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낳고 얼마 간 나는 남편이 인수한 카페를 운영했다. 소도시의 골목 상권 동네 장사라 그런지 오가며 자주 들리는 손님들은 사장님의 존재를 자주 물어 왔다. 임신 전 잠깐 남편의 가게에서 홀 서빙과 계산, 청소 등을 도와주며 숱한 진상을 상대하면서 이골이 난 나는 남편처럼 살갑게 손님들과 스몰톡을 나눌 자신이 없어서 그냥 사장님은 마감할 때나 잠깐 오신다고 응대했다.
가게는 알바를 두고 일 년 남짓 운영했는데 그 짧은 기간에도 동네 작은 카페가 그렇듯 흔히 인터넷에서 볼 수 있는 유형의 손님들은 다 겪었다. 몇 년이 지났는데도 선명하게 기억나는 일화가 몇 개 있다.
'여기 양 많아. 나눠 먹자.'
8명 단체로 들어온 손님은 4잔을 주문하며 인원 수대로 잔을 줄 것을 요구했다. 진작 '1인 1 음료 주문'을 써붙여 놓지 않은 것을 후회하며 나는 최소 6잔은 주문하셔야 한다고 했지만, 그들은 정말 막무가내였다. 방금 점심을 먹어서 배가 너무 불러서 그렇다. 여기 양도 너무 많고 싸가려고 하니 나머지 잔은 일회용 잔으로 줘라. 입씨름하는 게 귀찮아 나는 알겠다 하고 주문한 4잔 외 나머지 여분 4잔은 일회용 잔으로 내어주었다.
그들은 결국 일회용 잔 쓰레기를 덤으로 만들어주고 떠났다. 서비스 하나 안 준다고 나가면서 툴툴댄 것 또한 덤이었다.
'주문하고 있어 봐 화장실 갔다 올게.'
헐레벌떡 들어온 세 명의 손님. 카운터 앞에서 한 명이 다급하게 나머지 일행에게 주문 좀 하고 있어 보라더니 화장실을 찾아갔다. 두 명은 뭘 마실지 카운터 앞에서 한참을 고민했고 번갈아 모두 화장실에 다녀올 동안 당연하게도 주문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리곤 우리가 차 시간이 다 돼서 안 되겠네. 다음에 팔아줄게.라는 말을 남기고 웃으며 떠났다. 그냥 너무 급해서 그런데 화장실 좀 쓴다고 해도 그러라고 했을텐데. 선심 쓰듯이 다음에 와서 무려 '팔아준다'던 그 시혜적인 말과 뻔뻔한 미소가 어찌나 얄밉던지.
'뜨거운 물 좀 넣어 주세요.'
아기를 데려온 손님이었다. 집에 있는 하이 생각이 나서 나는 최대한 아이 엄마의 편의를 봐주려고 했다. 손님들이 하도 몰래 테라스로 나가 담배를 펴서 출입문이 아닌 옆 문은 잠궈뒀는데 유모차를 안으로 들여오려면 계단보단 경사면으로 된 옆 문이 나을 거 같아서 열어주었고 아이를 눕힐 수 있게 넓고 큰 의자를 옮겨주었다.
하지만 손님은 나의 호의를 박살냈다.
친구와 한참 수다를 떨던 손님은 내게 젖병을 내밀며 뜨거운 물을 좀 넣어달라고 했다. 그러고는 또 물이 너무 뜨겁다며 젖병을 식혀야 한다고 컵에 찬 물을 담아 달라고 했다. 분유 때문에 온도별로 물을 담은 보온병을 두 개나 가지고 다니던 나로선 이해가지 않는 행동이었지만 뭐 사정이 있었겠지. 하며 손님의 요구를 들어주었고 선심과 친절의 대가로 돌아온 것은 트레이 위에 담긴 기저귀였다.
그 밖에도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테라스 화분 도난, 재떨이 요구(몰래 흡연까지), 쓰레기 무단 투기, 가게 출입문을 가리고 번호판 하나 없이 반나절이 넘도록 주차된 차, 김밥 같은 외부음식 취식, 반말은 허다해서 나중엔 화도 나지 않았다.
남편은 우락부락한 겉모습과 다르게 매우 다정한 사람으로 유쾌해서 단골손님들이 꽤 많았다. 본래 쌀쌀맞고 무심한 나는 상냥함과 친절함을 마른 오징어 쥐어짜듯 정말 극한으로 끌어올리고 있었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극심했다. 대체 이 모든 걸 어떻게 버텨? 어떻게 하고 있는 거야? 어느날 문득, 출근 준비를 하는 남편에게 물었다. 남편은 뭐 별거 있냐는 투로 씩 웃었다.
나 간하고 쓸개 없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