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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 미정 Apr 21. 2024

엄마와의 데이트


마음 졸이던 많은 일들이 많이 정리가 되었다. 아프지 않았을 때는 하지 못했던 평일날 엄마와의 데이트를 해본다. 아버지는 농사 준비로 3월에 강원도로 가셨고 엄마는 한 달 후에 올라가기로 했다. 

주말 백화점은 많은 사람들에 치여 가만히 있어도 피곤하다. 게다가 주차 난리통을 겪어야 한다. 하지만 평일 백화점 나들이는 짜릿하다. 모든 게 여유롭기만 하다. 엄마와 함께 백화점에 가면 돈 쓸 용기가 필요하다.

나도 필요한 게 많지만 우리 엄마는 필요한 게 훨씬 많은 것 같다. 그냥 지나치치 못한다. 옷이며 신발, 화장품, 리빙용품까지. 쇼핑 리스트가 빡빡하다. 나는 그 용기를 갖고 옷도 같이 쇼핑하고 결재하고, 화장품도 사고 결재해 드린다. 나머지 쇼핑 리스트들은 눈으로만 감상하며 흥분된 마음을 다운시켜 드린다. 

나간 김에 맛있는 점심도 먹고 시원한 커피도 결재한다. "딸이 노니깐 이렇게 평일날 여유롭게 시간을 쓸 수 있어 너무 좋다!"라고 하셨다. 엄마가 좋아하니 나도 기뻤다. 

엄마와 나의 사이는 다른 집의 모녀사이와는 다른 부분이 있다고 신랑이 이야기한다. 보통은 엄마와 딸이 사이가 가까워서 싸우기도 한다는데 나는 엄마와 싸운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가깝기도 하지만 나에게는 어려운 존재가 엄마인 것 같다. 딸아이가 어릴 때 엄마에게 맡기고 남편과 데이트 나간 적 단 한 번도 없었고 잠깐 일한다고 아이를 한나절 엄마에게 부탁할 때는 꼭 시간의 비용을 챙겨드렸다. 부부가 좋다고 낳아놓고 내 부모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맡기는 건 내 사전에 없는 일이다. 엄마의 시간을 뺏는 게 미안했다.

조건 없는 사랑을 받는 건 성인 이전으로 끝내야 한다고 생각했던 같다.


작년겨울부터 내 유방암으로 인해 가족들의 마음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나도 자식 낳아 키워보니 자식이 아픈 것처럼 마음이 찢어지는 일은 없는 것 같다. 이 년 전쯤 딸이 발등에 화상을 입었던 적이 있다. 그때 내가 대신 아팠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줄 수만 있다면 내 발을 잘라서라도 주고 싶었다. 나의 암 소식에 혹여라도 내가 죽으면 어떡하나, 내가 우울증에라도 걸리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을 안겨드려 부모님께 죄송하다. 옷 사다 드리고 밥 사다 드리고 하는 것보다 건강하게 본인의 일 열심히 하는 게 큰 효도인데 말이다. "엄마 광교에 벚꽃이 만발이래." 하며 주말에는 꽃놀이도 나간다. 엄마가 추천해 주는 보리밥 맛집으로 가서 보리비빔밥도 먹고 개나리, 벚꽃 아래에서 사진도 찍는다. 사진을 많이 남겨 놓지 않으면 후회될 것 같아 신랑에게 열심히 찍어달라 부탁한다. 엄마는 "미정아 세상에 이것 봐라. 어쩜 이렇게 예쁠까." 하며 오랜만이 나들이에 기뻐하셨다. 보답하려는 마음이 커져서 그런지 이틀에 한 번꼴로 나가다 보니 기쁜 마음보다는 엄마 모시고 이번엔 어디로 가야 하나 하는 숙제가 생겨버렸다. 선거 하고 엄마를 강원도에 모셔다 드렸다. 다음날 "떠나는 차를 보는데 이렇게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더라. 몸이 안 좋은 깐 걱정돼서 눈물이 났는지도 모르겠어. 엄마가 없으니깐 서운하지?"라고 물으셨다. "그럼. 엄마가 없으니깐 섭섭하지."라고 맞장구를 쳤지만 진짜 속마음은 시원하기도 느낌이 훨씬 크다. 지금부터가 진짜 나만의 시간이 때문이다. 조금은 부담스러운 엄마지만 엄마의 말에는 힘이 있다. 속상한 일이 있거나 고민되는 일이 있으면 엄마를 찾게 되니 말이다. 엄마가 "마음먹은 대로 잘될 거야, 걱정하지 마."라고 하면 정말 그럴 것 같은 힘을 얻는다.

늘 나를 위해 밤낮으로 기도하는 엄마 때문에 난 늘 운이 좋았는지도 모르겠다. 

유튜브를 보는데 부모님 모시고 해외여행 가는 영상을 보게 되었다. 불현듯 부모님 모시고 해외여행 한번 못 가본 사실이 떠올랐다. 핑계는 늘 시간이 없다는 이유였다. 며칠 전 아버지 친구분이 돌아가셨다는 부고를 들었다. 이런저런 사건들로 시간은 무한하지 않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요즘은 부모님 모시고 여행 갈 때 금기어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 

1. 아직 멀었냐. 2 음식이 짜다. 3 음식이 달다. 4. 겨우 이거 보려고 왔냐 5. 조식이 이게 다냐. 6 돈 아깝다. 7. 이 돈이면 집에서 해 먹는 게 낫다. 8. 이거 무슨 맛으로 먹냐. 9. 한국 돈으로 얼마냐. 10. 물이 제일 맛있다. 라는 말이 금기어라고 한다. 10가지나 되는 금기어들이 하나같이 다 재밌다. 

더 늦기 전 올해 겨울에는 부모님 모시고 따뜻한 나라로 해외여행을 가봐야겠다. 부모님께 선서를 받아 내고 가봐야겠다. 가족들이 모두 건강해서 오래오래 같이 좋은 곳 여행 다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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