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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 미정 Apr 06. 2024

건강염려증

*건강염려증: 몸에 상태에 대해 과도하게 신경 쓰는 비정상적인 정신 상태. 자신이 가해자이면서 동시에 피해자가 되는 망상. 정신과 몸이 서로에 술책을 부리는것.<몸의 일기 중>


협진받은 부인과 예약날이 되었다. 초진은 오전밖에 예약이 안된다고 해서 아침부터 부랴부랴 서두른다. 

유방암센터 바로 옆에 부인과가 있는데 산부인과와 같은 공간에 있다. 

그러다 보니 임신한 산모들을 보게 된다. 임신한 여성의 몸은 참 아름다운 것 같다. 저마다의 사정으로 병원에 왔을 것이다. 벽 하나를 두고 나누어져 있는데 유방암 센터와는 달리 생기가 돈다고 해야 할까? 각 진료실마다 느낌이 다 다르다. 

나는 또 어떤 가운을 갈아입고 어떤 진료를 보게 될까 두려움에 떨며 이름이 불리길 기다리고 있었다.

아프고 나서 건강염려증에 걸려 버렸다. 그중 자궁경부암이라든지 난소암에 걸려 있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많이 되었다. 

한참 기다린 후에 드디어 이름이 호명되고 진료실로 들어갔다. 젊은 남자분이 반갑게 맞아주셨다. 

"유방암 센터에서 오셨군요. 지금 약 드시는 게 있잖아요. 그것 때문에 추적 관찰할 겁니다. 

지금 초음파 예약이 꽉 차 있어서 8월에나 진료 가능할 것 같아요."

그런 말을 듣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눈물 흘리는 나에게 티슈를 한 장 뽑아주며 "유방암 환자분들은 다 이렇게 하는 거예요."라고 하셨다. 

유방암으로 내 인생은 이렇게 고달파졌다.

그러면서 "자궁경부암 검사 언제 하셨어요?"라고 물었다. 가슴에 이상 신호가 왔을 때 함께 검사했던 게 생각나 "4개월쯤에 검사받았어요."라고 했다. 그랬더니 자궁경부암은 빼고 자궁내막이 두꺼워졌는지 8월에 확인해 보겠다고 했다. 

"선생님. 제가 너무 궁금해서 그러는데. 혹시 동네병원에서 초음파 보고 검사해도 될까요?"라고 물었다.

"그렇게 하셔도 되고 혹시 문제 있다고 하면 병원으로 전화 주세요."라고 하셨다.

밖으로 나와 동네 산부인과에 바로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도 당일 오후 진료가 가능하다고 하셨다. 

코디분이 오실 날짜가 안 됐는데 어쩐 일로 오셨냐며 의아해하셨다.

여기서 유방에 이상소견을 발견해 주셔서 암 수술받고 호르몬제를 한 달 정도 먹었는데 자궁 검사하러 왔다고 했다. 이 병원 덕분에 초기에 발견할 수 있었다고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했다. 

그리고 제일 걱정됐던 난소암에 대해서도 여쭤보았다. 

"난소암은 초음파로 보면 나오는 건가요?"

"초음파로 보는 것보다 피검사로 하는 게 나은데 정밀하게 하는 게 있고 기본으로 하는 게 있어요. 돈 차이가 좀 많이 나서 선생님께 한번 물어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라고 말씀해 주셨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진료실로 들어갔다. 간호사 선생님이 치마로 갈아입고 나오라고 했다. 

가운보다 더 입기 싫은 고무줄 치마... 옷을 갈아입고 눕기 싫은 의자에 누워 의사 선생님을 기다렸다. 

마음은 떨렸지만 여유로운 척 유방암에 걸려 수술했고 약을 먹고 있는 중이라고 자궁내막의 두께를 확인하고 싶다고 차분하게 말했다. 

선생님은 초음파를 이리저리 돌리면서 확인했다. 그러더니 "괜찮네요." 하셨다. 

'다행이다. 별일 없어 다행이다.'

옷 갈아입고 나와 궁금했던 부분을 물어보았다. 

"호르몬제를 먹으면 생리가 끊긴다고 하던데."

"환자분은 금방 끊길 것 같진 않아요. 대신에 호르몬치료는 이제 못하는 거예요."

라고 하셨다. 호르몬에 지배를 받게 되면 그러려니 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난소암이 걱정돼서 그러는데 초음파로 보면 보이나요? 전조증상 같은 게 있나요?"

"전조 증상은 거의 없어요. 초음파로 난소암이 확인되면 3-4기쯤 되는 거예요."

"헉. 아 그렇군요. 밖에서 피검사로 진행하자고 하던데, 정밀 검사하는 게 나을까요?"

"아직은 난소암에 걸릴 나이가 아니에요. 그냥 기본만 하셔도 될 것 같아요.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거예요"라고 하셨다. 

"선생님 마지막으로. 암이라는 게 재발, 전이 뭐 이런 거에서 자유롭지는 못하잖아요."

"환자분, 현재 수술 한지 얼마 안 됐잖아요. 재발. 전이는 아직은 없어요. 정기적으로 검사받으시면서 즐겁게 사세요."라고 하셨다.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내일이 무서워 늘 슬프게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직은 두렵지만 현재의 건강한 상태를 즐기며 살아야겠다 마음먹었다. 

진료실을 나와 밖에서 난소암 피검사를 하였다. 이젠 피 뽑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결과는 내일 문자로 알려준다고 했다. 또 기다림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전날 밤 오랜만에 걱정돼 잠이 잘 안 왔다. 다음날 오후 산부인과에서 문자가 들어왔다. 

<난소암 결과 정상입니다.> 정상이라는 문자에 마음의 평화가 찾아왔다. 


며칠 후 전공의들의 파업소식이 들려왔다. 가족들과 친구들 지인들이 파업하기 전에 수술해서 천만다행이라고 했다. 나보고 역시 운이 좋다고 했다. 

외래도 많고 또 한 번의 수술을 앞두고 있는 나는 마음이 편치 않다.

여기저기서 수술과 외래 진료가 미뤄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혹시나 내 외래 진료도 미뤄질까 싶어 핸드폰을 자꾸만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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