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파데이 Apr 05. 2022

너 정말 나랑 스타일 안 맞아

엄마. 모자 쓰지 말고 안경 쓰지 말고 화장하고 치마 입고 와



달라도 너무 다른 나와 꼬미의 패션 선호도를 몇 개 비교하자면 이렇다.


몇십 년째 고수 중인 단발머리 vs 라푼젤만큼 머리카락을 기르고 싶은 긴 머리

운동화 vs 구두

바지 vs 치마

볼캡 vs 플러피 햇

트레이닝 복, 오버핏 vs 슬림핏

무채색 vs 분홍, 보라 등 화사한 색


근무 중인 연구소 역시 복장에 크게 규제가 없기 때문에 특별히 TPO가 요구되는 곳이 아니면 나는 보통 스웻셔츠에 조거 등으로 편하게 입는다. 선크림만 바른 맨 얼굴. 안경. 볼캡. 운동화. 하지만 꼬미는 꾸미는 것을 매우 좋아한다. 어쩌다 평일 연차를 쓰는 날에 꼬미는 내게 신신당부를 했다. 

엄마. 나 데리러 올 때 모자 쓰지 말고 안경 쓰지 말고 치마 입고 화장하고 와.


옷을 사러 가면 숱하게 다툰다. 서로 추구하는 방향이 다르기 때문이다. 와 이거 너무 괜찮다. 하고 서로가 집어 드는 제품은 당연하게도 서로 원하는 스타일과 맞지 않다. 캠핑 가는 날은 내가 내어주는 바지와 티셔츠를 입어야 해서 꼬미에게 큰 시련의 날이고 결혼식 같이 분명한 TPO가 있는 날엔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처럼 어색한 나와 다르게 꼬미는 잔뜩 신이 난다.


여자 아이라고 해서. 여성성을 강요하고 싶지 않아 아기였을 때부터 나는 좀 의식적으로 (이조차도 편견이지만) 분홍색, 치마, 구두 같은 것을 좀 피했다. 하지만 디즈니 프린세스에 푹 빠진 아이를 막을 길은 없었다. 집에는 드레스가 옷장 한 면을 가득 차지했다. 

꼬미가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을 때부터 옷장엔 한 번도 입지 않아 새것으로 남아있는 옷이 잔뜩 생겼다. 주로 내가 BOY 카테고리에서 골라온 티셔츠, 바지나 점프슈트 같은 것들. 대화가 어느 정도 통하게 되면서 나는 절충안을 찾았다. 같이 보고 고르게 된 것. 이건 좀 너무 과하다. 이런 건 가지고 있는 어느 옷과 입으면 잘 어울리겠다. 하며. 하지만 여전히 내 입장에선 절대로 손도 대지 않을 것 같은 것들을 요구하는 때가 종종 생긴다. 그럴 땐 그냥 흐린 눈을 한다.


취향이란 건 이를 테면 빅데이터 기반의 분석 결과로 어느 순간 갑자기 생기는 게 아니라 경험과 정보가 있어야 형성되는 것이다. 이렇게 형성된 기호를 통해 자신이 추구하는 방향을 분명히 안다는 것은 사소하지만 매우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만의 확고한 기준이 있다는 것. 그것은 삶의 지표로 어떤 것을 결정하고 선택할 때 많은 도움이 된다. 하지만 과한 강요는 금물. 어느 것은 또 유연히 받아들이고 절충하는 것도 필요한 때가 있다. 


엄마. 엄마는 이거 절대로 사지 않을 거지? 이건 엄마 스타일이 아니니까.

립밤을 사러 들린 올리브영에서 꼬미가 보여줄 게 있다며 한 제품 앞으로 날 끌고 왔다. 마음 같아선 응, 안 사. 하고 돌아섰지만 나는 달라도 너무 다르고 맞지 않는 우리 스타일의 일말의 교집합을 찾아보고 싶어 권했다.

그럼 나한테 어울리는 걸 골라줘. 나도 너한테 어울리는 걸 골라 줄게. 


... 하지만 결국 우린 아무 것도 사지 못했다. 

작가의 이전글 무력의 봄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