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저녁 6시가 되기 전에 마당으로 나갔다. 보통 6시가 훌쩍 넘어 해님이 서산으로 숨바꼭질을 한 후에야 어슬렁거리며 나가는데 오늘은 마당에 이름 모를 꽃이 예쁘게 폈길레 사진이나 찍어볼까 싶어 좀 일찍 핸드폰을 들고 마당으로 나간 것이다.
그 꽃은 무슨 꽃인지 피어난 장소도 길섶이라 그런 곳에 씨를 뿌린 기억도 없는데 그저 풀꽃이라고 생각하기엔 꽃이 꽤 크고 색도 화려해 며칠 전부터 눈길이 끌렸던 터였다. 저절로 피어나는 풀꽃은 작고 소박하기 마련인데.
예쁘게 피어있는 이름 모를 꽃을 사진에 담고 내친김에 좀 더 멀리까지 걸어 내려가 보기로 했다. 찔레꽃도 향기를 풍기며 하얗게 피어있고 길쭉한 보라색꽃, 노랑꽃, 콩알만 한 장미 닮은 꽃 등등 이름은 있겠지만 내가 미처 알지 못하는 꽃들이 곳곳에 피어있었다. 그 틈에 계절감을 잃은 코스모스도 끼어있었고.
마지막으로 찍은 꽃은 특이하게도 잎은 하얀색으로 덮여있고 꽃은 자주색이었다. 신기하다 생각하며 사진을 몇 장 찍고 핸드폰을 호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다음부턴 오디 시식에 돌입했다. 길가에 줄줄이 늘어 선 뽕나무에 오디가 까맣게 매달렸다. 나무마다 오디가 얼마나 많이 열렸는지 어느새 땅에도 잔뜩 떨어져 길을 까맣게 물들이고 있었다.
이 주변 뽕나무들은 키가 너무 커서 높은 곳의 오디는 따먹을 엄두도 못 내지만 밑으로 휘어진 가지 끝에 달린 것만 따먹어도 배가 부를 정도로 풍성히 열렸다. 잘 익은 오디는 손을 대기만 해도 후드득 떨어졌다.
뽕나무 밑에는 산딸기도 빨갛게 익어 손짓을 했다. 산딸기도 포기할 순 없지.
허리를 굽혀 산딸기 따먹다가 따라온 강쥐에게도 나누어 주었다. 산딸기는 먹는데 오디는 안 먹는다. 식성이 까다롭구먼 우리 강쥐녀석은.
그렇게 한동안 오디며 산딸기 따 먹는데 정신을 팔다가, 이젠 그만 돌아가 볼까. 하며 핸드폰을 찾는데... 없다. 어라, 분명히 주머니에 잘 넣었는데... 주변을 마구 뒤져도 보이질 않았다.
아뿔싸, 먹는데 정신을 파느라 핸드폰이 떨어진 걸 몰랐구나. 그런데 이렇게 숲이 우거지고 잡초가 무성한데 어찌 찾을꼬. 열매를 따 먹으며 돌아다닌 데가 한 두 군데가 아닌데. 기가 막혔다.
이럴 땐 남편 핸드폰을 가져와서 벨을 울려 보는 게 상책이겠지.
그때부터 허둥지둥 집까지 돌아오는데 왜 그리도 길이 가파른지 오르막이라 힘이 들어 뛸 수도 없고. 이 길이 이리도 멀었었나. 내가 왜 이렇게 멀리까지 왔을꼬. 가도 가도 끝이 안 나네.
머릿속은 온통 불길한 생각만 떠오른다. 핸드폰을 잃어버리면 어떻게 되는 거지.
수많은 연락처는 다 어떡하고.
수 천장이나 되는 사진들은 또 어쩌지. 진작 컴퓨터에 옮겨놓을걸.
겨우 핸드폰 하나 잃어버리는 게 마치 온 천하를 잃는 것 마냥 눈앞이 캄캄했다.
마침내 포클레인 타고 있는 남편이 보였다.
핵헥... 아빠, 나... 핸드 폰.. 헥헥... 잃어. 버렸.어. 전화기... 좀. 빌려줘요
무슨 상황인지 눈치챈 남편이 같이 가자. 하며 일을 멈추고 동행해 주었다.
다시 그 길을 따라 내 발자취를 더듬으며 전화벨을 울리며 돌아다니자 드디어 희미하게 벨소리가 들려왔다.
아, 찾았다. 찾았어!
핸드폰은 풀 속에 파묻혀 있었다. 풀에 떨어지느라 소리도 안 났던 것이다. 아, 살았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소리가 저절로 터져나왔다. 산딸기 따먹느라 허리를 굽히는 사이 빠져나간 모양이었다.
오, 사랑스런 내 핸드폰!
나는 다시 천하를 다 얻은 기분이 되었다.
오는 길엔 남편과 오디를 따 먹으며 돌아왔다. 남편은 오디를 처음 먹어 보는 사람처럼, 맛있네 하며 열심히 따 먹었다. 동행해 준데 대한 감사의 뜻으로 산딸기도 한 움큼 따서 주었다.
돌아오는 길은 힘들지도 멀지도 않았다. 기분이 좋아 날아갈 것만 같았다.
예정에 없던 산길을 오르내리느라 운동 한번 잘했네. 남편도 내 덕분에 오랜만에 좀 걷기도 했고.
기분이 오르락내리락 롤러코스트를 탄 듯한 저녁이었다
해피엔딩이라 참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