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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음감 Oct 15. 2020

비정규직이 자랑이냐?

네, 자랑입니다.

<월 천만 원 벌기> 영상을 봤다. 책도 봤다. 하라는 대로 해봤다. 결정적인 순간에서 막혔다. 역시, 아무나 접근 못하는 특별한 콘텐츠였어.  포기하진 않는다. 막힌 부분부터 다시 파고들어 언젠간 해보긴 해야지. 일단 킵!   


‘언젠가’를 바라보며 마냥 일상에 매몰되진 않는다. 나는 나의 일을 해야 하니까. 짧게는 일회성으로, 길게는 15주로 계약하고 일을 한다. 한 달에 천만 원은커녕 백만 원 찍기도 어렵다. 이래도 비정규직이 자랑이냐고 물으면 네, 자랑입니다.라고 말한다. 왜 자랑이냐고? 성격대로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외주 줄 수 있는 일은 적극적으로 외주를 주고 경력을 키우라고 말한다.  이말대로 살림 도우미를 부르고 일을 늘릴까 고민한 적도 있다. 고민의 결론은 늘 같았지만.


성격이 안 된다. 남에게 내 살림을 맡기기도 싫고 애들을 맡기기는 더더욱 싫다. 외주보다 내가 잘해서가 아니다. 그냥 성격이다. 굳이 모든 살림을 내 손으로 하고, 굳이 두 애들을 36개월까지 기관에 보내지 않은 건 그저 생겨먹은 대로 사는 거다.


생겨먹은대로 사느라 충고를 가장한 모든 참견에 귀를 닫았다. 어차피 애를 맡기고 나가면 반대의 충고를 할 사람은 언제나 대기중일테니.

비정규직은 이런 나의 바람에 적절했다. 내가 없는 집에 가족 이외의 사람을 들이지 않으면서 적당히 일을 했다. 아이들이 크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보는 호사를 온전히 다 누렸다. 일과 육아, 살림 세 가지 모두 내 손 안에서 컨트롤한다는 자신감을 채우는 시간이다.


물론 이런 자신감이 있으려면 먹고사니즘을 책임지는 누군가가 있어야 한다. 우리 집은 남편이 책임자다. 남편이 주 5일간 가정경제의 주체가 되는 동안 나는 살림과 육아의 주체가 되었다.


'결혼 전엔 내가 남편보다 많이 벌었는데..'가 치고 올라오는 날엔 이대로 사회적 명함이 없어질거라는 불안감도 있었지만 그 또한 나의 선택이니 별 도리가 없었다.


최선의 선택따윈 없다. 이미 해버린 선택을 최선으로 만드는 노력만 있을 뿐.




외부 소리를 따랐다면 돈(은 시터비로 나갔을수도)과 경력은 남았으려나. 생긴 대로 살지 못해 받는 스트레스와 아이의 성장을 실시간으로 보고 싶다는 갈증은 어떻게 해결하려나.


남의 손을 빌리지 않기에 잡음도 없다. 갑자기 못 오는 시터 이모, 육아관이 안 맞는 조부모, 급히 병원을 가야 하는 아이 등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잡음 말이다. '잡음 없음'은 수치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이기에 나의 비정규직 40만 원 급여도 당당하다.


비정규직 방랑기는 아이들의 성장과 결을 같이 했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아기 띠에 매고 일을 했으니. 아이들과 나의 경력을 시나브로 같이 키우는 일, 나의 상황에서는 비정규직 말고 답이 없다. 그래서 말한다.


비정규직이 자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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