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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파데이 Jul 05. 2022

시댁나이 9살 (1)

결혼 9년 차. 시댁 살이 9년 차. 시댁에서 나는 이제 9살인 셈.

결혼과 동시에 시작한 시댁 살이.

그때 나는 이십 대 후반이었고 대학원 포함 동기들, 중고등학교 친구들 중에서 제일 먼저 결혼했기 때문에 결혼생활, 특히 시댁과의 관계에 관련한 정보가 전무했다.

우리 엄마는 안 그래, 우리 엄마 쿨 해.


독한 시집살이, 상식 밖의 시댁 식구들. 그런  그냥 자극적인 소재인 줄만 알았다. 그래서  말에 지레 겁먹을 필요 없다고 생각했고 나는 대가리 꽃밭인 상태로 시댁살이를 시작했다.

첫 한 달은 어머니와 부딪힐 일이 거의 없었다. 왜냐면 결혼하고 한 달 남짓 인수인계 때문에 바로 관두지 못하고 회사를 출퇴근했기 때문이다. 퇴사한 후 여가활동을 가지며 쉬고 있었는데 주말 어느 날 나는 긴가민가하며 일어났다.


야!

소리에.


거리 때문에 자취를 하다가 짐을 모두 빼고 온 거라 출퇴근 거리가 왕복 5시간으로 늘어나 새벽에 일어나 밤늦게 들어왔기 때문에 밀린 잠을 자던 주말 나는 야! 하고 깨우는 소리에 비몽사몽으로 깨어 한동안 멍하게 앉아 있었다. 지금 내가 들은 소리가 나를 부른 게 맞나 싶어서.

그런데 맞았다. 우리 엄마 아빠도 나를 그렇게 부르지 않는데. 야라니. 상당히 충격적이었는데 무뚝뚝하신 어머니만의 화법인가 싶어서 나는 어머니가 본인의 자식들을 부를 때를 유심히 지켜봤다. 그런데 이름 부르시네.


미련하게 참고 참고 참아보다 나는 조심스럽게 남편에게 이야기했다. 어머니가 나를 부르실 때 야라고 하시는데 나는 그게 조금 기분 나쁘다.

남편의 대답은 당연하게도 너무나 정석적이었다. 우리 엄마가? 네가 잘 못 들었겠지.

그 말에 나는 어떠한 대꾸도 할 수가 없었다. 다들 어디서 단체로 교육을 받는 게 틀림없어.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은 표정이 별로 좋지 않았다. 당연하다. 본인 부모를 욕하는데 누가 좋아할까. 나는 조금 기다렸다. 그 문제에 대해 자각이 없던 남편이 내 말에 조금은 신경을 쓰고 있어 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남편은 확실히 어머니가 본인과 형제들을 부를 때와 나를 부를 때 지칭이 다른 것을 느끼고 내가 없을 때 어머니에게 이야기를 했다. 

데이에게 야라고 하지 마세요. 

어머니와 이야길 나누고 온 남편은 씩씩대며 내게 이야기했다. 엄마가 뭐라는 줄 알아? 그럼 존댓말 하랴? 그런다. 어이가 없어서 그게 말이냐고 다퉜다고 했다.

살갑게 부르기가 조금 쑥스러워 그랬다. 정도의 대답을 기대했지만 그럼 존댓말을 하냐니. 개선의 여지가 없다고 판단했다. 동시에 반발심까지 들었다. 나는 그럼 뭐, 어머니 소리가 입에 착착 붙어서 하나. 하고.


그 이후로 남편은 그 문제로 어머니와 몇 번 더 다퉜고 어머니는 나를 불러야 할 때 주어 없이 이야기를 하셨다.

(데이야) 이거 좀 가져가라. 하고.

나는 그렇게까지 자존심을 부리는 어머니가 이해되지 않아 그런 식으로 이야기를 하시면 듣지 않았다. 남편이 엄마가 너 부르잖아. 하고 눈치 없는 소리를 하면 나 부르시는 줄 몰랐지. 하고 응수했다.


그렇게 몇 년. 어머니와 나의 보이지 않는 기싸움은 하이를 낳자 고구마 같은 결말에 이르렀다. 드디어 내게도 어머니가 부를 이름이 생긴 것이다. 하이 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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