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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 미정 Mar 15. 2024

엄마의 고백

외식을 하러 나가는 차 안에서 딸이 대뜸 묻는다. 

"암은 왜 걸리는 거야? 암에 걸리면 죽는 거야?"

앞 좌석에 앉아있는  우리 둘은 서로 쳐다보진 않았지만 

'뭐 아는 거 아니야?'라는  똑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암이 왜 걸리는지 이유는 아무도 몰라. 

엄마도 들었는데 보통은 스트레스가 제일 크고 그다음은 유전, 환경적 문제 같아.요즘은 암이라고 다 죽는 건 아니 더라고."

아무렇지 않은 척 대꾸했다. 

내 대답 이후 딸의 추가적인 질문은 없었다. 


문득 생각이 들었다. 

만약 가윤이가 다른 사람을 통해 내가 암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그게 더 큰일일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친구들, 동네사람들에게는 말하면서 정작 딸에게는 내 병을 숨기려고 했다. 

그날 밤 아이가 숙제한다고 방에 들어갔을 때 

건넌방에서 컴퓨터 하는 신랑에게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오빠, 가윤이한테 이제 말해야겠어. 말 안 하고 쉬쉬 하는 게 더 불안감을 올리는 것 같아."

"그래, 그렇게 해."


숙제를 마치고 나온 딸을 불렀다. 

"엄마가 할 말이 있어."

"뭔데?"

"엄마가 암 이래. 유방암. 유방암 뭔지 알아?"

"몰라~"

"가슴에 암이 생겼데. 아까 차에서 물었잖아.  암에 걸리면 죽느냐고.절대 안 죽어. 암은 1기 2기 이렇게 기수가 있는데 엄마는 0기래. 1기도 아니고 더 좋은 0기 대박이지? 네가 엄마 걱정할 일 절대 없어.

그래서 요즘에 엄마 병원에 가서 의사 선생님한테 가슴 막 까서 보여주고 있어.선생님이 엄마 암보다 배가 너무  뚱뚱해서 깜짝 놀랄 것 같아. " 

최대한 가볍게, 별거 아니라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아이는 내 이야기에 간간히 웃기도 하고 덤덤하게 받아들이 것처럼 보였다.

아이에게 말했던  '엄마 절대 걱정하지 말라'는 진심이다.


며칠 후 아이가 

"엄마 전신마취 하는 거야?"

"응. 왜?"

"엄마, 하반신 마비 되면 어떻게? 영영 안 깨어나면 어떻게?"불안해하며 물었다. 

전신마취 부작용을 유튜브에서 본 모양이다. 

"그럴 일은 거의 없을 거야, 그런 쓸데없는 걱정 안 해 돼. 수술 끝남과 동시에 번쩍 눈뜰게!" 

딸에게는 웃으면서 말했지만 아이의 말도 안 되는 질문에 괜히 시무룩해진다. 못 일어나는 일 같은 건 나한테는 안 일어나겠지 

나는 아닐 거야라고 생각한다. 


며칠간 성형 고민을 했다. 내 생에 성형이라는 주제를 이렇게 오래 고민하다니... 참 별일이 다 있다. 

고민의 가장 큰 이유는 고통과 부작용이 두렵기 때문이다.

신랑과 엄마는 고민할 것도 없이 꼭 하라고 했다. 

아플 때는 성형이 사치인 것 같겠지만 다 낫고 나면 백 퍼센트 후회할 거라고 했다. 가족들이 아무리 하라고 해도 성형의 내 마음은 7:3 정도로 하지 않겠다의 마음이 훨씬 컸다. 


후회하기 싫어 수술 전 마지막 상담을 잡았다. 오늘은 엄마가 아닌 딸과 함께 갔다.

"여기가 엄마가 다니는 큰 병원이야. 여기서 수술도 하고 입원도 할 거야"

"오~ 그렇구나."

딸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어느 병원으로 다니는 건지 어떻게 생겼는지 말이다. 

이름이 호명되고 딸과 손잡고 진료실로 들어갔다.

딸이 앉을 수 있게 의자를 갖다 주셨다. 딸은 얌전히 앉아 상담하는 내 모습을 가까이에서 지켜봤다.

"성형을 하는 게 의학적으로 꼭 필요한가요? 수술을 안 하면 오른쪽, 왼쪽이 짝짝이가 되는 건가요?

수술 후의 통증은 얼마나 되는 걸까요? 입원은 어느 정도 하게 되는 건가요?"라고 적어간 질문을 하나씩 물어봤다. 

의사 선생님의 나의 질문에 천천히 답해주셨다.

아프지 않은 가슴 성형은 의학적으로 필요하지 않고, 수술을 하지 않더라도 짝짝이 되게는 안 만든다. 

수술 후 통증은 만 하루라고 생각하면 되고 대부분 열흘이면 퇴원한다고 하셨다.

의학적으로 꼭 필요한 건 아니라 하니 하지 않는 게 맞는 건가 싶었다.  주치의 옆에 인턴 선생님이 한마디 거들었다. 

"결국 남는 건 가슴의 모양이에요."남는 건 모양이라는 여 선생의 말에 마음의 결정이 내려졌다.

"그럼 할께요, 성형. 왼쪽 가슴도 예쁘게 만들어 주세요."

며칠을 고민하던 일이 전문가말 한마디 표정으로 결정된다는 것이 참 웃기다.


주치의 선생님께서는 암이 있는 오른쪽 가슴이 많이 아파서 왼쪽 성형은 별로 안 아플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암이 있는 오른쪽 가슴을 어떻게 수술하는지 그림을 그리면서 설명해 주셨다. 

"가윤아 성형외과 선생님 어땠어? 선생님 착해 보이지?"

"저 선생님이 엄마 수술해 주는 거야?"

"맞아."

우리는 별말 없이 집으로 돌아왔다. 


가족들이 모두 잠이 든 밤 유방암 상피내암으로 검색해 본다. 

맨 처음 올라온 글을 읽어본다. 상피내암 진단받고 수술 후 항암, 방사선치료, 호르몬제 먹지 않아도 됐다는 내용이었다. 그 밑에  비밀댓글을 남긴다. 얼굴도 모르는 그 사람이 너무 부럽다. 부러워 미치겠다. 

또 다른 사람의 글도  읽어본다. 상피내암 진단받았으나 수술 후 1기가 되었고 2차 수술을 앞두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나도 그렇게 될까 봐 이런 글을 더 이상 읽지 않는다.

다른 사람의 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무섭고 떨려 더 이상 검색해보지 않는다.


딸에게만큼은 예전과 똑같은 나로 보이고 싶다. 

아픈 엄마로 기억에 남는 게 싫다. 

'나 어릴 때 우리 엄마 아팠잖아. 그래서 내가 엄마 일 돕고 그랬어'라고 

친구들에게 말하는 걸 상상하는 것만으로 몸서리가 쳐질 만큼 싫다. "엄마는 걱정하지."라는 말도 나의 자존심이랄까. 


잠이 오지 않는 밤 친한 친구들 카톡방에  "나 행운을 기대해 봐도 될까?'라고 보낸다. 아직 잠들지 못한 친구가 "잔잔히 행운이 오고 있을 거야."라는 답을 해줬다. 

행운은 반드시  올 것이다. 반드시 그럴 것이다.

나는 오늘 밤도 눈물을 흘리며 살려달라는 기도로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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