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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 미정 Mar 23. 2024

미안해, 고마워... 그리고 사랑해

복도에는 많은 환자들이 피주머니라는 걸 차고 링거가 꽂혀있는 밀대를 밀면서 걷는다.

가지각색의 피주머니들이 있는데 피 색이 연해지면서 피가 멈추게 되면 퇴원이다.

피통에 피가 어느 정도 채워지면 간호사님이 종이컵에 쏟아 비워준다.


'내 몸에 피주머니를 어떻게  연결해 놨을까...' 생각하고 싶지 않다. 다만 걸을 때마다 옆구리가 찢어질 것 같은 느낌으로 대충 이해한다. 자세히 모르고 넘어가는 것도 있어야 정신건강에 좋을 것 같아 묻지 않는다.


다들 똑같이 힘들지만 회복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덩달아 열심히 하게 된다.

(나는 열심히라면 자신 있는 사람이니깐.)

처음엔 복도 끝까지 걷는 게 어려웠지만 걷다 보니 한 바퀴가 어느새 두 바퀴가 된다.

몸에 각종약들을 실시간으로 투여하니 고통도 줄어들고 컨디션도 확실히 좋아진다.

어제는 수술을 잘 마쳤다는 것과  전이되지 않았다는 소식으로

2차 수술과 가슴이 없다는 상실감을 느낄 겨를이 없었는데 정신 차리고 보니 수술 전날 걱정했던 부분이 일어났고  믿을 수 없는 상황을 받아들여하는 나는 정신도 몸도 엉망이었다.


낮에 엄마에게서 전화가 온다.

집에서 한걱정하고 있을 엄마를 생각하니 마음이 찢어질 듯이 아프다.

"여보세요"부터 엄마와 내 목소리가 떨려온다.

"많이 아프지? 고생 많았어. 흑흑..."

엄마의 울음은 흐느낌에서 오열로 바뀌었다. 그동안 엄마가 내 앞에서 이렇게 심하게 울었던 적이 있었나 싶었다. 그러면서,

"네가 엄마보다 먼저 죽는다고 했으면 엄마는 살 이유가 없어, 나도 너 따라가지. 그런데 이만하길 얼마나 다행이야. 우리 다행이라고 생각하자 응? 엄마는 네가 마음의 병이 생길까 봐 그게 제일 걱정이야."라고 했다.

자식 걱정에 애타는 그 마음 나도 좀 알 것 같다.

"엄마, 미안해."라는 말이 나왔다.

엄마는 "네가 뭐가 미안해. 그런 소리 하지 마." 하며 소리쳤다.

"넌 나에게 존재만으로도 기쁨이었어. 내가 너를 어떻게 낳았는데..." 하며 울음이 길게 이어진다.

엄마는 나와 전화하고 싶은 것을 참다 참다 나의 딸이 학원 갔을 때 하는 것이다.

나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이다. 아픈 나 대신 내 딸을 보살펴 주는 엄마에게

"고마워."라고 한다. 하지만  '사랑해'라는 말은 차마 안 나온다.


친구들에게도 괜찮냐는 전화가 온다.

전화를 하지 못할 상황일까 다들 조심스럽다.

"나 운이 없었나 봐... 2차 수술해야 한데... 흑흑흑... 가슴이 한쪽이 날아가버렸어. 흑흑흑..."

괜찮다는 물음에 괜찮지 못한 내상황에 주르륵 눈물부터 나와 대화를 이을수가 없었다.

좀비처럼 다리를 질질 끌고 흑흑 울며 병동 복도를 걸어 다녔다.


그런 나를 봤는지 간호사가 나를 불러 세웠다.

"많이 아프시면 말씀해 주세요. 진통제 놔드릴게요. 아프면 절대 참지 마세요."

"아니요. 가슴이 아픈 게 아니고. 그런 게 아니에요. 흑흑..." 하면서 복도를 걸어간다.


점심 먹고 나니 수 간호사라 라는 분이 오셔서

지금 쓰고 있는 병실을 코로나 격리 병동으로 하려고 한다면서 2인실 창가 쪽으로 배정해 줄 테니 병실을 옮겨줄 수 있냐고 물었다. 마다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짐을 정리하고 지정받은 병실로 이동했다.

새로 온 병실에는 할머니가 누워계셨다. 보호자로 보이는 분이 우리를 보고 인사해 줬다.

할머님은 대장암 수술받았다고 했다. 할머님이 귀가 잘 안 들려 목소리를 크게 할 수밖에 없으니 양해해 달라며 보호자가 말했다. 할머니가 대뜸 나에게 "우리 며느리 예쁘지? 나이도 안 들어 보여. 손주가 중학생인 할머니야." 하셨다. "너무 피부가 고우세요."라고 하며 "병간호하느라 힘드시겠어요."라고 했다.

환자도 힘들지만 좁은 침대에서 환자의 짜증과 고통을 다 받아내야 하고 손발이 되어줘야 하는 보호자들은 얼마나 힘들까 싶다. 전에 쓰던 병실은 아무 소리도 낼 수 없을 만큼 고요했다. 보호자와 대화할 때도 소리를 낮추거나 밖으로 나가야 했는데 새로운 병실에는 끊임없이 트로트가 흘러나온다.

무료한 할머님을 위해 며느님이 <미스터트롯> 프로그램을 계속 틀어주신다.

문 밖으로 까지 트로트 소리가 새어나간다. 하지만 그게  시끄럽거나 짜증 나지 않았다. 조용한 것보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다시 밤

낮에는 안 아팠던 팔이 또다시 저만큼 달아나 버리려고 한다.

신랑에게 주물러 달라고 했다. 신랑의 따뜻한 손만 대고만 있어도 덜 아프다. 하지만 더 참지 못할 것 같아 간호사를 부른다.

진통제를 넣고 몇 분 안돼서 팔의 고통이 진정되었다. 새벽에 또 얼마나 괴로울까 싶어 가슴이 떨린다.

신랑에게 "밤이 무서워, 어제처럼 아플까 봐. 진통제도 안 놔줄까 봐"라고 했더니

"나는 밤새 네 팔을 끊임없이 주물러야 할까 봐 무서워."라고 해 웃음이 나왔다.

말은 그렇게 해도 혹시 본인이 잠들어 팔을 못주르면 안된다고 간이침대에 눕지도 못하고 앉아서 반 수면 상태로 팔을 주무르다 말다 하며 밤을 보낸다.

애쓰는 신랑에게 '미안해, 고마워'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하지만  이상하게 '사랑해'라는 말은 죽어도 안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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