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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 미정 Mar 22. 2024

천리길도 한걸음부터

무통주사와 이름 모를 주사 두 개가 달려있었고 피 주머니라 불리는 통이 가슴 옆에 달려있었다.

주렁주렁 달고 나오지 않아 다행이라며  신랑이 말했다.

간호사가 들어와서 소변을 오늘 안에는 꼭 봐야 한다고 했다. 지금으로부터 2시간 뒤부터는 금식이 끝나니깐 먹고 싶은 거 먹으라고 했다.


"나 어떻게 됐데?"

"전이된 곳은 없데. 수술방에 들여보내고 내내 그 앞에서 기다리다가네가 귤 먹고 싶다고 했잖아. 그래서 귤 사러 내려 갔는데 수술이 다 끝난 시간이 아닌데 전화가 오는 거야.

유방외과 선생님이 이야기하고 싶다고 찾는다고 해서 부랴부랴 올라갔더니 수술 잘 끝냈다고 하시면서, 유두 쪽으로 피가 나왔잖아. 나쁜 게 흘러나왔으니 재발할 위험성을 아예 없애는 게 낫다는 판단을 했데."

"그럼 나 2차 수술해야 하는 거네."

"전이는 없다고 하니 얼마나 다행이야."

불행 중 다행은 늘 있는 것 같다.


금식의 시간이 끝나고 먹고 싶었던 귤을 먹는다.

신랑이 까서 입에 넣어주는 귤은 탕후루보다 달았다.

소변을 보러 일어나서 화장실로 걸어야 한다. 사람이 두 발로 서는 게 이렇게 힘든 건지 몰랐다.

화장실을 신랑의 부축을 받아 같이 가는 일이 있을 거라 생각도 못했다. 별꼴을 다 보여준다.

이젠 길고 긴 밤을 보내야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가슴의 통증이 아닌 내 오른쪽 팔이 저 멀리 뽑혀 나가는 것만 같이 무지무지 아팠다.

신랑이 주물러 주지 않으면 참을 수 없었다.

새벽 1시경 "오빠, 간호사 좀 불러줘, 나 못 참겠어."

간호사가 들어와서 마취액을 넣고 간다. 침대 위에 붙어 있는 통증의 정도 숫자들을 생각한다.

(스마일에서 부터 정색 그리고 눈물흘리는 이모티콘이 그려져있다.

 이것을 병원에서는 vas혹은 nrs라고 부른다.)

지금의 나의 통증은 5정도 인것 같다. 가슴수술 보다 아이 낳는 고통이 배는 아프다고 생각하다 보니 잠이 스르륵 들었다.

얼마지나지 않아 새벽 2시 가슴에 '쿵'하는 진동을 느끼며 눈이 번쩍 떠졌다.

"오빠 간호사 좀 불러줘"

"약 들어간 지 얼마 안돼서 약 안 넣어줄 것 같아."

"나 진짜 아파서 그래. 진짜야. 진짜 팔이 너무 아파. 간호사 좀 불러줘."

간호사가 쌩하고 들어오더니.

"환자분, 수술 당일 아픈 건 어쩔 수 없어요. 참으셔야 해요. 조금만 더 참아보세요."하고 차갑게 말하고 쌩하고 나갔다.

'저 xxx, 참을만하면 불렀겠냐.' 마음속으로만 말하고 너무 아파 눈물을 줄줄 흘렸다.


병원 아침은 새벽 5시부터 시작된다.

좀 잘 만하니깐 혈압과 열 체크하러 들어와 잠이 다 달아났다.

다시 눈 좀 붙이려고 하니 성형외과 전공의가 소독하러 왔다고 한다.

'소독을 한다고? 수술 부위를 만진다고?.' 공포다.

"오빠 나 손 좀 잡아줘." 손 잡아주는 것만으로도 고통이 덜어지는 기분이 든다.

전공의는 아무 말 없이 순식간에 소독을 마친다. 나는 감히 내 가슴을 보지도 못했다.

하루 아침에 가슴이 사라졌다.

상실감을 느낄새도 없이 직원이 가져온 휠체어를 타고 유방암센터로 간다.

"수술은 잘 됐어요." 내 몸은 엉망인데. 세상 간단하다.

"선생님 저는 가슴보다 팔이 너무 아파요. 흑흑.ㅠㅠㅠ"

"팔이 좀 아플 순 있는데. 수술도 예정보다 빨리 끝났고, 그 정도 까진 아닐 텐데." 하셨다.

수술 중 팔을 오랫동안(약5시간) 위로 들고 있어야 했고  겨드랑이쪽 림프전이 있는지 확인하려고 건들였기 때문에 팔이 아플거라고 했다.

"수술 중에 조직검사를 최종으로 해요. 그 결과로 항암을 할지 , 방사선치료를 할지 향후 치료 계획을 해봅시다. 결과는 퇴원하고 첫 외래 볼 때 나와요. 회복 잘하시고 다음 외래 때 봅시다." 하셨다.  

"전체를 절제해도 항암을 할수 있어요? 그럼 머리도 다 빠지고..."

"아직 결과가 나온건 아니니깐 나중에 다시 이야기 합시다."

간단하고 심플한 문제가 아닌데 의사도, 밖에서 대기하고 있는 환자들도 모두 덤덤하다.

다들 너무 담담해서 여기가 현실세계가 맞나 싶다.


다시 병동으로 돌아온다.

회복을 빠르게 하려면 걸어야 한다고 했다. 그래야 달고 있는 피가 연해진다고 했다. 발에 주사가 꽂혀 있어 걷기가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못할 것 같지만 한다. 해야만 한다. 가슴을 펴고 걸을 수도 없이 아프지만  링거 대를 질질 끌고 피 주머니를 달고 절뚝거리면서 걷는다.

저 복도 끝까지 갈 수 있을까 싶다.

천리길도 한걸음부터 라는 말이 있듯,

천천히 조금씩 걸어본다. 힘들면 쉬었다 다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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