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기의 육아는 아이가 태어남과 동시에 시작된다. 먹는 것부터 시작한다. 모유를 먹이지 않고 분유를 먹인다는 것은 아이에게 크나큰 죄를 짓는 것 같았고, 이유식을 먹이면서부터는 모든 재료는 유기농으로 깐깐하게 구입했다. 아이가 잠든 밤에 쉬지 않고 이유식을 공장처럼 만들고 만들었다. 시판되는 이유식 먹이면 큰일 나는 줄 알았다. 다 소용없는 일이었다. 지금은 내가 해주는 음식보다 삼각김밥을 더 좋아하니 환장한다.
이번에는 교육이다. "엄마 아빠"도 잘 발음하지 못하는 아이에게 영재교육까지 주입한다. 한글도 잘 모르는 유치원생 아이이게 원어민 선생님을 붙여 영어교육을 시킨다. 이렇게 하면 우리 딸 똑똑한 아이로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광기의 육아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하면서 각종 미술대회, 글짓기 대회, 그리고 피아노 연주회에 출전시킨다. 상 받을 수 있는 기회는 저학년 때뿐이라고 아이를 밀어붙인다. 각종 학원 선생님께도 밀착 지도 부탁드린다. 그렇게 받은 상은 딸이고 나에게 아무 의미가 없었다. 다 내 욕심이었다.
나 또한 초등학교 운영위원회라던지, 학부모회, 반대표 겸 겸직을 했다. 이런 내 모습을 보면 아이의 없던 리더십이 생길 줄 알았다. 하지만 내가 아무리 설치고 다녀도 우리 딸은 끄덕도 하지 않았다.
"배우고 싶은 게 없어? 다른 집 애는 이 학원 다니고 싶다 저 학원 보내달라고 한다는데 너는 하고 싶은 게 없는 거야? 엄마는 네가 배우고 싶다고 하면 뭐든지 해줄 수 있어. 욕심을 좀 내봐."라고 닦달한다.
키 크려면 운동도 해야 한다며 데리고 나가고 주말이면 공공기관에서 주최하는 교육프로그램에 아이를 밀어 넣는다. 놀이터에서 노는 친구가 부럽다고 자기에게도 자유의 시간을 달라고 하는 아이에게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라고 한다. 이 동네 애들만 노느거라고 옆 동네 놀이터에는 노는 애들 하나도 없어라고 하며 학원 차에 실어 보낸다. 방학에도 맞벌이하는 부모 때문에 늦잠 한번 잘 수가 없다. 미안하다기보다는 규칙적인 삶이 깨지지 않는 것 같아 좋기도 했다.
그러다 2023년 겨울 우리 딸과 함께 나도 방학을 했다. 내가 유방암에 걸린 것이다.
그러면서 삶을 바라보는 태도가 달라졌다. 바로 건강이 제일이라는 간단한 명제를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수술을 마치고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내 딸 이름. 입원하고 열흘동안이나 아이를 볼 수 없었다. 이렇게 오래 떨어져 지낸 적이 없어 걱정되었는데 내가 속상하지 않게 잘 지내줘서 고마웠다.
퇴원하고 집에 돌아와서는 팔이 아픈 나를 위해 머리도 말려주고 딸기도 씻어준 착한 딸이다.
그 아이의 마음에 아픈 엄마의 모습이 각인되는 게 가장 싫었다. 아이를 위해서라도 우울해서는 안된다. 털어내야 한다. 일어나야 한다고 아이를 생각하며 힘을 냈다.
아프기 전에는 영어학원에서 보강수업을 한다고 하면 애가 싫다고 하든 말든 밀어 넣었지만 지금은 싫다고 하면 더 이상시 키지 않는다. 다니기 싫다는 학원들을 모두 정리해 주었다. 현재 아이가 아프지 않고 몸과 마음이 건강한 게 참 고맙다. 내가 그동안 아이를 힘들게 했던 것 같다.
"엄마 왜 그래? 나 진짜 학원 안 다녀도 되는 거야?"라고 걱정되는 얼굴로 묻는다.
"그동안 엄마 때문에 너무 힘들었을 것 같아. 맞춰주느라 우리 딸 힘들었네."
"헤헤~"하고 웃는다. (아니라고는 안 한다.)
유순한 성격으로 하라면 군소리 없이 열심히 하는 타입이었다. 그래서 어쩌면 더 밀어붙였던 걸 수도 있다.
"학교 끝나고 친구들이랑 놀이터에서 놀다 들어와."
"진짜? 진짜 그래도 되는 거야?"
며칠 후 동네 친구에게 전화 온다. 몸이 어떻냐는 안부전화였지만 결국 아이들의 교육문제로 끝난다.
"우리 딸 00 어학원, 00 어학원에서 테스트받았는데 점수 괜찮게 나왔더라고. 가윤이는 영어 학원 어디 다닌다고 했지?" 은근히 자랑을 한다. 그러면서 "이제 4학년이니깐 수학도 좀 잡아줘야 하잖아. 수학학원은 00 동네 있는 00 학원이 좋다고 하더라고. 대형학원, 소형학원 장단점이 다 있지. 고민이다. 진짜..."
라며 골치 아픈 이야기들을 늘어놓는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내려놓았던 마음이 다시 급해진다.
'00 수학학원에 내일이라도 데리고 가서 테스트라도 한번 받아 봐야 하나' 싶었다. 내 귀에 딸의 절규가 들리는 것 같다. "공부 다 필요 없다며 건강이 최고라며!!!!"
전화를 끊을 기미는 없었다 이번에는 키.
"가윤이는 키 얼마나 큰데? 검사받아봤어? 우리 애는 예상보다 키가 안 나와서 요즘 영양제 먹이고 주사도 맞히고 있잖아." 맞다. 요즘은 아이의 키도 부모가 다 만들어 줄 수 있는 시대가 왔다. 병원 데리고 다니면서 주사 맞히면 예상했던 키보다 더 클 수 있다고 한다. 타이밍이 중요한 주사라고 한다. 물론 부작용이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 후로 한참의 수다가 더 이어지고 전화 통화를 마쳤다.
내 건강 회복만 생각하느라 아이의 학원을 열심히 알아보고 있지 않는 내가, 또 키 성장의 골든 타임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닌지 싶어 내가 한심하게 느껴진다.
휘청이는 나에게 친정엄마는 아이의 그릇을 생각해야지 그릇이 작은데 물을 자꾸 부으면 넘치고 결국 깨진다고 이야기해 준다. 다른 사람 말에 휘둘리지 말고 가윤이를 잘 보고 판단하라고 했다.
내 그릇도 모르겠는데 아이의 그릇을 어떻게 판단하라는 건가. 부모는 자식에 콩깍지가 세게 껴있어 내 자식은 다 천재라고 생각하지 않는가 말이다. 이렇게 말하면 신랑은
"우리 학교 다닐 때를 생각해 봐. 당신 공부 잘했어? 난 못했어. 그것만 생각하면 가윤이 답 나온 거야."라고 찬물을 확 끼얹는다. 정신이 확 든다.
내려놓으려는 마음이 자식에게는 왜 이렇게 어려운 건지 모르겠다. 꼰대력이 상승해서 "엄마가 지금 너한테 지름길 알려주잖아. 옆집 애 한테는 절대 안 알려주지만 너니깐 말해주는 거잖아." 하면서 아이를 또 숨 막히게 한다. 사랑이 집착이 되지 않게 이번 기회에 현명한 엄마로 다시 태어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