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무르익어 간다.

by 세실

실로 오랜만에 비가 내렸다. 봄엔 조금씩 자주 비가 내려 텃밭에 심은 모종들이 쑥쑥 자라는 모습이 보기 좋았는데 막상 장마가 시작됐다고 요란하게 떠들고부터는 웬일인지 비가 뚝 끊기고 태양은 이글이글 매일 무섭게 쏘아대며 폭염이 계속되었다.

연일 35도가 넘는 날씨가 이어지니 한낮엔 식물들이 햇볕을 못 이겨 축축 늘어지기 시작했다. 특히 잎이 넓은 호박은 잎이 다 쳐져 맥없는 모습을 보이다가 시원한 밤을 지나고 이슬을 맞으면 다시 생기를 되찾곤 했다.

그때부터였나 보다. 하루 한 차례 저녁에만 주던 물을 아침저녁 두 번씩 주기 시작한 것이.

아침에 물을 듬뿍 뿌려도 저녁이면 땅은 바짝 말라 있었다. 그만큼 해가 뜨거웠다.


물은 단연 토마토에 집중적으로 뿌려주었다. 파랗게 올망졸망 달린 토마토가 더 커지고 더 많이 달리려면 그만큼 물이 많이 필요하겠지 싶어서다. 한 뿌리에서 뻗은 줄기에 수많은 열매가 끊임없이 열리는 정말 가성비 1등급의 토마토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작물이어서 올해는 무려 20 포기나 심었다. 5 포기에서 시작해 해마다 5포기씩 늘이다 마침내 20 포기가 된 것이다. 그중 10 포기는 방울토마토로 심었다. 왜 방울을 이케 많이 심었냐고 방울토마토를 별로 안 좋아하는 남편은 투덜거렸지만 나는 나름 계산이 있었다. 그건, 딸들에게 보내주기엔 커다란 토마토보단 작은 방울이 탈없이 잘 보내질 거고 바쁜 애들이 오가며 하나씩 집어먹기는 그래도 방울이 낫겠지 싶어서 였다.

빨갛게 완숙된 토마토를 보내면 터질 우려가 있어 포장에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었다. 조금 덜 익었을 때 따면 그럴 염려는 줄겠지만 덜 익은 걸 따서 후숙 시키는 거랑 자연상태에서 완숙된 건 맛이 틀려도 너무 틀리니 잘 익어 맛있는 걸 먹이고 싶은 게 엄마 마음이다.

작년에 친구에게 보냈을 때도, 세상에나 토마토란게 이렇게 맛있는 거였어? 첨 먹어보네 이렇게 맛있는 토마토는. 하는 찬사를 들었을 정도였으니까.


방울토마토가 서서히 익기 시작한다. 빨강 노랑 두 종류로 심어 색깔도 너무 예쁘다. 두 종류를 따서 비교해 먹어보면 노란색이 살이 더 부드럽고 빨간색은 약간 억세지만 더 탄력이 있다. 매일 익은 애들을 몇 개씩 따서 모으고 있다. 작은 박스에 가득 차면 부쳐줘야지. 맛있게 먹을 애들 얼굴만 떠올려도 흐뭇하다.


큰 토마토들도 부지런히 익고 있다. 짙은 초록색에서 시작해 차츰 커지며 연두색으로. 좀 더 흰색에 가까워졌나 싶으면 살짝 노란빛을 띠다가 마침내 발가스름해지면서 차츰 붉은색이 짙어진다. 그런 과정을 지켜보는 게 재미있고 경이롭다.

한꺼번에 열린 열매들이니 한꺼번에 와르르 빨개지면 어떡하지. 그런 염려는 할 필요가 없다. 과일로도 요리용으로도 토마토는 쓰임이 너무 많으니까. 그리고 토마토를 나눠 줘서 싫다는 사람은 본 적이 없으니.


마당 끝에 있는 텃밭 작물들이 아침저녁 물을 마시며 호사를 누리는 동안 집에서 뚝 떨어진 곳에 심어 둔 옥수수는 어찌 됐을꼬.

농작물들은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는데 멀어서 제대로 가 보지도 못하고 더구나 이 폭염 속에선 보살펴 줄 엄두도 못 내고 방치하다시피 한, 차 타고 지나칠 때 흘낏 살펴보면 그래도 키가 쑥쑥 자랐고 진녹색의 잎이 무성하고 희끄무레 한 수염도 제법 보이는 걸 보면 돌보지 않아도 잘 자라고 있는 모양이다.

그래서 이 비가 너무 반갑고 감사하다. 이 땡볕에 오랜 시간 잘 버텨 준 옥수수, 몇 포기 안 되는 콩, 고구마 모두 흠씬 물을 잘 들이키 기운 내기를.


여름이 무르익어 간다.

내 작물들도 여물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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