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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 미정 Apr 23. 2024

사랑해 우리 딸

광기의 육아는 아이가 태어남과 동시에 시작된다. 먹는 것부터 시작한다. 모유를 먹이지 않고 분유를 먹인다는 것은 아이에게 크나큰 죄를 짓는 것 같았고, 이유식을 먹이면서부터는 모든 재료는  유기농으로  깐깐하게 구입했다. 아이가 잠든 밤에 쉬지 않고 이유식을 공장처럼 만들고 만들었다. 시판되는 이유식 먹이면 큰일 나는 줄 알았다. 다 소용없는 일이었다. 지금은 내가 해주는 음식보다 삼각김밥을 더 좋아하니 환장한다. 

이번에는 교육이다. "엄마 아빠"도 잘 발음하지 못하는 아이에게 영재교육까지 주입한다. 한글도 잘 모르는 유치원생 아이이게 원어민 선생님을 붙여 영어교육을 시킨다. 이렇게 하면 우리 딸 똑똑한 아이로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광기의 육아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하면서 각종 미술대회, 글짓기 대회, 그리고 피아노 연주회출전시킨다. 받을 수 있는 기회는 저학년 때뿐이라고 아이를 밀어붙인다. 각종 학원 선생님께도 밀착 지도 부탁드린다. 그렇게 받은 상은 딸이고 나에게 아무 의미가 없었다. 욕심이었다. 

나 또한 초등학교 운영위원회라던지, 학부모회, 반대표 겸 겸직을 했다. 이런 내 모습을 보면 아이의 없던 리더십이 생길 줄 알았다. 하지만 내가 아무리 설치고 다녀도 우리 딸은 끄덕도 하지 않았다. 

"배우고 싶은 게 없어? 다른 집 애는 이 학원 다니고 싶다 저 학원 보내달라고 한다는데 너는 하고 싶은 게 없는 거야? 엄마는 네가 배우고 싶다고 하면 뭐든지 해줄 수 있어. 욕심을 좀 내봐."라고 닦달한다. 

키 크려면 운동도 해야 한다며 데리고 나가고  주말이면 공공기관에서 주최하는 교육프로그램에 아이를 밀어 넣는다. 놀이터에서 노는 친구가 부럽다고 자기에게도 자유의 시간을 달라고 하는 아이에게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라고 한다. 동네 애들만 노느거라고 동네  놀이터에는 노는 애들 하나도 없어라고 하며 학원 차에 실어 보낸다. 방학에도 맞벌이하는 부모 때문에 늦잠 한번 수가 없다. 미안하다기보다는 규칙적인 삶이 깨지지 않는 것 같아 좋기도 했다. 


그러다 2023년 겨울 우리 딸과 함께 나도 방학을 했다. 내가 유방암에 걸린 것이다. 

그러면서 삶을 바라보는 태도가 달라졌다. 바로 건강이 제일이라는 간단한 명제를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수술을 마치고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내 딸 이름. 입원하고 열흘동안이나 아이를 볼 수 없었다. 이렇게 오래 떨어져 지낸 적이 없어 걱정되었는데 내가 속상하지 않게 잘 지내줘서 고마웠다. 

퇴원하고 집에 돌아와서는 팔이 아픈 나를 위해 머리도 말려주고 딸기도 씻어준 착한 딸이다. 

그 아이의 마음에 아픈 엄마의 모습이 각인되는 게 가장 싫었다. 아이를 위해서라도 우울해서는 안된다. 털어내야 한다. 일어나야 한다고 아이를 생각하며 힘을 냈다. 

아프기 전에는 영어학원에서 보강수업을 한다고 하면 애가 싫다고 하든 말든 밀어 넣었지만  지금은 싫다고 하면 더 이상시 키지 않는다. 다니기 싫다는 학원들을 모두 정리해 주었다. 현재 아이가 아프지 않고 몸과 마음이 건강한 게 참 고맙다. 내가 그동안 아이를 힘들게 했던 것 같다.

"엄마 왜 그래? 나 진짜 학원 안 다녀도 되는 거야?"라고 걱정되는 얼굴로 묻는다.

"그동안 엄마 때문에 너무 힘들었을 것 같아. 맞춰주느라 우리 딸 힘들었네."

"헤헤~"하고 웃는다. (아니라고는 안 한다.)

유순한 성격으로 하라면 군소리 없이 열심히 하는 타입이었다. 그래서 어쩌면 더 밀어붙였던 걸 수도 있다. 

"학교 끝나고 친구들이랑 놀이터에서 놀다 들어와."

"진짜? 진짜 그래도 되는 거야?"


며칠 후 동네 친구에게 전화 온다. 몸이 어떻냐는 안부전화였지만 결국 아이들의 교육문제로 끝난다. 

"우리 딸 00 어학원, 00 어학원에서 테스트받았는데 점수 괜찮게 나왔더라고. 가윤이는 영어 학원 어디 다닌다고 했지?" 은근히 자랑을 한다. 그러면서 "이제 4학년이니깐 수학도 좀 잡아줘야 하잖아. 수학학원은 00 동네 있는 00 학원이 좋다고 하더라고. 대형학원, 소형학원 장단점이 다 있지. 고민이다. 진짜..."

라며 골치 아픈 이야기들을 늘어놓는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내려놓았던 마음이 다시 급해진다. 

'00 수학학원에 내일이라도 데리고 가서 테스트라도 한번 받아 봐야 하나' 싶었다. 내 귀에 딸의 절규가 들리는 것 같다.  "공부 다 필요 없다며 건강이 최고라며!!!!"

전화를 끊을 기미는 없었다 이번에는 키.

"가윤이는 키 얼마나 큰데? 검사받아봤어? 우리 애는 예상보다 키가 안 나와서 요즘 영양제 먹이고 주사도 맞히고 있잖아." 맞다. 요즘은 아이의 키도 부모가 다 만들어 줄 수 있는 시대가 왔다. 병원 데리고 다니면서 주사 맞히면 예상했던 키보다 더 클 수 있다고 한다. 타이밍이 중요한 주사라고 한다. 물론 부작용이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 후로 한참의 수다가 더 이어지고 전화 통화를 마쳤다. 

내 건강 회복만 생각하느라 아이의 학원을 열심히 알아보고 있지 않는 내가, 또 키 성장의 골든 타임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닌지 싶어 내가 한심하게 느껴진다. 

휘청이는 나에게 친정엄마는 아이의 그릇을 생각해야지 그릇이 작은데 물을 자꾸 부으면 넘치고 결국 깨진다고 이야기해 준다. 다른 사람 말에 휘둘리지 말고 가윤이를 잘 보고 판단하라고 했다. 

내 그릇도 모르겠는데 아이의 그릇을 어떻게 판단하라는 건가. 부모는 자식에 콩깍지가 세게 껴있어 내 자식은 다 천재라고 생각하지 않는가 말이다. 이렇게 말하면 신랑은 

"우리 학교 다닐 때를 생각해 봐. 당신 공부 잘했어? 난 못했어. 그것만 생각하면 가윤이 답 나온 거야."라고 찬물을 확 끼얹는다. 정신이 확 든다. 

내려놓으려는 마음이 자식에게는 왜 이렇게 어려운 건지 모르겠다. 꼰대력이 상승해서 "엄마가 지금 너한테 지름길 알려주잖아. 옆집 애 한테는 절대 안 알려주지만 너니깐 말해주는 거잖아." 하면서 아이를 또 숨 막히게 한다. 사랑이 집착이 되지 않게 이번 기회에 현명한 엄마로 다시 태어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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