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람들은 노래를 좋아한다. 좋아하는 만큼 많이 부르고 잘 부르지 않는가.
반면에 중국사람들은 춤을 좋아한다.
좋아하는 정도가 아니고 춤은 그들에게 생활 그 자체다.
지역을 막론하고 저녁에 해만 지면 사람들은 광장으로 모여든다. 아파트 안팎 공터, 건물 주변 등 크고 작은 공간만 있으면 사람들이 모여들고 음악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한다.
누구든지 그 춤에 동참하고 싶으면 아무 제약도 거리낌도 없이 그냥 그 무리에 끼어 같이 추면 되는 그런 분위기다. 물론 동작이 까다롭거나 힘든 것도 아니고 대부분 앞이나 중간에 리드하는 사람이 있어 그저 음악에 맞춰 따라 하기만 하면 되는, 춤인 듯 체조인 듯 한 그 동작들이 은근 재미가 있고 어렵지 않기에 자기도 모르게 그 춤에 젖어들게 된다.
처음 중국에 갔을 땐 그런 모습들이 생소하고 우스꽝스럽기도 했지만 워낙 흔한 풍경이고 완전히 생활화 된 자연스러운 모습이라 어느덧 구경꾼에서 슬쩍 참여자가 되어 가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북경에서 한국인이 주로 모여 사는 '왕징'에 정말 특이하고 아름다운 건물이 들어섰다. 북경 왕징의 랜드마크 '소호' 건물이 그것이다. 세 개의 산봉우리를 형상화 한 그 건물은 뛰어난 곡선미가 돋보이는 높이 200미터의 거대하고 멋진 건물로 평지로만 이루어진 북경 지형 덕분에 아주 멀리서도 쉽게 눈에 띄어 정말 산이 거기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 건물을 설계한 사람은 이라크 태생의 여성 건축가로 우리나라 동대문의 ' 디자인 플라자'를 설계하기도 했다고 한다. 두 건물의 공통점은 역시 아름답고 유연한 곡선미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건물이 크고 웅장하다 보니 건물을 에워싼 광장과 숲 연못 등 주변 조경도 엄청나게 넓고 수려하게 꾸며져 있고 연못에선 저녁마다 1시간씩 화려한 분수쇼가 펼쳐지곤 했다.
여름 저녁이면 우리는 밥을 먹기 바쁘게 어둠이 내리는 소호광장으로 달려갔다. 넓디 넓은 광장엔 벌써 사람들이 구름같이 모여 분수쇼를 보거나 롤러스케이트를 타거나... 물론 그 멋진 광장에 춤추는 무리가 없을 순 없겠지. 이미 사람들은 거대한 원을 만들어 춤에 열중하고 있었다. 광장이 넓은 만큼 참가하는 인원도 엄청났고 가운데서 리드하는 사람도 한 둘이 아니었다.
우리는 지체하지 않고 원의 한 부분에 끼어들어 음악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했다.
매일 출석 도장을 찍다 보니 음악이며 동작도 완전히 익숙해져 정말 신나고 즐겁게 춤 속에 빠져들 수가 있었다.
밤은 깊어가건만 춤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또 이어져 광활한 광장을 몇 바퀴나 돌았는지도 모르겠다.
생각해 보면 단조롭고 삭막했던 타국 생활에서 저녁마다 음악에 맞춰 춤을 출 수 있었던 그 시간이 나에겐 큰 즐거움이었고 생활의 활력이 되었던 듯하다.
가까운 곳에도 춤추는 무리는 얼마든지 많은데 굳이 덥고 습한 북경의 여름 날씨를 헤치고 걸어서 15분 거리의 소호광장을 고집했던 건 운동을 위한 것이었을까. 춤추는 게 좋아서였을까. 건물이 주는 매력 때문이었을까.
불을 찾아 날아가는 한 마리의 불나비처럼 소호 건물 불빛에 이끌려 매일 춤을 추러 달려갔던 북경의 여름 밤.
숨이 막히도록 너무 더워 가을이 오면, 시원한 바람이 불면 한결 춤추러 다니기가 편해지겠지. 더위가 좀 가시면 더 열심히 다녀야지. 했지만 막상 날씨가 시원해지자 밖에 나가기가 싫어졌다. 그냥 집안에 머무르고 싶어졌다.
참 이상했다. 그렇게 더울 때는 그렇게 기를 쓰고 달려 나갔는데 왜 시원해지자 나가기가 싫단 말인가.
그렇게 하루 이틀 가지 않다가 영영 안 가게 되어 버렸다.
그렇게 우리의 춤바람은 가을과 함께 사라지고 말았다.
여름이다.
여름이 되면 무더위를 뚫고 신나게 춤을 추러 다녔던 그때의 내가 생각난다.
압도당할 듯 아름답고 웅장한 소호 건물과 그 밑에서 춤추던 내가...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