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장 탈의실에 공지가 붙어있다. 작년 12월부터 붙어있는 공지인데 내 기억에 붙진 않았다.
지난주 금요일, 갑자기 저 공지가 기억 속에 철썩 붙어버렸다. 토요일 자유수영 1시에서 3시? 4천 원에 두 타임? 꿀인데?
실제 가본 자유수영은 더 꿀이었다. 강습인원 절반도 채 안 되는 널널함이 사랑이었다. 사랑은 수영을 구한다. 처음으로 자유형과 평영 왕복이 됐다! 물론 턴을 할 줄 모르니 어정쩡하게 돌았으나 여튼 했다.
길석 님은 자유형 15바퀴를 연속턴으로 이어서 '그냥' 한다. 힘들다고 자꾸 쉬어버릇하면 절대 거리가 늘지 않는다나. 길석 님 수영장은 25미터, 내가 다니는 수영장은 20미터, 나는 할 말이 없었다. 그래도 엄마, 나 이번에 40미터 세 번 했쒀!!
사랑은 기억력과 이해력을 구한다. 수영쌤과 유튜브의 잔소리가 나도 모르게 재생되어서다. 발에 물이 걸려야 한다는, 코어힘이 몸을 띄운다는 평영이 모두 토요일 자유수영에서 이해되기 시작했다.
평일에는 저녁 8시 강습인지라 밖은 늘 캄캄했다. 낮에 보니 통창 앞에 커다란 나무가 호위하듯 서있고 그 사이로 햇빛이 낭창하게 뻗쳐 들어오고 있었다.
그 낭창함이 상급용 레일의 접영과 만나면 조화롭게, 혹은 관능적으로 이리저리 곡선을 이룬다. 초급 레일에서 왕복하고 가뿐 숨을 몰아쉬는 와중에도 나는 그 평화로운 빛에 취했다.
내가 만드는 곡선은 분명 그들보다 엉성했겠지만 견고했을 거라 혼자 믿는다. 무려 평영이 재밌어진 날이니까. 온몸 세포들이 잘했다며 일제히 기립박수를 쳐주는 마당에 이런 믿음 정도는 애교로 봐줘야지.
널널한 사랑스러움은 자유형 하다가 힘들면 홀딱 뒤집어 배영을 해도 상관없다. 줄지어 쫓아오는 회원 님이 없으니까. 사람 없음이 몹시도 사랑일 수밖에 없다.
날이 좋으면 더 널널해진다고 한다. 다음 주 토요일에 날이 좋고 나는 다른 일정이 없으면 좋겠다. 그 널널한 사랑이 또 내 수영을 구하겠지. 그중에 제일은 사랑 맞네요 바울 님, 당신의 의도는 이게 아니었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