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카쉐

by 세실

성당에 들어서면 마당 끝 한 귀퉁이에 성당사무실이 별도의 건물로 자리 잡고 있다. 오래되고 초라한 그 사무실 옆에는 두 칸짜리 창고가 맞붙어 있었다.

그곳은, 거기에 창고가 있는지 없는지 아무도 관심조차 없던 그런 공간이었다.

그런 공간이 새로 부임해 오신 신부님으로 인해 환골탈태하는 일이 벌어졌다.

신부님의 진두지휘 아래 쓸모없던 그 공간이 휴식과 만남의 장소인 카페로 탈바꿈을 한 것이다.


말끔히 청소를 하고 산뜻하게 색칠을 한 건 물론이고 신자들한테서 기증받은 듯 한 레트로 감성이 물씬 풍기는 고가구며 손때 묻은 소품들 심지어 옛날 레코드판까지 벽에 걸어 그럴싸하게 꾸며놓았다.

가운데는 여러 명이 둘러앉을 수 있는, 역시나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커다란 테이블이 자리를 잡았다.

방은 크진 않지만 그래도 2칸으로 나눠져 있어 제법 프라이빗한 분위기도 연출되고 있었다. 바닥은 에폭시를 여러 번 칠해 반들반들 빛이 나고 있었고.

어디 그뿐이랴. 야외 공간도 소홀히 하지 않고 테이블과 의자를 넉넉히 배치해 누구나 편하게 앉아 쉴 수 있게 마련했다.

이렇게 소박하면서도 감성적인 카페의 이름은 '마카쉐'

카페 입구엔 덩굴이 타고 올라갈 수 있게 아치도 세워졌고 그 위엔 당당하게 마카쉐란 카페의 간판도 내걸렸다.


마치 유럽 어느 나라의 멋진 단어인 듯한 이 마카쉐란 명칭은 사실 이 고장의 사투리에서 따온 순수한 강원도 말이다.

마카는 모두라는 말의 사투리고 쉐는 쉬어를 줄인 말이다. 한 마디로, 모두 와서 쉬어가라라는 뜻으로 누구나 편하게 쉴 수 있는 공간임을 의미한다.

강원도 사람들이 카페에 가서 "마카 커피!" 하고 외쳤더니 모카커피라고 알아들었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모두 다 커피라는 말이었는데.

그 사투리를 끌어 와 마카쉐라는 이름이 탄생한 것이다. 그것도 아마 신부님의 발상일 테지. 우리 괴짜 신부님의 발상.


그 괴짜 신부님이 남편에게 전화를 하셨다. 어찌 남편에 대한 소문을 들으셨는지 성당 전체 도색을 다시 해야겠는데 조언을 좀 해달라고 부탁을 해 오셨다.

마음속으론 한 번도 천주교신자가 아닌 적이 없었다고 주장하면서도 결코 주일미사에는 참석을 않는, 마누라 운전기사 노릇만 충실히 하는 남편이 신부님께 딱 걸린 것이다.

바쁜데... 나 참. 구시렁거리면서도 꼼짝없이 신부님이 호출하실 때마다 꼬박꼬박 성당에 가서 신부님 의논 상대가 돼드리곤 하는 귀여운 남편.


내가 한 일은 아무것도 없어. 이미 신부님이 색을 다 정해 놓으셨더라고. 나는 그저 좋다고만 했어.


그렇게 신부님의 계획과 남편 맞장구의 결과로 성당은 내부 외부 할 것 없이 훤하게 새 옷으로 갈아입었다.


신부님이 딱 내 과야. 나랑 비슷한 데가 많아. 일 벌이고 추진하는 거... 건축에 대해서도 아시는 게 아주 많으시던데.


신부님과는 성향이 비슷하기도 하지만 외모도 공통점이 많다. 굽슬거리는 단발머리, 고슴도치 수염에 연배도 비슷하고.

부디 신부님이랑 친해져서 이 양반이 성당에 나오면 얼마나 좋을까. 달란트로 받은 재능을 그분을 위해 쓴다면 얼마나 감사할까. 그런 날이 꼭 오리라 기대한다.


근데 나는 아직 마카쉐의 커피를 한 잔도 팔아주질 못했다. 함께 차를 마실 친구를 여즉 사귀질 못한 탓이다.

언젠가 마카쉐에 앉아 도란도란 얘기 나눌 친구가 생기길 또한 기대하며 마카쉐가 멋진 카페로 자리매김하고 번성하길 두 손 모아 빌어 본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나의 1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