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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긍님 Jul 24. 2021

귀여운 엄마의 꾀병

깨죽 편


서울에서 자취를 함에도 냉장고에는 엄마 반찬이 가득했다. 언제 누군가 우리 집에서 밥 먹고는 시골 반찬이라는 소리를 한 적이 있는데 엥? 그냥 엄마 반찬이라고 생각한 우리 집 반찬이 시골 반찬? 남들은 뭘 먹고사나 싶었는데 생각해 보면 그만큼 엄마의 삶의 흔적이 담겨있는 반찬들이었다.


엄마 어릴 적에 생선은 거의 먹어보지 않았고 거의 채소 위주의 반찬 이야기가 많았다. 김치는 항상  밥상을 지켰는데 워낙 매운 걸 먹지 못해 물에 씻어서 먹었다는 이야기, 시래기를 된장에 묻혀 푹 끓인 국은 지겹게 먹었다는 이야기. 동치미는 시원하게 먹으려고 우물 아래 내려뒀다가  길어먹었다는 이야기. 집안의 성별과 서열에(?) 따라 밥상도 따로 먹었다는 이야기는 요즘은 생각이나 할까 싶다.


화려한 요즘 먹거리에 비하면 소박하여 별 볼일 없다 느껴질 수도 있지만 가장 기본적으로 밥상을 지켜며 그리움과 추억이 함께하는 음식이지 않을까 싶다. 그중에서도 엄마는 깨죽을 좋아했단다. 그런데 깨죽은 자주 먹는 음식이 아니라서 먹고 싶을 때에는 할머니에게 아프다고 꾀병을 부려야 먹을 수 있었단다. 자기표현도 잘하지도 않고 묵묵히 큰 딸의 노릇을 다 하던 사람이 꾀병이라니. 얼마나 먹고 싶었던 걸까


[흑임자 깨죽]


밥그릇 기준


현미 반 공기

깨 반 공기


현미는 충분히 불려서 준비한다.

흑임자는 깨끗하게 씻어서 깊이가 있는 냄비에 볶는다.

얼마나 볶냐가 중요하긴 한데.. 우선 물기가 다 날아가고 바싹 말라 깨가 통통 튀어 오를 때까지 하다가 고소한 맛이 올라오면 된다.


믹서기에 그 둘을 갈아준다

처음부터 물을 많이 넣지 않고 자작한 상태에서 곱게 갈아지면 냄비로 올려서 끓인다.

강불에서 끓이는데 밑이 눌어붙지 않도록 계속 저어준다.

처음에 막 갈았을 때는 밝은 회색빛이 많이 도는데 계속 끓이다 보면 그 빛깔이 짙어진다.

그때 물 한 공기? 혹은 조금 더 부어 끓이다가 연한 불에서 퍼지게 한다.

이 정도 양이면 매 끼니 반 공기보다 적은 양으로 5일 정도 매 끼니 먹는 것 같다.


그 좋아하는 깨죽을 더 이상 어린아이처럼 꾀병을 부리지 않아도 매일 먹는 요즘이다.

매 밥상마다 다른 건 못 먹겠다고 해도 이 깨죽만큼은 한 번도 못 먹겠다는 소리가 없다.

진짜 좋아하나 보다. 깨순이 우리 쑥이.

깨죽 한 그릇에 꾀병이 날아갔듯 어서 빨리 몸이 다 회복되는 기적이 찾아오면 좋겠다.

그 어린 날 건강했던 몸처럼 펄펄 날아 뛰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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