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음감 Nov 17. 2022

그러다 니 남편 바람난다니까!

림빅 시스템

"지금처럼 방치하면 고객님 남편 바람나요. 밖에 나가면 이쁜 여자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안 꾸미면 백 퍼 바람입니다."


나를 처음 본 사람이 내게 하는 말이었다. 무례할 수도 있는 말이지만 이젠 면역이 생겨서 "아, 예..." 하고 흘려버리는 단계까지 갔다.


월 2-4회 에스테틱 관리를 받는다. 회당 10-15만 원이지만 결제 대신 리뷰 쓰기로 비용을 대신한다. 리뷰를 필요로 하는 곳은 많은지 한 번씩만 가는데도 오라는 곳이 끊이지 않는다. 덕분에 생각지도 못하게 많은 에스테틱 원장들을 만난다.


에스테틱 원장님은 두 부류다. 지금 피부 상태 좋으니 좋을 때 바짝 관리해서 좋음을 오래 유지하라는 쪽, 지금 피부 너무 엉망이라 실제보다 더 늙어 보이니 빨리 관리 시작하라는 쪽, 이렇게 정확하게 나눠진다.


실제로 소비자에게 공포심을 일으켜 구매를 유도하는 이런 말을 공포 마케팅이라고 부른다. 이걸 알고 난 후 어느 쪽의 말을 들어도 그저 "예~"라고만 한다. 나는 그저 오늘치의 에스테틱만 받으면 될 뿐이니까.


재밌는 건 부정적인 쪽으로 세게 말하는 사람일수록 공통점이 있다. "남편 바람나요."라고 했던 원장님은 내가 봐온 원장님들 중 가장 덩치가 컸고 공포 마케팅 수위도 가장 높았다.

나보다는 컸고 각진 턱을 가졌던, 지난달에 만난 원장님은 내게 "관리 안 하면 하루에 한 달씩 늙는 피부"라고 했었다. (각진 턱은 남성 호르몬 테스토스테론의 특징이다.)


<뇌 욕망의 비밀을 풀다>의 림빅 시스템에 따르면 대부분의 인간 욕구는 지배욕, 자극욕, 균형욕이 일정 비율을 이룬다. 그중 지배욕은 남성호르몬과 관계가 깊고 남성 호르몬의 특징은 장대한 기골에 있다.


이 욕구가 어떤 식으로 발산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행동 패턴이 정해진다. 나는 균형욕과 자극욕이 비슷하고 지배욕이 가장 낮은 타입이다.


그래서 나는 이 원장님이 림빅 시스템 중 지배욕이 높을 거라 생각했다. 고객을 대놓고 지배할 수는 없어도 '니 남편 바람피워.'라는 공포감으로 본인의 말을 듣게 하는 수법이라고 할까.


지난번에 만난 원장님은 내게 관리 잘된 피부라며 이대로 유지하기 위한 에스테틱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게 딱 일주일 전 일이다.


별일 없던 일주일 사이에 피부가 극과 극으로 치닫는 게 상식적이지 않을 터, 이제는 어느 쪽이든 그저 마케팅 언어려니 하고 듣는다.




사람 만날 일이 별로 없는 내게 에스테틱 원장님들은 림빅 시스템의 욕구 분류를 내게 실습시켜 주는 것 같다.


내 피부가 정말 남편의 바람을 부를 만큼 엉망인지, 아님 관리 잘 된 상태인지 이젠 모르겠다. 나름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일주일 간격으로 극과 극의 평가를 내리니 판단이 안 선다.


대신 함익병 피부과 의사의 말을 기준으로 삼으려 한다. 그는 피부에 병이 없고 피부에 대해 너무 민감하게 생각하지 않고 사회적으로 '저 사람 피부가 이렇다 저렇다' 소리를 듣지 않으면 건강한 피부라고 한다.


건강한 피부가 모두 예쁜 피부일 수는 없지만 건강하지 않으면서 예쁜 피부는 있을 수 없다. 그러니 기준이 건강한 피부이면 된다. 그럼 난 너무 건강한 피부다.


물론 리뷰에는 앓는 소리를 하긴 하지만 그건 그저 리뷰의 언어일 뿐이다. 리뷰의 언어를 써서 에스테틱 제안이 끊임없이 들어오고 있으니 이것도 일종의 마케팅 언어라고 치자.


에스테틱 예약이 닷새 후에 또 잡혔다. 이번 원장님은 어느 쪽일까, 나의 심리학 실습은 이렇게 쌓인다.















작가의 이전글 마카롱 김치찌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