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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쪼꼬 Jan 18. 2024

1. 나를 위한 선물

"자기야, 나도 크리스마스 선물 골랐어."

집사람에게 선물로 20만 원 상당의 상품권을 보내준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둔 어느 날 저녁이었다. 얼굴에 미소를 지은채 아내에게 슬며시 들이민 것은 휴대전화에 띄워 놓은 작은 오토바이. 슈퍼커브였다. 무심한 듯 무심하지 않게 아내의 반응을 살폈다. 여유 있는 표정을 유지하려 부단히도 애쓰고 있었지만 아마 이면에서 풍기는 초조함과 안쓰러움을 집사람은 눈치챘으리라. 집사람이 안 된다고 단칼에 거절하기라도 하면 에라 모르겠다 심정으로 어기장을 놓을 준비도 마쳤다. 그런데 돌아온 답변은 의외였다.

"그래. 많이 참았네."

그랬다. 결혼한 지 어느덧 1N연차. 그동안 수많은 설득과 설교를 가볍게 무시해 주시는 와잎님 덕분에 오토바이에 '오'자도 제대로 꺼내지 못했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생각보다 너무 순순히 승낙을 해주신다. 어딘가 살짝 불안하면서도 안도했다.

"그럼 카라반을 얼른 팔아 봐."

우리 부부는 지난 몇 년간 캠핑에 빠져 살았다. 주말이면 어딜 가느냐 무얼 하느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캠핑을 다녔다. 그런데 집사람이 가게를 시작하면서부터 캠핑은 저 머나먼 이국땅 여행이나 진배 없어졌다.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는. 한창 캠핑에 맛을 들리면서 장만한 카라반이 천덕꾸러기 무용지물로 변해버리자 집사람은 오토바이를 허락해 주는 대신 카라반을 팔아보라 했다. 정확히 허락이란 단어를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내가 듣기에는 그리 들렸다. 어차피 팔려고 내놓은 카라반.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들뜨고 설레는 감정을 꾹꾹 눌러가며 주둥이를 내밀고는 애써 퉁퉁거렸다.

"나도 팔고 싶지. 안 팔리는데 어떡해."

아내가 내 의도를 눈치채기 전에 얼른 화재를 돌렸다. 내 마음속 저 밑에서 꿈틀대던 오토바이라는 놈이 이제 이불을 살짝 들추고 얼굴을 내밀었다.


침대에 누워 그동안 찜해두었던 당근 리스트를 훑었다. 그 안에는 특별히 더 눈길이 가던 110cc의 영롱함의 상징인 노란색 옷을 입은 슈퍼커브도 있었다. 이 놈을 당장 업어오고 싶어졌다. 앞뒤 재지 않고 업어 와서는 요로케 조로케 마구 이쁘게 꾸며주고 싶다는 생각으로 상상의 나래가 펼쳐졌다. 보면 볼수록 마음이 더 갔다. 어쩌면 이리도 찬란한 것이 귀염귀염하기도 할까? 귀염귀염 열매를 잡쉈나? 한 마리의 명마와도 같은 우아한 자태에 내 심장과 궁뎅이 두 짝을 모두 빼앗긴 듯했다. 물끄러미 보고 있노라니 결심이 섰다. 그래! 내일이다. 내일 당장 이 놈을 데려와야 쓰겠다. 더 이상의 고민은 결정을 늦출 뿐이다. 실행한다. 허락보다 용서가 빠르다고 했는데 허락과 용서의 중간쯤 정도는 온 것 같으니, 적어도 맨발로 쫓아 내진 않을 것이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다. 설령 맨발로 쫓겨난다 하더라도 나에겐 나를 위해 언제나 두 타이어를 내어 줄 슈퍼커브가 생길 거다. 그놈과 함께라면 어디든 못 가겠는가? 맨발이라고 시리기나 할까? 설레는 마음과 상상을 하며 눈을 감는다. 꿈에서 만나길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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