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야, 미안해! 널 살리려고 잎을 다 따준 거야. 나도 앙상한 널 보기가 안쓰러운데 넌 얼마나 힘들겠니? 잎이 없으니 영양분을 만들 수도 없고 그렇다고 다른 가지가 영양분을 나눠 주는 것도 아니고... 그런데도 이렇게 살아줘서 기특하고 고마워!“
집을 드나들 때마다 난 제일 먼저 벌거벗긴 토마토에게로 달려갔다. 잎과 가지, 줄기를 쓰다듬어 주면서 부드러운 말로 미안함과 고마움을 전했다.
5월 초, 텃밭에 심어 놓은 토마토 모종이 남편의 정성에 힘입어 무럭무럭 잘 자랐다. 아침저녁으로 물을 주고 풀을 뽑아주며, 키가 자라면서 쓰러질까봐 지주도 세워 주고, 곁순도 따주었다. 곁순을 따주지 않으면 여러 개의 열매를 맺어 영양 부족으로 모두가 제대로 자라지 못 한다고 한다. 너무 빽빽이 심은 탓에 햇빛을 제대로 받지 못할 것 같다며 남편이 두 포기를 캐내 다른 쪽 텃밭에 옮겨 심었다. 그 텃밭은 남쪽에 위치해 있지만 옆집 건물 그림자에 가려져 햇빛을 충분히 받지 못 하는 곳이다. 옮길 장소가 없어서 할 수 없이 그 곳으로 이식했다. 옮겨 심은 다음날부터 토마토는 시들시들 죽어 갔다.
지난 유월, 친구 따라 정원 관련 강의를 들었다. 식물을 이식할 땐 뿌리가 충분히 자리 잡을 때까지 잎을 최대한 따주라고 했다. 뿌리가 물을 흡수하지 못 하는 상태에서 수분이 증발해 버리면 잎이 시들고 죽게 되기 때문이란다. 토마토 가지에 있던 잎들을 거의 다 따내고 제일 위쪽 잎은 전지가위로 반을 잘라냈다. 지켜보고 있던 남편이 토마토를 아예 발가벗겨 버리면 어떡하느냐고 잔소리를 했다. 그래서 다른 한 포기는 잎을 많이 남겨 두었다. 남편도 삽을 들고 와 토마토 둘레의 흙을 깊이 파고 물을 흠뻑 주었다.
남편과 나의 작업 덕분인지 시들어서 축 쳐져있던 토마토가 생기를 만난 듯 고개를 빳빳이 세우고 살아났다. 잎을 많이 남겨 두었던 토마토뿐만 아니라 거의 다 따버린 토마토도 잎들이 점점 풍성해지면서 맨 위에 있는 가지에 꽃도 피고 조그맣게 열매도 맺혔다. 하지만 잎을 거의 다 따낸 아래쪽 가지에는 여전히 잎이 나지 않았다. 물론 꽃도 열매도 없었다. 그저 앙상한 가지만 있을 뿐. 그 가지를 볼 때마다 미안했다. 윗가지들에게만 영양분을 공급하는 토마토 줄기가 야속하기까지 했다. 여기저기 골고루 나눠주면 좋을 텐데....
그게 마음에 걸려 틈만 나면 토마토에게 가서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특히, 앙상한 아래쪽 가지에게! 내 진심에 화답이라도 하듯 토마토는 무럭무럭 자라나 다른 가지도 뻗고 잎도 무성해지고 꽃도 피우고 커다란 열매도 맺었다. 맨 아래쪽 그 앙상한 가지는 아직 잎과 꽃과 열매는 없지만 제법 통통해졌다.
언젠간 잎도 나고 꽃도 피고 열매도 맺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