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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 미정 Apr 14. 2024

부부의 세계

엄마는 조심스레 말한다. "김서방한테 가슴 소독해 달라고 하지 말고 네가 해봐."라고 말이다. 망가진 가슴을 을 남편에게 될 수 있으면 보이지 말라는 말을 에둘러 표현하신다. 사랑해도 추한 모습은 서로 조심하며 살아야 한다고 했다. 이런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다. 남편이 아이 낳는 부인의 모습을 보고 충격받아서 관계가 소원해졌다는 이야기말이다. 수술 후 반드시 화장실에 가야 한다고 간호사가 신신당부했었다. 아이 낳았을 때도 그랬다.  그땐 엄마가 함께 화장실로 들어갔다. 혼자 가도 괜찮다고 했는데 엄마가 절대 안 된다며 부축을 받아 들어갔다 일어서서 나오려는데 핑~하면서 잠깐 쓰러졌었다. 이번에도 그럴 수 있다는 생각에 신랑이 화장실 들어온다고 해도 그러라고 했다. 정이 떨어지거나 말거나 이제는 어쩔 수 없다. 당장 의지할 사람이 신랑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행히 저번처럼 핑~ 도는 느낌은 없었다. "오빠한테 별꼴 다 보여주네. 미안해."라고 했다. 신랑은 "환자가 다 이렇지. 그런 거 신경 쓰지 말고 회복에만 신경 써."라고 해준다. 언제나 덤덤한 사람이다. 수술 후 매일 아침 소독할 때 신랑이 옆에 서서 손 잡아주었다. 엉망이 된 처참한 가슴을 보아야 하는데 신랑의 마음은 어땠을까 싶다. 입원했들때 온 정성을 다해 돌봐주는 모습에 "나는 앞으로 당신 똥도 치울 수 있을 것 같아."라고 신랑에게 플러팅을 했다. 몸과 정신이 아파보니 역시 신랑밖에 없다. 

수술 후 주기적으로 가슴에 주사를 맞고 온 날은 컨디션이 매우 안 좋아진다. 그런 나의 기분을 잘 아는 신랑은 "가슴이 더 예뻐졌네."라는 말로 나를 위로해 준다. 점점 더 좋아졌다. 예뻐졌다.라는 말등이 나를 기분 좋게 만드는 걸 아는 것이다. 신랑의 말 한마디에 거울을 한번 더 쳐다보게 된다. 

유방암 걸린 환자들의 부부관계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이 나오는데 인상적인 글귀가 있어 신랑에게도 읽어줬다. 


<행복한 유방암 환자 부부를 위한 지침>

남편을 위한 지침

1. 묵묵히 들어준다. 2. 유방암 자가 진단법을 익혀 진단을 도와준다. 3. 병원에 같이 같다. 4. 부부 관계를 기피하는 아내를 이해하되, 사랑의 표현을 아끼지 않는다. 5. 가사 노동이나 자녀 교육의 부담을 덜어준다. 

6. 아내를 안아 주고 웃게 한다. 


아내를 위한 지침

1. 남편의 행동과 말투에 속단하고 상처받지 않는다. 2. 자신의 상황을 이해해 줄 친구를 만든다. 3. 남편에게서 삶의 희망을 얻고 있음을 표현한다. 4. 매일 아침마다 '잘 해내고 있다'라고 자신을 격려한다. 5. 생활 방식을 변화시킨다. 6. 주치의와 상담하고 그의 권고를 100% 따른다. 

2007년 한국 유방암학회 발표 (행복한 유방암 환자 부부를 위한 지침)


내가 유방암에 걸리고 신랑이 가장 많이 바뀐 부분은 가사일에 적극적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내가 조금만 피곤해하면 벌떡 일어나 설거지도 하고 빨래도 한다. 그리고 4번 부부관계, 부부들에게 성관계도 중요하다. 

우리 부부는 원래 성관련 농담을 자주 하는 편이었다. 신랑의 진짜 마음은 모르겠지만 언제나 괜찮다고 해준다. 늘 나를 웃게 해 준다. 아프기 전 보다 나에게 훨씬 신경 쓰는 게 느껴진다. 

<굿바이 유방암>이라는 책을 보니 유방암에 걸린 남편들이 부인에게 편지를 쓰기도 한다고 했다. 

편지는 연애할 때 빼고 받아본 적이 없는데 오랜만에 짧아도 좋으니 편지 써달라고 부탁했다. 역시나 한 줄도 못쓰겠다는 신랑이다. 어려운 글 쓰기보다는 가볍게 질문을 던졌다. 


나:부인이 유방암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기분이 어땠어?

남편:최악의 상황과 아닐꺼야 라는 생각이 왔다 갔다 했지. 

나: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담담했어?

남편:걱정하는 너에게 나까지 그럴 순 없잖아. 속은 썩어 들어가지만 내색하진 않았지.

내 마음:이 대답에 울컥하는 눈물을 삼켰다.

남편:제일 떨렸던 순간은 1차 병원에 조직검사 결과 들으러 오라고 하는 날이었어. 너에겐 미안하지만 초기라고 판정받았을 때 안심되고 걱정이 사라졌지.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과 우리 가정이 무너지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 

내 마음:나는 그때보다 대학병원 검사결과가 더 떨렸었다. 

나:수술장에 들어가는 나를 봤을 때는?

남편:네 뒷모습에 안쓰럽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 수술하고 나왔는데 수술이 잘못된 줄 알았잖아. 

분명 가슴 수술을 했는데 자꾸 팔이 아프다고 해서...

나:아하하하~~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 없어?

남편:우울해하지 않고 씩씩하게 생활하는 모습에 고맙고 평상시 모습으로 돌아온 것 같아 기쁘지.

나:마지막으로 유방암 걸린 부인을 둔 남편들에게 이런 건 꼭 지켜라 하는 게 있어?

남편:부인을 불쌍하게 생각하고 자존감 올려준다고 평소와 다른 행동을 하지 말아라. 이 정도...

내 마음:우울해하지 않고 씩씩하게 생활할 수 있는 건 아무 일 없던 그때처럼 나를 대해 줘서 그런 것 같아. 


나와는 반대로 확신의 T 성향을 강하지만 내가 슬픔에 빠져있을 때 건져줄 사람도 이 사람 밖에 없는 것 같다. 

평일 커피숍에서 커피 마시고 여유를 즐기며 내 몸 회복을 위해 운동에만 신경 쓰고 도서관에서 읽고 싶은 책 실컷 읽으며 행복을 느꼈다."오빠 나 너무 행복해. 돈 많이 벌어와서 나 이런 거 평생 느끼게 해 줘 "라고 문자를 보냈다. 

금방 답문이 들어왔다 "미안해. 힘들 것 같아."농담도 잘하는 신랑이다.


<에필로그>

오늘도 신랑에게 쓴 글을 읽어주었다. 

'농담도 잘하는 신랑이다.'라는 마지막 말에 "농담 아닌데. 나 진짜 몇 년 안 남았는데."라며 죽는소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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