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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 미정 Apr 13. 2024

내가 제일 잘 나갔었지

유방암이라는 것을 모르던 작년, 손만 대면 모든 게 척척 잘 풀렸다. 

염원했던 대학원도 졸업했고 강의하고 싶다는 나에게 교수님들이 기회를 주셨다. 

일도 하면서 강사로 돌아다니면서 힘든지 몰랐다. 바쁠수록 더욱 행복했다. 강사이긴 하지만 그래도 좋았다. 졸업 논문 대신 수원에서 진행하는 공모전에 나가보라는 교수님의 제안으로 며칠 밤을 새우며 공모전 준비를 했다. 노력 대비 성적은 별로였는데 공모전은 좋은 성적을 있었다. 하면 되는구나 라는 느낌을 그때 처음으로 느껴봤던 것 같다. 그러다 경기도민온라인강사를 뽑는다는 공고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몇 날 며칠을 뽑히기 위해 노력했다. 이번의 노력도 빛을 바랐다. 내가 높은 경쟁률을 뚫고 경기도민온라인 강사에 합격한 것이다. 그때의 나의 주제는 '영양사 엄마의 저염저당 요리 만들기'였다. 촬영 전에 카메라 테스트와 전문가의 스피치 코칭도 들으면서 열심히 준비했다. 그날 또 믿을 수 없는 행운이 찾아온다.

JTBC 잇츠마이라이프 작가의  캐스팅이라는 것을 받게 되었다. 역시 나는 될 사람이구나 싶었다. 

무사히 잘, 방송촬영까지 마쳤다. 마음먹는 것마다 잘되니 그 당시 나의 자신감은 하늘을 찔렀다. 

다음 해 수원시와 함께 진행한 공모전에서 상 받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전시회를 진행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수원시 문화재단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성황리에 전시회를 잘 마치고 여러 인연들을 만나다 보니 나는 또 다른 꿈을 꾸게 되었다. 잘 되면 잘될수록 할 일이 많아졌고 바빠졌다. 주말도 쉴 수 없었다. 음식을 만들어야 했고 공부해야 했다. 힘들고 짜증 날 때도 많이 있었지만 이상하게 행복했다. 사람들이 힘들지 않냐고 물어본다. 부모님도 걱정하셨다. 하지만 나는 멈출지 모르는 경주마처럼 더 성공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 귀와 눈을 막고 앞으로 달려갔다. 오랫동안 해온 영양사 일도 재밌었지만 강의하는 일도 매우 즐거웠다. 사람들 앞에서 뽐내는 나 자신이 멋졌다. 주말에도 쉬지 않고 백화점 문화센터에 요리재료를 바리바리 싸들고 평택, 분당, 수원 가리지 않고 다녔다. 나에게 여행은 꿈도 못 꾸는 일이고 쉼은 사치였다. 잠은 죽어서 자라는 말을 마음에 새기며 열심히 일했다. 내가 제일 잘 나간다며 뽐내며 다녔는데 유방암으로 내 생활은 박살이 났다. 

요리재료를 한가득 들고 다니는 강의는 이제 하지 못한다. 팔의 림프 부종을 평생 관리해야 하게 때문이다. 

나는 이제 전이와 재발을 걱정하며 살아야 하는 암 환자가 된 것이다. 

박살이 났지만 다시 돌려놔야 한다. 이렇게 살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 하던 일이 없어지니 몸이 근질거렸다. 유방암을 겪으면서 느꼈던 감정들을 글로 표현하고 싶었다. 적어두지 않으면 다 사라져 버릴 나의 감정을 오롯이 담아내고 싶었다.(블로그에 쓰는 건 한계가 있다고 느꼈다.) 마침 담해북스의 <오늘 쓰다>라는 프로그램을 알게 되어 매일 내가 느꼈던 감정들을 쏟아낸다.(글자수 제한 없이 쓰고 싶은 주제를 맘껏 쓰는 것이다.) 글을 쓰면서 결과의 두려움, 긴장감, 수술할 때의 덜덜 떨리는 순간을 자세히 기록하려고 했다. 글을 쓰면서 그런 나를 지켜봐야 하는 가족들이  마음이 어땠을지 느껴지도 한다. 나 스스로가 가엾다는 생각에  눈물이 주룩주룩 나기도하지  점점 쓰다 보니 가엾다는 생각보다는 대견하다는 느낌으로 바뀌고 있는 중이다. 또 매일 해야 하는 일이 있으니 삶의 활기가 느껴진다. 


나에겐 찐팬 독자 2명이 있는데 그들이 오늘도 내 글을 기다린다. 쓴 글을 소리 내 읽어주다 목이 메어 짧은 글임에도 읽기를 몇 번 멈추기를 반복하다 이야기가 끝난다. 딸아이가 박수 쳐주기도 하고 신랑은 다음의 내용을 다 알면서  다음 편이 궁금하다고 해준다. 그리고 같이 글 쓰는 카톡방에서 글동무들에게도 많은 위안을 받는다. 얼굴 한 번도 못 본 분들인데 "힘내세요. 갑시다. 같이 걸어줄게요. 저는 글동무니깐요."라는 내 글 밑에 따뜻한 댓글을 남겨주셨다. "같이 걸어줄게요."라는 부분에서 눈물 버튼이 눌렸다. 암이라는 것은 나 혼자 이겨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같이'라는 단어에 마음이 먹먹해졌다. 글 끝에  '글동무'라는 단어가 참 정겨웠다. 좋아서 시작했는데 가끔은 매일 쓰다 보면 괴롭기도 하다. 하지만 많은 것을 얻는 것 같다. 


항암과 방사선 치료 하는 사람들의 후기를 읽어본다. 몸에 있는 털이 빠지는 건 기본이고 손톱과 발톱이 까맣게 변하거나 울퉁불퉁 해지며 온몸이 붓고 관절에 통증도 동반된다고 한다. 항암제는 몸의 점막들을 공격해 구내염, 오심, 구토, 설사 변기가 기본적으로 나타난다고 한다.(열방약국 유방암 상담소 참고) 방사선 치료는 항암제보다는 단순하지만 피부의 색이 변하기도 하고 피부의 질도 예전과 달라졌다는 후기를 읽었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는 것 같다. 항암과 방사선 치료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참 감사한 일인데 유방암에 안 걸렸으면 더 좋았을 텐데라고 생각한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사실 내려놓는 게 뭔지 모르겠다.) 회복에만 전념한다. 내가 꿈꾸던 미래의 나는 건강하지 못하면 없는 것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나는 앞으로 건강할 것이다. 

며칠 전 환절기로 몸살이 온 것 같았다. '나는 지금 열나면 안 되는데. '내 몸이 걱정되어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아프지 않았을 때는 감기 따위에 지지 않았는데 암 환자가 된 지금은 흔한 감기에 덜덜 떨고 눈물까지 흘리게 되었다. 눈물을 왈칵 쏟는 내 모습에 신랑이 놀란 모양이다. 잘 잘 수 있게 잠자리도 봐주고 아침에 출근하면서 열나진 않는지 손도 올려 체크한다. 아침마다 "컨디션 괜찮아?"를 물어서 인지 잠꼬대처럼 나에게 묻는다."오늘 컨디션 어때?"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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