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11월

by 세실

오늘은, 오후 내내 남편 일손을 도우느라 양지쪽에만 있어서인지 조금 더웠다. 11월 중순의 날씨답지 않게.

내게 11월이란 달이 주는 느낌은 스산함, 을씨년스러움, 어설픔 그리고 우울함이다. 오늘처럼 고운 단풍잎에 따스하게 내려앉는 햇살 눈부신 날도 많은데 왜 내 가슴의 11월은 늘 무거움으로 다가오는 것인지.

그런 느낌은 어쩜 11월에 아버지가 우릴 떠나셨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게 언제 적 얘긴데, 이젠 햇수를 꼽기도 아련할 만치 오래전 일인데도 여전히 나는 이 11월이 아프다.


학교장으로 치러진 아버지 장례식을 마치고 장지로 향하던 그날은 뜬금없이 눈발이 펄펄 날렸다.

함자에 비 우자가 들어있어서인지 아버지가 먼 길 거동하실 때면 비가 내리는 일이 잦았었다. 근데 발인날 비도 아닌 눈이 펑펑 쏟아지다니. 11월에. 그것도 눈 안 오기로 유명한 대구에서.


아버지 영정사진을 안고 버스 젤 앞자리에 앉았던 나는 흩날리는 눈발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이게 아버지가 우리에게 보내는 마지막 손짓일까. 버스 앞을 달리는 저 오토바이들의 에스코트는 우리가 누리는 마지막 호사일까. 아버지라는 보호막이 벗겨진 우리의 삶은 정말 아버지 말씀대로 버려진 아이들처럼 비참해지는 걸까.

도무지 현실감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갖가지 상념들이 내리는 눈과 뒤엉켜 가슴에 켜켜이 내려앉았다.


모든 절차가 마무리되고 모든 손님과 친인척들도 위로의 말을 남기고 뿔뿔이 흩어져 갔다.

적막에 휩싸인 집으로 달랑 세 식구가 돌아왔을 때 그때까지도 눈은 쉬지 않고 내리고 있었다.

나는 거실 유리창 앞에 서서 눈 내리는 정원을 언제까지나 바라보고 있었다. 어떤 심정이었을까. 그때의 나는.


지금도 11월이 되면 그 유리창 앞에 서 있던 20살의 나를 만난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존경했고 가장 어려워 했던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딸이었지만 너무 못나고 보잘것없어 늘 주눅이 들어 있었던 바보 같았던 그때의 나.


그 사람은 거의 완벽에 가까운 사람이었어. 아버지의 지인분들은 그렇게들 말씀하셨다. 밖에서는 물론 가족에게도 진심 존경의 대상이었던 아버지. 특히 엄마는 혼자된 그 긴 시간을 오직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 그리고 다음 세상에서도 다시 만나자는 그 약속으로 버티셨던 것 같다.


그런 아버지를 떠나보내야 했던 11월.

눈이 쏟아져 온통 회색 하늘빛으로만 기억되는 11월.

서러워서 나뭇잎이 뚝뚝 떨어지는 11월.


살아갈수록 세상을 겪을수록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이 깊어진다.

좀 더 살갑게 다가가지 못했던 후회도 깊어간다. 가을이 깊어가는 것처럼 11월이 깊어가는 것처럼 깊어간다.

그리움도 깊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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