 보기 전에 간단 설문이 필요해요. 당신의 남편과, 부모님과 아이들이 당신의 성과 없는 리뷰를 지지하고 있나요? 설거지 내가 할 테니 당신은 리뷰 쓰라고 남편이 막 등 떠미나요? 그렇다면 당신 전생은 이순신입니다. 이 책이 필요하지 않아요. 내다 버려요!

애들 보내고 살림하고 커피타임 하고 책 읽고, 나름 잘 보낸 시간 같은데 헛헛해지는 순간이 옵니다. 이 순간이 아직 안 왔으면 더 놀면 됩니다. 헛헛함이 올 때 해야 잘 되거든요. 엄마들과 남타커(남이 타 준 커피) 마시면서 대화하는 시간, 쇼핑하는 시간, 집에서 살림하는 시간을 좋아하는데 굳이 그걸 끊고 꾸역꾸역 리뷰 쓴다고 하면 더 짜증 납니다. 모든 사람이 써야 하는 건 아니니까요.

수다도, 살림도, 쇼핑도 싫을 때 리뷰 쓰기는 가장 쉽게 접근할 만합니다. 노트북만, 아니 핸드폰만 있으면 되잖아요. 


써보겠다고 자리에 앉았어요. 내 안에 이야기는 많을 거 같은데도 막상 쓰기는 쉽지 않지요. 그래서 리뷰가 좋아요. 소재가 미리 제공되니까요. 소재가 있다고 다 잘 쓰는 건 아니니 나의 시간을 더 확보하고 싶어지는 때가 옵니다. 그럼 과연 시간 확보는 쉬울까요

쉽지 않습니다. 애초에 쉽지 않다를 전제로 깔고 가세요. 그래야 속 편하거든요. 내가 내 시간을 갖겠다고 하는 건 내겐 고민이지만 남에겐 자다가 봉창 뚜드리는 소리입니다. 


내가 명품백을 사달란 것도 아니고, 그저 시간 좀 달라는데 왜 과민반응하냐 싶겠지요. 그렇지만 듣는 가족들 입장에선 집에 제일 오래 있는 사람이 갑자기 시간 타령을 하니 그야말로 매우 봉창입니다.


글 쓰는 시간을 위해 주부의 시간을 ‘티 나게’ 빼 버리면 여기저기에서 태클이 들어옵니다. 그들은 당신의 꿈(아니 리뷰를 꿈이라고 하기도 좀 그렇고 당신의 시도쯤?) 보다 당신의 부재로 겪는 본인의 불편함에 훨씬 관심 있습니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당신에게 관심 없고 세상은 생각보다 더 성과주의거든요. 

나의 시간을 주장하면 할수록 입금도 안 되는 일에 생색내는 팔자 좋은 여자로 보일 수도 있어요. 여기서 뱀 같은 지혜로움이 필요한 거죠. 마른땅을 파지 말고 물길이 흐르는 땅을 파는 지혜로움입니다. 


우리에겐 등원, 등교, 남편의 출근이 젖과 꿀이 흐르는 물길입니다. 애초에 전업주부의 블로그 쓰기라 했으니 등원. 등교. 남편 출근은 기본값이라 칩시다. 평일 아침이 되면 아이들도, 남편도 일단은 나가잖아요. (코로나 오지 마!!!)

그때 괜히 살림한다고 베란다 물건 끄집어내고 그런 거 하지 말고 리뷰를 쓰는 겁니다. 베란다 물건 끄집어내고 싶으면 애들 집에 왔을 때, 애들이랑 하세요. 속도가 더디더라도 그게 나아요. 혼자 있는 시간은 200프로 당신 자신만을 위해서 써야 합니다. 하버드 연구 결과에도 집안 살림을 적극적으로 같이 한 아이의 지능이 더 높다고 나온대요. 베란다 청소에 애들을 끌어들이는 건 순전히 애들을 위한 일이라는 걸 믿으셔야 합니다!!


<글쓰기가 만만 해지는 하루 10분 메모 글쓰기>의 이윤영 작가는(이 분 무려 20년 차 방송작가입니다!) 가족이나 지인과 글을 나누지 말라고 해요. 글은 순수하게 글 자체로 읽혀야 하는데 가족이나 지인은 글 뒤의 너무 많은 모습을 알고 있다고. 그럼 '글'보다 '글쓴이'를 먼저 보기에 '글 자체'를 보기 어렵다고 하더군요. 

그러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뭐? 공동체입니다. 당신처럼 돈 안 되는 무용한 짓을 하는 동료를 만들어 가족 대신 연대하면 됩니다. 위로는 그들에게 받고 그들과 같이 머리를 싸매는 거죠. 쓰기 라이프는 그렇게 만들면 됩니다. 혹시 알아요? 당신의 지혜로운 뱀 콘셉트가 당신의 리뷰 이상으로 멋진 글 소재가 될지.

지혜로운 뱀을 더 지혜롭게 진화시켜 볼까요. 그럼 다음 꼭지로 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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