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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 미정 Apr 22. 2024

다시 사랑에 빠지다


"아 꿀맛 같은 그대 사랑에 내 인생을 걸었잖아."
남진, 장윤정 (당신이 좋아 중에)


엄청 사랑해서 결혼했다. 보자마자 한눈에 사랑에 빠졌었다. 처음보고 사랑에 빠졌다고 하면 외모가 뛰어날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전혀 아니라는 것을 미리 말해둔다. 소개팅으로 만난 이 남자의 경청하는 태도가 가 장 맘에 들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태도에 반했다는 말이다. 사회 초년생이나 다름없는 나는 늘 화가 나있고 짜증이 많았다. 활화산 같던 나를 언제나 넓은 바다 같은 마음으로 가라앉혀 줬다. 마음먹은 일이 조금이라도 틀어지면 참을 수 없었던 마음의 여유라고는 전혀 없는 나에게 "뭐 그럴 수도 있지, 피곤하면 쉬기도 하는 거지. 오늘 못하면 내일 하면 되지."라고 다독여 주었다. "내 남자친구 너무 좋아!!"라고 자랑하던 나에게 친구들이 그 사람의 진짜 성격을 보려면 운전할 때 잘 살펴보라고 주의를 줬다. 하지만 그이는 사귀는 동안 단 한 번도 욕을 한다거나 화 내는 법이 없었다. 완벽 그 잡채다. 게다가 시댁에서 도움 받지 않아도  스스로 신혼집 장만까지 할 수 있는 경제력까지 갖춘 남자였다. 사랑과 헌신은 기본이었다. 시집보내기 아쉬운 부모님의 마음도 모른 채 이 남자와 미치도록 결혼하고 싶었다. 친구들이 우르르 가는 가는 시점에 나도 결혼을 했다. 시집가면서 입이 찢어져라 웃는 내 모습이 엄마는 내심 섭섭했다고 지금도 말씀하신다.  


결혼을 하고 살아보니 경청만 하는 태도는 나를 답답하게 만들었고 피곤하면 쉬는 거지. 오늘 못하면 내일 하지라는 마음은 남자로서의 열정이 없어 보였다. 여기 말고 더 좋은 곳에 가자는 나와는 반대로 현실에 안주하는 신랑이 답답했다. 아이의 교육문제도 그렇다. 아이에게 더 많은 경험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주말마다 다그쳤고 더 좋은 환경에서 공부를 가르쳐야 한다고 닦달했다. 6살이나 많은 오빠에게 이렇게 살면 안 된다고 자기 계발에 매진하라고 등짝을 후려쳤다. 그럴 때마다 신랑은 더 말을 하지 않았고 나만 미치고 팔짝 뛸 지경에 이르렀다.

친구들 모임에서 지금까지 가슴이 뛰는 사랑 하는 부부들은 병원 가봐야 하는 거라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그래 무슨 사랑이야, 의리, 정으로 사는 거지 우리 부모님이 살았던 것처럼.' 같이는 살지만 스킨십은 점점 줄어들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따로 자 버릇해 같이 자지도 않고 아이를 키우면서 유모차를 밀거나 아이손 잡기 바빠서 팔짱을 낀다거나 손을 잡는 기본적인 스킨십이  어색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랑의 감정이 흐릿해지는 느낌까지 들었다. (결혼 14주년을 앞두고 있다.)


2023년 12월 유방암 판정을 받았다. 수술하기 전날까지 신랑의 말을 곡해하면서 날이 서 있었다. 그러다 간이침대에 누워있는 신랑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좋지 않았다. 어쩌다 이사람에게 까지 짐을 주게 되었나 미안했다. 우울하게 생각하면 한도 끝도 없는 입원기간 중 우스갯소리로 내 기분을 환기시켜주었다. 내가 어떻게 하면 기분이 좋을지 잘 아는 이 사람은 감동의 포인트를 콕콕 집어준다. 나는 다시 한번 사랑에 빠졌다. 

"퇴원하면 식기세척기도 사고 로봇청소기도 들여놔."라고 친구들이 훈수를 둔다. 

오른팔이 아프다 보니 기본적인 것을 아무것도 못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자연히 집안일도 전혀 할 수가 없었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온 신랑이 집안일까지 모두 해야 했다.  '내가 아프지 않았다면 저 사람이 저렇게 힘들지 않았을 텐데.'그런 모습을 지켜보며 마음이 짠했다. "퇴근하고 피곤할 텐데, 미안해."라고 마음을 전한다. 

"식기세척기 들여놓을까? 로봇청소기 한번 알아볼까?"라고 할 법도 한데 그는 아직도 말이 없다. 

신랑의 가장 큰 재주는 센스가 있다는 것인데. 가슴 수술을 받고 내 가슴을 신랑에게 보이기 불편하다 싶은 적이 없도록 분위기를 만들어 준다. "예쁘다, 예쁘다"라며 달콤한 말은 해주지는 않지만 전처럼 나를 아무렇지 않게 대해준다. 그러면서 자기만 믿으라고 한다. 그런 말에 나도 모르게 헤헤 웃으며 따라간다. 

퇴원하고 한달쯤 되니 집안일을 할수 있을만큼 몸이 많이 좋아졌다. 신랑은 그런 나에게 예전과 똑같다며 기뻐했고 서서히 나를 환자로 대해주지 않았다. 많이 회복됐지 몸이 예전과 같진 않다. 그런 나에게 더 많은것을 바라는것 처럼 보였다. 


"나는 아직 회복중인 암 환자라고. 어쩌면 죽을때까지 흑흑... 재발과 전이를 걱정하며 살아가야 한단말이야.이런 내가 가엾지도 않아? 흑흑... 어떻게 나한테 지금 더 많은거를 바라는거야? 흑흑... ."하며 또 큰 소리를 냈다. "당신은 모르겠지 암에 걸린 내 심정을...흑흑..." 서운한 마음을 표현한다.


당신도 암걸려서 내 마음을 알아달라는 말이 절대 아니다. 

신랑이 아니고 내 딸이  아니고 부모님이 아니고 차라리 나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가족들은 이런 감정을 전혀 모르고 살았으면 좋겠다. 

사람들은 위로랍시고 유방암은 착한암이라는 둥 초기니깐 괜찮다는 말을 한다. 

물론 틀린말은 아니지만 당사자들은 이런말들이 전혀 위로가 되지 않는다는걸 꼭 알아두었으면 좋겠다. 

이 싸움 후로 내가 조금이라도 피곤해하는 기색이면 얼른 일어나서 도와준다.


퇴원하고 시간이 더 흐르면서 몸도 더 많이 회복이 되고 회사도 다니지 않다 보니 정신적 스트레스가 없어졌다. 그러면서 마음의 여유 주머니가 생겨났다. 일생에 배려라는 걸 신랑에게 해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요즘 들어 '배려'라는 것을 해본다. 나만이 아니라 서로가 말이다. 우울해하지 않고 예전과 같이 생활해 줘서 고맙다고 한다. 내가 슬프지 않을 수 있었던 건 제일 가까이 있는 신랑의 태도 때문이었던 것도 같다.

경제활동을 안 하다 보니 역시나 돈 쓰기가 좀 그렇다. "돈도 안 버는데 너무 많이 쓰고 다닌다."라고 살짝 떠본다. "그동안 열심히 벌어놨잖아. 지금을 즐겨." "그냥 나 생활비 받아서 쓸게." "내가 줬잖아 생활비. 무제한 카드, 그거 써."라는 답변이 왔다. 

미친!! 너무 멋지다.  나는 또 한 번 사랑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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