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역병의 시대. 20년 2말~3월 초. 7일간의 코타키나발루 가족여행을 준비했는데 출국날 말레이시아의 코로나 관련 외국인 입국 금지가 발표되어 여행이 무산된 적이 있다.
호텔의 헤븐리 베드, 쾌적한 환경, 편리한 서비스 등을 매우 사랑하는 나는 평생 캠핑의 ㅋ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22년 6월 현재. 매주 캠핑장이 예약되어 있는 2년 차 초보 캠퍼가 됐다.
시작은 코스트로 롤테이블 구입이었다. 장을 보러 갔다가 구매 개수 제한에 없어서 못 산다는 코스트코 롤테이블이 몇 개 입고된 것을 우연히 사게 됐다. 오케이 마담이란 영화에 아이가 나만 캠핑 안 가봤다고 하는 장면에 꽂힌 남편이 하이도 나중에 그러는 거 아니냐며 우리도 캠핑을 해봐야 하지 않겠냐고 은근히 장작을 넣으며 불을 지피고 있었는데 마침 내가 그 구하기 힘든 롤테이블을 산 것이다. 남편은 달음에 캠핑용품점으로 가서 의자 세 개와 딱 하나 있어서 선택의 여지가 없던 텐트를 구입했다.
그렇게 롤테이블 구입이 불러온 나비효과로 그 주말에 바로 우린 프로 캠퍼인 남편의 누나, 시누이 가족과 함께 캠핑을 떠났다.
첫 캠핑을 떠나는 쌩초보응애아기캠퍼에게 하는 2년 차 풋내기 초보 캠퍼의 어쭙잖은 조언.
첫 캠핑은 무조건 경험자와 같이 가라.
유튜브가 아무리 잘 알려준다 한들. 정보의 바닷속에 산들. 처음 피칭하는 대형 리빙쉘 텐트의 무지막지함에 당황하고 손발이 맞지 않아 허둥지둥하며 약간 서로 빈정이 상하려고 할 때쯤. 20년 차 생활 캠퍼인 시누이와 아주버님. 그러니까 하이의 고모와 고모부의 도움을 받아 어찌어찌 뚝딱뚝딱 설치했다. 거기다 급하게 이것저것 사 온 것들은 정작 쓸모가 없고 진짜 필요한 물품은 얼마나 많은지. 아마 우리끼리 처음 갔으면 미흡한 준비상태에 환경에 예민하고 개복치 같은 나는 잔뜩 심통을 부렸을 것이다.
당연하게도. 첫 캠핑이 마음에 쏙 든 것은 아니다.
거기다 술. 나는 술을 못 마시고 남편은 정말 잘 마시는데 그 이후 이어진 두 번의 캠핑에서의 술 문제가 우리 가족 캠핑라이프의 위기이자 전환점이 되었다. 어김없이 만취한 남편에게 너무나 화가 났던 다음날. 진지하게 이제 옐로카드가 두 장 나갔고 나는 술도 안 마시고 운전도 가능한 사람이라 언제든 아이 데리고 그 자리를 벗어날 수 있다고 경고하고 나서야 문제가 매듭지어졌다.
그리고 싫은 것을 나열하자면 끝도 없다. 벌레, 불편한 잠자리, 내 집 화장실 같지 않은 화장실, 청결 문제,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머리카락과 옷 섬유에 잔뜩 배어오는 연기 냄새가 매우 싫다. 누구는 불멍이 캠핑의 꽃이라던데.
불멍이 주는 매력은 그 모든 싫음을 이겨내게 만들었지만 내겐 그 탄내가 진입장벽이었다. 하지만 의외로 간단히 해결됐다. 남편이 이것만큼은 꼭 구입하고 싶다고 했던 화로대를 쓰게 되면서였다. 소비 성향이 다른 우리는 종종 물건 구입에 있어서 의견 차이를 많이 보이지만 솔로스토브 만큼은 둘 다 만족도가 매우 높다.
캠핑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매너 타임에 대한 의견 또한 분분하다.
그럴 거면 집에 있지 왜 나왔냐
VS
공공장소 에티켓도 모르냐
매너 타임이 곧 취침시간은 아니기에. 어차피 나는 쉽게 잠들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푹 잠든 남편과 하이를 돌보며 이런저런 소음을 나름 즐기기까지 한다. 하지만 백번 이해하려고 해도 자정이 넘어서까지 크게 깔깔대는 소리. 음악소리까지는 참을 수가 없어 정말 딱 한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옆 텐트 앞에서 노래 소리 좀 줄여달라. 요청한 적이 있다. 자정이 넘어서까지 음악을 틀어놓는 진상은 너무 당연하게도 그것 하나만 하지 않았다. 새벽 3시가 넘어서까지 나는 소근소근이 아닌 보통 낮에 대화하는 톤으로 수다를 떠는 그들의 개인사를 들어야 했다.
그정도 소음에도 깨지 않는 남편을 새벽에 깨게 만든 최악의 빌런도 있었다. 매너 타임에 잘 준비를 마치고 화장실을 다녀오는데 보인 한 텐트. 요즘 유행하는 감성템으로 한껏 꾸며놓은 커플이었는데 너무 보기 좋아서 흐뭇하게 웃으며 쓱 지나쳐 왔는데 그들은 새벽 4시까지 울고, 112와 119에 신고와 취소를 반복하며 싸워댔다. 솔직히 너무 짜증이 났는데 또 굉장히 흥미진진해서 자다 깬 남편과 나는 한동안 귀를 쫑긋 세우고 그들의 싸움을 (소리로만) 관전했다. 그리고 다음날. 결국 남자 혼자만 남아 뒷정리하는 걸 보며 우리는 저 텐트와 각종 장비의 지분은 누구에게 있는 걸까. 궁금해졌다.
누군가 그랬다. 최고의 캠핑장비는 이웃이라고. 아무리 장비가 좋고 뷰가 끝내준들. 새벽녘. 요의로 화장실 다녀오는 소리에 텐트 여닫는 지퍼소리가 너무 크다느니 하는 극극극예민러나 매너타임 전에는 무슨 짓이든 해도 된다는 생각으로 블루투스 마이크로 고래고래 노래를 하거나 떼로 와서 술 취해 온갖 쌍욕을 남발하며 대화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그 캠핑은 망캠이 되는 것이다.
내가 쉽게 잠들지 못하는 것 중의 하나도 그런 이유다. 나도 누군가에겐 진상이 될 수 있기에. 난로멍을 하며 나는 텐트가 떠나가라 코를 고는 남편을 요리조리 굴려도 보고 슬쩍 깨우기도 해본다. 조용히 잘 잤다며 일어난 남편에게 말했다.
또라이 질량 보존의 법칙 알지. 그거 진상도 마찬가지거든. 그 집단에 또라이든 진상이든 없는 거 같으면 너라는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