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랑 신랑은 영화 보러 들어가고 나는 혼자 남아 글을 쓰기로 했다.
아침도 못 먹고 정신없이 나와 간단하게 핫도를 먹으려고 주문하다, 커피 말고 뭐 다른 게 없을까 살펴보다 보리차가 눈에 띄어 여름엔 역시 보리차지 하며 함께 주문했다.
먹다 보니 예전 추억이 떠오른다.
초등학교 1학년이었던가 2학년이었던가.
칠판의 글씨가 잘 안 보였던 것 같다. 칠판의 글씨가 잘 안 보인다고 엄마한테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엄마 따라 안경점이라는 곳을 갔었고 처음 방문한 안경점은 신세계가 따로 없었다.
동글고 예쁜 색 테의 안경을 맞추고 의기양양하게 안경점을 나섰다.
'학교에 안경 쓰고 가면 친구들이 예쁘다고 하겠지?' 하는 부푼 마음을 안고 다음날을 기다린 적이 있었다.
(미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를 때의 일이다. )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안경알은 점점 더 두꺼워졌고 내 눈은 점점 작아 보이게 되었다.
게다가 시력 검사를 할 적마다 눈은 전 보다 훨씬 나빠져가 더 높은 도수의 안경알을 맞춰야 해서
하루, 이틀 어지러움을 늘 감수해야 했다.
안경은 첫날만 좋았지 불편한 게 한두 개가 아니었다. 체육시간에 친구가 던진 공에 안경테가 스치기라도 하면
다시 어지러움을 감수해야 하고 안경알의 흠집이 나 잘 안보기도 했다.
엄마의 잔소리는 늘 덤으로 들어야 했다.
TV가까이 보지 마라, 안경알 조심히 써라.
그리고
물 말고 결명자차 마셔라.
라는 것이다.
잔소리 중에 결명자차 마시라는 말이 제일 싫었던 것 같다.
내가 안경을 쓴 그 후부터 엄마는 여름이고 겨울이고 큰 주전자에 이름 모를 약재를 넣어
진하게 물을 끓이셨다.
그 물은 쓰고 맛없었다. 예전엔 집에 정수기 있는 집이 흔치 않았던 때이다.
엄마는 내 물(결명자차)은 따로 병에 담아 놓았다. 보리차보다는 진한 색이다.
처음엔 모르고 마셨지만 먹을수록 맛이 너무 써먹기 싫었다.
냉장고에 물이 많이 남아있으면 엄마의 잔소리가 시작된다.
눈 더 이상 나빠지지 않으려면 이런 거라도 많이 먹으라고 말이다.
엄마 말이라면 잘 듣는 순종적인 딸이었지만 결명자차는 어려운 음식이었다.
가끔 친구집에 놀러 가면 생수 먹는 집이 있었다. 그럼 그게 어찌나 부러웠던지 모른다.
엄마의 결명자차의 신봉은 내가 고등학생쯤 되니 없어졌던 것 같다.
지금은 집집마다 정수기가 있고 생수는 아무렇지 않게 마실 수 있게 되었다.
그때 기억 때문인지 나는 결명자차나 보리차는 잘 안 마셨다.
그러다
아이가 처음으로 물을 마셔야 할 때가 왔다. 그래서 아기 보리차라는 것을 사 정성스럽게 끊였다.
아이는 태어나 처음으로 보리차를 잘 마셨다.
열감기라도 나는 날에도 어김없이 생수 말고 보리차를 끓여 주었다.
아이는 지금도 보리차를 참 좋아한다.
아이가 좋아하는 보리차를 끊인다.
학교 다녀온 아이가 냉장고에서 시원해진 보리차를 꺼내 먹는다.
결명자차 끓인던 엄마를 생각한다.
그땐 에어컨도 없었는데 삼복에도 늘 물을 끓였던 엄마를
더 이상 눈 안 좋아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을 듬뿍 담아 끊였을 결명자차 말이다.
엄마의 바람대로 되지는 않았지만
그때의 그 썼던 물은 사랑의 묘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