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사람 모두의 안타까움과 염원이 뭉쳐 눈이 되어 내리는 걸까.
3월 28일의 하늘에선 하얀 눈이 펑펑 내렸다. 주먹만한 눈송이란 말이 딱 맞다. 지난겨울 내내 내린 여러 번의 눈 중에서 최고로 큰 눈송이다.
아침부터 사락사락 소리 내며 톡톡 튀기듯 내려 우박인가 싶은 사락눈이 내내 내리다 마침내 함박눈이 되어 펑펑 쏟아졌다.
희디 흰 눈은, 봄이라고 막 물이 오른 소나무 측백나무의 초록빛 잎사귀 위에 소복이 쌓여갔다.
해마다 3월이 다 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흰 눈을 흠씬 뿌려주곤 하지만 봄눈은 습기가 많아 늘 걱정을 동반하곤 했었다. 긁은 나뭇가지가 뚝뚝 부러지고 전신주가 쓰러지기도 했으니까. 그러나 오늘의 눈은 그저 반갑고 고맙기가 그지없었다.
산불...
얼마나 무서운지 얼마나 안타깝고 애가 타는지 너무 잘 알고 있기에 새빨간 색으로 도배된 티브이 화면을 보는 것조차 힘이 들었다.
강릉에 살 때, 그곳은 어째 그리도 산불이 잦았던지. 새벽 3시에 뜬금없이 울려 퍼지는 대피준비령에 잠이 깨어 놀란 눈으로 바라본 창밖 풍경은 그야말로 공포 그 자체였다. 하늘도 산도 붉은 화염에 휩싸인 광경이라니...
아파트 앞뒤 양편에서 타오르는 불길을 바라보며 두렵다는 게 어떤 건지 절절히 느꼈었다.
대피한다면 도대체 뭘 들고나가야 할지 머릿속이 하얗게 아무 생각도 나질 않았다.
옷가지? 가전제품들? 그런 잡동사니가 얼마나 부질없는지 그때 사무치게 깨달았다.
들고나가기도 민망한 몇 안 되는 폐물과 얄팍한 지갑. 허술한 우리 집 경제의 현주소를 새삼 마주 하는 것도 너무 허탈했다.
그런 경험 때문일까. 멈추지 않는 불길에 문화재가 파손되고 이름 드리 소나무들이 불타 잿더미가 되는 것이 내 살을 뜯는 듯 아프다.
"동서, 오늘 산림청에서 나무 묘목 나눠 준대. 내려와서 받아 가" 형님이 친절하게 전화를 주셨다.
"지금 눈이 너무 쏟아져서 못 내려 가요. 형님"
" 뭔 소리야. 여긴 비가 쪼끔 오다 말았는데..."
아, 역시 눈은 해발 700미터 우리 집에만 내리는 거였어. 산 위와 산 밑이 이렇게나 다르다니. 같은 지역에서도 각자 딴 세상에 살고 있다니...
우리 집에 내리는 눈이 모두 그 불타는 곳으로 가 줬으면 좋겠다.
눈이든 비든 뭐든 마구마구 퍼부어 온 나라가 물기에 푹 젖었으면 정말 좋겠다.
우리 집에만 내리는 눈들 모두 그곳으로 출동하길 간절히 빌어보는 3월 28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