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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 미정 Apr 08. 2024

다시 새로운 시작

오랜만에 친한 친구들을 만난 나기로 했다. 친구들을 만나기 전에 준비해야 할 것들이 많다.

일단 미용실에 전화를 걸어 염색으로 예약을 잡았다. 들어가자마자 사장님은 나를 보더니 항암 안 하게 된 걸 축하한다며 박수를 쳐주었다. 언제 예약하나 기다렸다고 하셨다. 걱정해 주는 마음이 고마웠다.  흰머리가 검은색으로 바뀌고 팔이 아파 긴 머리는 감기 힘들어 기장도 잘라준다. 조금 어려 보일까 싶어 앞머리도 짧게 잘라본다. 머리를 정리하니 좀 낫다.

"오늘 기분전환 잘하고 갑니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해요."라고 마음을 전하고 나온다.

마음고생으로 얼굴이 상했을까 싶어 친구들 만나기 전부터 밤마다 얼굴에 팩을 붙인다. 그래도 마음에 들지 않아 주렁주렁 귀걸이도 달아본다. 예전엔 눈에 띄지 않는 작은 귀걸이를 선호했는데 초라한 내 모습을 숨기고 싶은 마음에 조금은 눈에 띄는 큰 귀걸이를 걸어본다. 마음에 드는 옷이 없어 옷도 산다. 다른 사람에게 보이는 내 가슴이 이상할까 싶어 이 옷 저 옷으로 갈아입어본다. 아무도 내 가슴을 유심히 살펴보는 사람은 없다는 걸을 나는 안다. 알면서도 신경이 쓰인다. 짝짝이인 게 밖으로 많이 티가 나는지 거울이 이리보고 저리 본다.

겉에 외투를 걸쳐보니 만족스럽다.

하지만 이것으로는 부족한 것 같아 태어나서 처음으로 네일아트를 받아보기로 한다.

영양사라는 직업으로 인해 한 번도 못해봤다. 암에 걸린 지금은 혹시 몸에 안 좋을까 싶어 하기도 전에 걱정되긴 했다. 다시 태어난 김에 하고 싶은 거 하고 살자 싶었다. 내가 사장님께 부탁하는 건 딱 한 가지."눈에 잘 띄지 않는 색으로 해주세요."라고 했더니 네일 사장님이 "돈 쓰는데 티가 안 나면 되나요." 하면서 "이런 색은 어떠세요?" 하면서 봄에 어울리는 파스텔톤 노란색과 보라색을 보여주셨다.

알록달록, 반짝반짝 바뀌는 내 손톱에 기분이 무지 좋아졌다. '이래서 네일을 받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머리를 정리했을 때와는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나름 신경 쓴 모습으로 친구들을 만난다. 친구들은 예전의 내 모습과 똑같다면서 기쁘고 잘됐다고 했다.

친구들이 내 입원생활이 슬프기도 하고 웃기다면서 시트콤 같다고 한다.

늘 그랬던 것처럼 맛있는 거 먹고 끝없는 수다를 떨다 헤어졌다.

아프고 나서 식구들은 나를 환자처럼 생각해 줬으면 좋겠고 친구, 지인들은 나를 예전과 똑같이 대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가족들에게는 보살핌을 받고 싶고 친구와 지인들에게 나 아직 건재하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기다리고 있을 유치원에 한 달 만에 출근한다. 조리장님과 선생님들을 오랜만에 만날 생각 하니 좀 떨리는 느낌이 들었다. 마침 아이들이 차량 등원을 막 마친 때였는지 원장님 및 모든 선생님  문 밖에 나와있었다.

내가 걸어오는 모습 본 선생님들이 박수를 치면서 환대를 해주셨다. 고생 많으셨다고 다시 건강하게 돌아오신 걸 환영한다면서 반겨주시니 몸 둘 바를 몰랐다. 눈물이 나올 것 같은 마음을 꾹 참고 감사한 선생님들께 눈을 맞추고 반가운 인사를 나눴다. 원장님은 나를 따로 불러 기존 퇴근시간보다 일찍 가라고 하신다. 많이 괜찮아졌다고 했지만 원장님 본인이 괜찮지 않다면서 쉬엄쉬엄 하면서 오래 보자고 했다. 고마운 마음 감사하게 받겠다고 하며 조리실로 올란 간다. 조리장님은 내 얼굴을 보더니 "어머 세상에. 똑같네 똑같아 잘 왔어요."라며 반갑게 인사해 주신다. 젊으니 빨리 잘 이겨낸 거라고 하셨다. 한 달 전에 무서워 죽겠다며 울며불며 이야기했었는데 오늘은 크게 웃으며 생각보다 별거 아니었다고 말한다. 벌써 수술은 웃으면 말할 수 있는 과거의 일이 되었나 보다.


저녁에 들어온 신랑에게

"내가 생각해도 나는 진짜 대단한 것 같아. 그 힘든 과정들을 다 이겨내니 얼마나 대단한 거야."라고 말했더니 "대단한 게 아니고 그 상황이 되면 누구나 해낼 수밖에 없는 거야."라며 T답게 역시 남/ 편 답게 이야기를 해주었다. 괜찮다. 누가 뭐라고 말하건 상관없다. 나 스스로가 누구보다 회복에 최선을 다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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