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 미정 Mar 24. 2024

울보의 하루

이젠 신랑이 집으로 돌아간다. 

딸도 돌봐야 하고 출근도 해야 하기 때문에 돌아가야만 한다. 

헤어짐의 시간은 어김없이 돌아왔고 아침을 먹는데 눈물이 나서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

눈물의 아침식사를 마치고 오늘도 어김없이 좀비같이 복도를 돌다 텀블러에 물을 채우려 휴게실로 들어갔다. 물을 채우려고 뚜껑을 돌리는데 평소라면 일도 아니지만, 지금은 오른팔에 힘을 줄 수가 없어서 물병 열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물병 하나 열지 못하는 내 상태가 기가 막혀 또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신랑이 집으로 돌아가기 전 간식을 사 왔다. 내가 좋아하는 디저트 위주로 사 온 것을 보고 '역시 신랑밖에 없구나' 싶어 감동의 눈물버튼이 눌린다. 


신랑이 짐을 싼다. 엘리베이터까지 같이 나간다. 

"도착해서 전화할게. 제발 울지 말고 씩씩하게 잘 지내고 있어. 일요일 장모님 오시라고 할게."

"엄마를... 뭐 하러... 괜찮아 나 혼자 있을 수 있어."

"가윤이가 아프면 네 마음이 어떻겠어. 얼마나 네가 보고 싶겠어"

"얼른가, "라며 마음에 없는 말을 한다. 


입원하기 전에 대부분 10일 정도 후에 퇴원한다고 들었지만 수술 후 며칠이 지나도 주치의 선생님도 만나지 못해 퇴원날짜도 알 수가 없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병원생활이 외롭기도 하고 지루하기도 하다. 

복도를 돌다 전공의 선생님을 만난다. 

"어머. 선생님!" 하며 '나만' 반갑게 인사한다.

"몸은 좀 괜찮으세요?"라고 정중하게 묻는다.

"그런데 왜 주치의 선생님은 안 오세요?"

"안 오시는 게 좋은 거예요. 지금 회복이 잘 되고 있다는 말이거든요."

회복이 잘 되고 있다는 말에 우울했던 마음이 싹 걷어진다.


밥 먹고 식판 치우는 게 가장 큰일인데, 식판 들고나가는 내가 위태로워 보였는지 안쓰러워 보였는지 옆에 계신 보호자님이 "내가 도와줄게요."라고 하시며 식판을 정리해 주신다. 

사양하지 않고 감사하게 호의를 받는다.

밤에 잘 때 언제든 간호사님을 호출할 수 있는 마이크를 침대 머리맡에 걸어두었다.

자기 전에 진통제를 맞으니 하루의 피로가 녹는 느낌이 들었다. 

보호자 없이 자도 괜찮은 밤이었다.


아침엔 기분이 많이 다운된다


날씨가 우중충해서 그런 건지. 창밖을 바라보는데 마음이 쓸쓸해진다. 

똑같은 배경인데 밤에는 감사의 마음이 충만한데 새벽의 깜깜한 하늘을 보면서는 지구의 종말을 생각한다.

오늘 드레싱 할 땐 나의 가슴을 눈 똑바로 뜨고 바라보았다. 

그러다 갑자기 눈물이 터져 나왔다.

"어디 아프세요?"라고 놀라며 선생님이 물어보셨다. 

목이 너무 매어 대답할 수 없어 고개만 가로저었다. 

"가슴은 몇 달 후면 예전처럼 똑같아지니 울지 마세요. 

회복도 아주 잘 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내 마음을 알아주는 따스한  선생님 말씀에 고맙다는 말도 할 수 없이 눈물만 쏟아져 나왔다. 

감정을 채 추스르지도 못했는데 이번엔 침대 가드가 문제였다. 

어쩔 수 없이 또 옆에 계신 보호자님께 부탁했다. 

"여사님... 저 이거... 침대 좀 도와주세요."

아주 간단하게 해결되었다. 

이런 것 하나 못해서 도와달라고 하는 나 자신이 미치도록 가엾다.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에 펑펑 울었다. 보호자님이 등을 두들겨 주시면서 

"울고 싶으면 맘껏 울어요." 하셨다. 

"죄송해요, 잘하고 싶은데 마음 굳게 먹고 씩씩하고 싶은데 왜 자꾸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어요."

"나도 자궁 쪽 수술받고 병원에 좀 있었어요. 그때  창문 보면 뛰어내고 싶더라니깐. 지금은 이것 봐 너무 괜찮아졌어요. 잘 이겨낼 수 있어요. 아휴, 뭘  잘하려고 해요, 못하면 도와달라고 해. 그럼 내가 도와줄게."

울보인 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받으며 하루하루 이겨내고 있다.


며칠 동안 씻지 못해서 미칠 지경이다. 옆에 오면 미안할 지경이다. 간호사님과 의사들이 꼭 마스크를 써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병원의 밤은 빨리 오고 아침도 빠르게 온다. 


유방암이라는 것에  걸리고 가슴을 전 절제를 한건 내 인생에 있어 비극적이고 슬픈 일이지만 

이번에 인생공부 제대로 하는 중이다.











작가의 이전글 미안해, 고마워... 그리고 사랑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