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많은 시간이 흘렀다. 아니, 한 순간에 훌쩍 뛰어넘어 버린 것 같기도 하고.
30년이란 시간. 그때 그 시간의 기억이 이처럼 생생한 걸 보면 실제로 그다지 긴 시간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나의 기억은 그 옛날 운전면허 시험에 모두 합격하고 좋아서 팔짝팔짝 뛰던 내 모습에서부터 시작한다.
운전을 배울 여건도 마음도 없던 내게 이웃집 여편네가 와서 함께 운전을 배우자고 조르면서 생각지도 못한 운전과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나를 조른 이유는 단지 셔틀이 다니지 않는 우리 아파트에서 4명을 채워야지만 승용차를 보내 준다는 조건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제 갓 돌 지난 아이가 있어 그 대열에 선뜻 합류할 수가 없었다. 거절하는 나를 그녀는, 지금 아니면 언제 또 기회가 오냐. 모시고 다닐 때 같이 배우자는 둥 감언이설로 꼬드기기를 멈추지 않았고 애는 여자들이 돌아가며 봐주겠다는 말에 마침내 나도 수락을 하고 말았다.
그러나 막상 시작을 하고 보니 생각보다 더 어려움이 많았다. 우선 애 기저귀, 분유, 옷 등 챙겨가야 할 짐이 한 보따리였고 애를 맡기고 연습을 한다는 것이 미안하고 그렇게 눈치가 보일 수가 없었다. 필기시험 준비를 위한 강의를 듣는 것도 애가 찡찡대니 집중할 수가 없었다.
그 와중에 실로 오랜만에 하는 공부는 왜 그리도 재미가 있는지 선생님 말씀이 귀에 속속 들어와 그대로 머릿속에 박혔다. 한창 강의에 집중해 빠져들라치면 잘 자던 애가 응애 울음을 터트리고 허둥지둥 애를 둘러업고 교실 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잠들었다 싶으면 살금살금 들어오고. 수업시간 동안 몇 번이나 그 짓을 했으니 민폐도 그런 민폐는 없었던 듯하다. 공부란 게 이렇게 재미있는 거였나. 배운다는 게 이렇게 행복한 건 줄 진작 알았더라면 서울대라도 거뜬히 갔겠네. 그런 생각이 절로 들었다. 뭔가 극복해야 하는 난관이 있을 때 의욕은 더 불타는 것이구나 절실히 깨닫는 순간이기도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고민이 깊어졌다. 4명 중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꼭 합격을 해야 하는 처지였으니 말이다. 합격하지 못하면 승용차 서비스도 운전연수도 다 물 건너갈 판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더 집중을 했는지 어쨌는진 몰라도 필기시험과 실기 2종류를 다 단박에 합격하는 쾌거(?)를 이루어냈다.
고생 끝에 얻은 결과라서였나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내가 운전면허를 땄노라고. 애기를 둘러업고 다니며 단 한 번에 몽땅 합격했노라고 동네방네 떠들며 자랑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뿐이었다. 힘겹게 딴 면허증은 힘들었던 만큼의 기쁨을 선사하고 그대로 장롱 속에 들어가 긴긴 겨울잠을 잤다. 30여 년 동안.
사실 도시에 살 땐 딱히 차가 필요하지도 않았다. 한 대 있는 차는 늘 남편이 끌고 다녔고 전업주부인 나는 대중교통만으로도 충분했으니까. 그러나 시골은 달랐다. 대중교통이 열악한 시골에서는 차가 곧 발이었다. 그래서 이 고장으로 귀촌을 하고 나서 제일 먼저 한 게 작은 내 차를 산 것이었다. 베이지색의 모닝. 나는 모닝이란 차가 그렇게 흔한 것인 줄을 여기 와서야 알았다. 집집마다 차가 두 대인 집이 많은데 그중 1대는 모닝인 경우가 흔했으니까.
드디어 내 운전면허증이 빛을 발 할 시간이 다가온 것이다. 그 차를 끌고 어디든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조금만 연습을 하면.
당연히 운전 연습은 남편이 시켜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잘 가르칠 수 있다 큰소리친 남편은 한숨을 푹푹 내쉬며 선언을 했다. 나는 못 가르치겠다. 못해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어디 가서 돈 주고 배우는게 좋겠다. 3~4일 공설운동장에서 지도를 해주던 남편이 결국 두 손을 든 것이다.
그래, 그 긴 시간 동안 한 번도 운전을 안 했으니 아예 못하는 사람인 게지. 뭐든 돈을 지불하고 배워야 제대로 배울 수 있는 걸 누가 모르나. 근데 이 고장엔 운전학원이 없는 걸 어떡해.
그렇게 또 5년이란 시간이 속절없이 흘렀고 이젠 면허증을 반납해야 하나 고민하는 나이가 되었다. 그동안 운전을 하면 할 수 있었던 많은 일들을 놓쳤다. 학교 '방과 후 수업" 이라든지 어르신들 '문해교육'이라든지...
그런 내가 다시 한번 운전에 도전해 보기로 마음을 먹은 것은, 인근에 이사 온 이웃 아줌마가 운전 도로연수 강사 경력이 있다는 걸 알고 나서였다. 고민 끝에 연수를 부탁해 보기로 용기를 내었다.
1주일에 2번 하루 한 시간씩 배우기로 하고 이제 두 번 실습을 했다. 너무 낯설었다. 시동을 어떻게 거는지조차 다 잊어먹었다. 30여 년의 세월, 마지막으로 시도해 보고 손을 놓은 5년도 결코 짧은 시간은 아닌가 보다. 이렇게 깡그리 다 잊어먹은 걸 보면.
나는 할 수 있을까 과연. 두 번의 연수로도 아직 감이 안 잡히고 그저 두렵기만 한데.
이 한적한 시골길에서 그저 읍내만 자유롭게 드나들어도 만족할 텐데 나는.
남편 구슬려서 복습 좀 시켜 달라 할까. 또 구박만 받을까.
아~ 과연 나는 해 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