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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 미정 Apr 05. 2024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시작할 수 있다.


파워블로거 신청을 해둔 상태였기 때문에 수술 전날까지 블로그에 손을 놓지 못했다. 결과는 불합격이었다. 욕심 많았던 아프기 전 같았으면 실망감이 말도 못 하게 컸을 것이다. 지금은 인생에 큰일이 겪으니 '한 번에 될 일이 없지' 하며 실망스러운 마음이 금세 털어버려 진다. 암이라는 사실을 말했을 때 모든 사람들이 "일 그만둬라, 블로그도 그만 쉬어라."라는 이야기를 제일 많이 했다. 일 그만두라는 말도 속상한데 블로그 쉬라는 말은 더 듣기 싫었다. 

특히 신랑은 "그게 뭐 돈이 되는 거야?"라고 늘 비꼬듯 묻는다. 친한 친구들 조차 파워블로거가 되면 뭐가 좋은 거냐고 묻는다.  그들이 묻는 돈이 되냐는 질문에, 파워블로거가 되면 좋은 점이 뭔지 말할 수 없다. 

나도 알다시피 그렇게 썩 좋은 건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수술 전에도 입원 후에도 지금까지도 유지하는 이유는 '재미와 보람'이 있기 때문이다. 

방문자 수가 늘어날 때의 그 기분은 뭐라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마치 사업의 크기가 커지는 느낌이랄까?)

어찌 보면 간단한 이유인데 살면서 재미와 보람이 있다면 무슨 일이든 끝까지 할 수 있는 것 같다. 

퇴원하고부터는 팔이 아파서 요리는 꿈도 못 꿨다.

블로그 아이디가  '요리하는 영양사'인데 요리도 못하고 영양사도 못하고 있다. 

매일 외식한 사진만 올리는 내 포스팅이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괜찮다.

내가 다시 돌려놓으면 되는 것이다. 내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어제는 산책하다 문득 누구와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 '누군가'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럴 땐 내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인다. 누군가에 하고 싶은 말을 나에게 자문자답해본다.

Q:시간은 한정적인데, 이렇게 시간을 무의미하게 써도 되는 건가.? 

A:무의미하진 않지. 나는 회복의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깐. 

Q:눈에 보이는 회복의 성과가 있는가?

A:나는 그동안 눈에 보이는 성과가 있어야만 스스로 성장했다고 생각했었다. 예를 들어 독서를 한다고 해도  '한 달에 30권 읽기.'라고 '숫자'를 정해두었고 그 '숫자'에 집착하다 보니 스트레스만 받게 되고  결국 남는 건 하나도 없었다. 회복과 성과는 애초에 말이 되지 않는 질문이야. 


저녁 먹고 소파에 앉아 쉬는데 딸이 나에게 물었다. 

"엄마는 아프기 전에 좌우명이 뭐였어?"

"아프기 전에?"

아프기 전이라는 말이 좀 생경했다. 

"도전하지 않는 삶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어. 뭐든 도전하고 배우고 성장하는 삶을 지향했던 것 같아"

"그런데 지금은?"

"도전보다는 평안."이라고 말해줬다. 요즘은 큰일이 일어나지 않는 평안한 하루가 감사하다. 

마음을 졸이지 않는 하루가 행복하다. 어찌 보면 지루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이 지루한 감정이 나에게는 가장 큰 행복이다. 


벌써 호르몬제를 먹은 지 한 달이 다 되어간다. 오늘은 유방암 센터 예약날이기도 하다. 

주치의 선생님이 혹시 모를 부작용에 대해 설명해 주셨다. 

"이 호르몬제는 폐경이 오게 할 수 있고 자궁의 내막을 두껍게 만들 수 있어요. 자궁내막이 두꺼워지면 자궁경부암이 올 확률이 있어요. 부인과 센터 협진 잡아 둘 테니깐 일주일 후에 오세요. 하지만 환자분의 경우 아직 젊은 나이이기 때문에 부작용은 거의 없다고 생각하시면 될 거예요. "라고 하셨다. 폐경이 온다는 말은 여성호르몬이 떨어지고 그로 인해 활력이 저하될 것이고 결국 노화가 촉진된다는 말이잖아.라는 생각이 들었다. 

암이 생긴 것도 억울한데 노화의 시간까지 당겨 쓰고 있다는 생각에 슬퍼졌다. 게다가 자궁경부암의 확률이 높아진다니 이건 또 무슨 청천벽력인가. 

걱정되는 눈빛 이었는지 주치의 선생님은 아직 젊어서 그런 일은 없을 거라고 몇 번 말씀하셨다. 

병원 잘 다녀왔냐면서 친구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호르몬제가 폐경을 앞당길 수도 있고 어쩌면 자궁경부암 걸릴 확률이 좀 있다네."

"앞서 그런 생각하지 말고 암으로부터 나를 지켜주는 좋은 약이야 라고 생각하면서 꿀떡 먹어."

라고 말해줬다. 친구의 이야기에 약의 부담감이 줄어들었다. 

호르몬제는 일정시간에 매일 먹어줘야 효과가 좋다고 들었다. 5년을 먹어야 한다는데. (어쩌면 10년을 먹을 수도 있다.)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하기로 하고 내 몸을 위해 매일 동일한 시간에 알람을 맞추고 정성스럽게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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