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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 미정 Mar 14. 2024

나는 늘 운이 좋았어


성형외과 상담을 마치고 수술날이 잡혔다는 연락이 왔다. 

2명의 의사 선생님이 수술을 해야 하게 때문에 예정 수술 날 보다 미뤄져 1월 31일 날 수술하기로 결정됐다.

1월 말까지 생각지 못한 방학이 주어졌다. 

그럼 나는 남는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허투루 시간을 보내는 걸 참지 못하는 성격이라 그동안 하고 싶어도 못했던 리스트를 쭉 적어봤다. 

가장 하고 싶은 것부터 적어나갔다. 

평일 아침 늦잠자기. 

바쁘다는 핑계로 사기만 하고 읽진 못했던 책 좀 읽어보기.

블로그 인플러언서에 도전하기.

아이 간식 열심히 만들어주기. 

낮잠도 중간중간 자기. 

느릿느릿 산책하기.


아무 일 안 하고 백수로 있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9시쯤 일어나면 <슬기로운 의사생활> 재방송을 한다. 내 드라마 취향은 치정과 배신 그리고 복수가 버물어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막장 좋아한다.

<슬기로운 의사생활> 제목부터가 노잼이다. 이 드라마가 한창 방영할 때 신랑이 재밌다면서 추천했는데 저런 잔잔한 이야기를 왜 보느냐며 시간이 남아도냐고 했다.

하지만 이제는 아침마다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의사와 환자에 모두 감정을 이입하면서 보게 되었다.

옆에서 딸이 

"엄마. 또 울어? 에휴."라며 나를 한심하게 본다. 

'이런 명작을 이제야 알게 되나니.'라는 생각과 함께 펑펑 울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느릿느릿 산책하는 도중 

신랑과 전화통화를 했다. 암에 걸린 나 자신이 너무 불행하다는 하소연이었다.

그런 나에게 천운이었다면서 증상이 없어서 더 늦게 발견했으면 어쩔뻔했냐고 했다. 

(그건 정말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초기에 발견한걸 불행이 아닌 감사로 생각하자고 했다. 

머리를 열고 하는 어렵고 위험한 수술이 아니니 많이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4기입니다. 폐까지 전이되었고 길어야 3개월 보셔야 합니다.라는 선고받으면 어쩔뻔했어.

 만약 그런다면 가윤이는 어떻게 되는 거고, 후... 우리 가족은 모두 뿔뿔이 흩어지겠지.

너 절대 불행하지 않아 다행인거지, 수술만 하면 지금처럼 똑같은 날들을 살 수 있다는 게 다행이지."

라고 해줬다. 신랑 이야기를 들으며 또 한 번 생각한다. '그래, 난 늘 운이 좋았어.'


아프다고 주위에 알리니 전화통에 불이 난다. 

일 할 때는 재미없는 업무전화뿐이었는데 요샌 안부전화가 자주 온다. 

다들 컨디션이 어떻냐고, 병원에서는 뭐라고 하냐고 물어온다. 

그럼 이 친구에게 했던 이야기를 다른 친구에게 또 똑같이 한다. 

말을 하면 할수록 더 재밌게 이야기해 줄 수 있게 된다.

친구가 많이 웃을수록 말하는 나도 재밌어진다.

암은 이미 벌어진 일이고 왼쪽 가슴을 성형을 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가 나에겐 가장 큰 이슈가 되었다. 

"성형외과 선생님이 가슴 줄이라고 하더라. 나참, 이게 뭔 일이냐? 

줄여줄 수도 있고 늘려줄 수도 있데. 그리고 처진 가슴도 다 올려줄 수 있다고 그러더라."

"그래서 넌 하고 싶은 거야? 신랑은 뭐래?"

"신랑이랑 엄마는 하는 김에 다 하라고 하지. 이래도 아프고 저래도 아프다면서.

나는 수술하는 것 상상만 해도 무섭거든. 난... 성형까지는..."

"그래, 뭐 굳이, 내가 만약 너의 상황이라면 나도 안 아픈 가슴은 안건들일 것 같아."

10명 중 단 2명만이 성형을 하라고 했고 나머지 친구들은 굳이?라는 의견이었다. 

수술엔 늘 부작용이 따르는 법, 나도 성형은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는다. 


성형을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나의 물음에 친한 언니가 웃으며 

"미정아 나는 유방암 걸린 사람 중에 성형으로 고민하는 건 네가 처음인 것 같아. 

그렇게 말하는 건 너의 상태가 나쁘지 않다는 말 아니야?"

언니의 위로에 마음이 편해졌다. 

위로는 나보다 아래를 봐야 되는 것 같다. 


이런 글을 본 적이 있다. 

'불행과 고뇌와 절망에서 가장 빨리 위로받는 방법은 나보다 더 비참한 자들을 찾아내는 것이다.

나 보다 비참한 자들이 나를 행복하게 해 준다.'

그래 나는 다른 사람에 비해 훨씬 괜찮아. 역시, 나는 늘 운이 좋았어.라고 생각한다.


친구들이랑 통화할 때는 눈물이 별로 나지 않는데 가족들과 통화하면 눈물이 난다. 

"어머니. 새해에 전화드렸어야 했는데 제가 너무 늦었어요."

"어, 미정아~아니야. 그래 새해 복 많이 받고, 별일 없지?"

"어머니... 저.... 유방암이래요."

"뭐? 네가?"

"제가 그동안 검사받고 정신이 없어서, 전화도 못 드렸네요.  아주 극 초기래요.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어머, 그랬구나. 지금 몸은 괜찮고?"

"너무 아무렇지 않아요."

"네가 시집와서 지금까지 너무 열심히 살았다. 이제는 일도 다 그만두고 몸만 생각해. 그동안 너무 고생했어."

라고 하셨다. 

통화할 때 꾹 참았던 눈물이 터져 나왔다. '걱정하지 마세요.'라는 말은 사실 거짓말이다. 

나는 내 건강이 미치도록 걱정된다. 제가 얼마나 그동안 열심히 살았는지 어머니도 이제 아셨죠? 

고생했다는 마지막 말에 인정받은 느낌이 들었다.


시댁 가족들 모두 나의 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누나들과 형이 내 걱정 많이 한다고 했다. 

"전화하기가 좀 그렇지? 괜찮을 거야. 힘내."

형님들에게 메시지가 들어온다. 

이런 간단한 메시지에 눈물이 난다. 고마워서가 아니라 이런 위로를 받는 내가 너무 가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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