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돗물이 나오지 않는다.
아침에 일어나 물을 트니 물이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얼었나. 생각했지만 겨우 영하 3도의 기온에 수돗물이 얼 리 만무하다.
이런 사태를 전혀 예상하지 못한 탓에 받아 둔 물이라곤 달랑 난로 위에 얹어 둔 주전자 하나가 전부다.
물이 나오지 않는 그 순간부터는 거지가 따로 없다. 그걸 너무 잘 알기에 짜증과 절망감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우리 집뿐만 아니라 같은 물탱크를 이용하는 인근의 몇 집도 다 안 나온다는 걸 보니 필시 물탱크에 물을 끌어올리는 모터가 고장 났거나 수도관 어딘가가 터졌거니 짐작이 되었다.
먹는 물은 생수가 있으니 됐고 화장실 변기물은 아쉬운 대로 작은 웅덩의 물을 퍼 와 사용하기로 했다.
아침밥은 유부초밥과 어제 끓여 둔 배춧국을, 점심은 주전자 물로 국수를 삶아 먹었다.
오후에 기술자들이 와서 점검한 결과, 중간에 배관이 파열되는 바람에 물이 다 새서 수도관으로 나올 물이 없었다는 진단이 나왔다. 공사는 내일 한다고 한다.
할 수없이 남편은 집에 있던 2L짜리 빈 생수병 10개를 들고 지인댁으로 물 동냥을 갔다.
그 물로 점심, 저녁 먹은 설거지를 하고 세수를 했다. 설거지거리는 많지가 않았다. 점심 그릇 두어 개에 저녁은 식은 밥으로 볶음밥을 해서 그릇 사용을 최대한 줄였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그릇도 큰 그릇에 물을 담아 두 번 정도만 헹궜다. 세수도 적은 양의 물로 얼굴과 발만 씻었을 뿐이었다.
그런데도 10병의 페트병 중 7개를 순식간에 써버렸다.
겨우 그릇 몇 개 씻고 세수를 했을 뿐 인데 14리터의 물을 쓰다니. 그것도 아끼고 아껴서 쓴 것인데...
그럼 평소처럼 흐르는 물에 맘 놓고 깨끗하게 설거지를 하고 샤워를 하고 화장실 물을 시원하게 내리고 세탁기를 돌리고 화단에 물을 듬뿍 주고... 그렇게 하면 도대체 하루에 물을 얼마나 쓰는 것일까.
궁금해서 인터넷 검색을 해보았다.
2020년 기준으로 하루에 1인당 평균 280리터 이상의 물을 사용하고 있다. 는 통계가 나와 있었다.
우와! 280리터라니. 페트병 140개를 하루에 한 사람이 쓰고 있단 말인가.
물이 안 나오니 10병의 물도 이렇게 소중한 것을 나도 모르는 새 하루에 140병이나 쓴다고 생각하니 너무 놀라웠고 그리고 반성이 되었다.
평소에 물을 얼마나 물 쓰듯 하고 있는지 모두 나처럼 페트병에 물을 넣어 쓰게 해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하루에 페트병 140개 이상을 쓴다는 건 지나친 낭비라는 걸 절실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부디 내일은 공사가 잘 진행되어 이 불편함에서 탈출하고픈 마음 간절하다.
요즘처럼 겨울가뭄이 계속되어 지하수가 말라 진짜 물이 없는 사태가 벌어지기 전에 물을 좀 아껴 써야지.
자고 일어나니 눈이 하얗게 쌓였다. 설마 눈 때문에 공사가 미뤄지는 건 아니겠지.
거지 노릇은 오늘로써 꼭 끝이 나길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