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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이 피면

by 세실

몇 해 전 이맘때 , 엄마랑 양재천에 벚꽃 구경을 간 적이 있었다. 집이 양재천에서 가까워 걸어서 갔는데 엄마는 다리가 안 좋으셔서 아주 천천히 걸어야 했고 가다 쉬다를 반복해야만 했다.

그렇게 힘들게 양재천에 도착해 보니 세상에나... 벚꽃이 피어도 너무 많이 피어서 그냥 뭉태기로 피어있다고 해야 하나. 하천을 따라 양옆으로 줄지어 활짝 핀 벚꽃터널은 황홀할 만큼 아름답게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꽃구경을 나와 있었고 모두 즐겁게 웃으며 사진 찍기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나도 엄마께 사진을 찍어 드리겠다고 했지만 엄마는 굳이 싫다고 하셨다. 당신 늙은 모습을 찍기 싫다 하셨다.

어쩔 수 없이 흐드러지게 핀 벚꽃만 사진에 담고 돌아오고 말았다.


그렇게 벚꽃만 구경하고 왔는데 저녁에 느닷없이 엄마는, 사진을 찍을 걸 그랬다. 내일 다시 가서 찍자. 고 하시는 게 아닌가.

조금 짜증이 났다. 또다시 느릿느릿 걸어야 한다는 게 나를 짜증 나게 했었나 보다.

그러게 아까 찍어드린다 했잖아요. 내일은 약속이 있어요. 나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담날은 약속이 있어 못 갔고 그다음 며칠은 비가 와서 못 갔다.

봄비에 벚꽃은 다 지고 말았다.


그 이듬해 봄에 엄마는 요양병원에 계셨다. 그리고 요양병원에 머무시다 돌아가셨다.

그때 사진을 찍었다면 엄마와 찍은 마지막 사진이 되지 않았을까.

그때 왜 억지로라도 강제로라도 사진을 찍지 않았을까.

그 담날 약속을 미루더라도 다시 모시고 가서 사진을 찍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엄마가 그렇게 빨리 건강을 잃으실 거라 그땐 생각하지 못했다. 바보같이...


올해도 양재천엔 또 그렇게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고 있겠지.

할 수만 있다면 다시 한번 그때로 돌아 가 활짝 핀 벚꽃 앞에서 예쁘게 사진을 찍어 드리고 나도 마음껏 사진을 찍고 싶다. 엄마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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