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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 미정 Apr 28. 2024

부족한 자의 기도


또다시 수술을 앞두고 있다. 한번 해봤으니 괜찮을까? 아무것도 모르는 것보다는 나을까?

아니다. 아니깐 더 무섭다. 의사가 아무리 괜찮다고 해도 환자인 내 입장에서는 두려워 미치겠다. 

'한 번에 다 끝내서 또다시 수술을 하지 않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라는 생각을 한다. 그런 마음이 들 때면 감사한 일을 떠올린다. 바로 항암과 방사선치료가 없었다는 것을 말이다. 이렇게 감사한 일이 많은데 사람인지라 자꾸만 욕심이 난다. 


며칠 전 강원도에 있는 엄마에게 전화가 온다. "잘 먹고 있는 거지?"라고 한다. 그러면서 "잘 먹어야 수술 후에 회복이 잘되지. 엄마 신경 쓰이지 않게 잘 챙겨 먹어해."라고 하신다. 그런 엄마에게 오늘 점심에 소불고기에 양배추쌈 싸서 한 그릇 먹었다고 한다. 실제로 나는 엄청 잘 챙겨 먹고 있다. 명색이 요리블로거 아닌가. 포스팅도 해야 하니 아주 잘 먹고 잘 쉬고 잘 살고 있다. 여기서 통화를 마쳤으면 좋았을 텐데 엄마의 잔소리 폭격이 시작된다. "내가 김서방한테 전화하려고 했어. 너네 집에 뒷 베란다. 그거 어떻게 할 거야. 내가 너네 집 갈 때마다 속이 답답해. 블라인드도 다 걷어 올리고 싹 정리 좀 해. " 옆에서 엄마 통화를 들었는지 아버지가 한마디 거든다. "놔두라고 해. 내가 농사 정리하고 가을에 가서 싹 정리해 줄게."라고 한다. '역시 아빠밖에 없다니깐' 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런 아버지의 말에 "이이는 무슨 가을까지 있으라고 하는 거야."하며 엄마가 쏘아붙인다. 그랬더니 아버지 왈 "어차피 말해봤자 쟤네 가을이 뭐야 내년까지 정리안해."라는 팩폭을 날린다. 역시 부모님은 나를 너무 잘 알아서 탈이다. 

나는 엄마에게 대청소를 못하는 핑계를 댄다. 주말에는 봄이니깐 꽃놀이도 가야 하고 할 일이 많다고 말이다. "엄마 내 말 좀 들어봐, 그냥  청소하는 것도 힘든데  대청소는 마음을 먹어야 해."라고 말한다. "네가 하지 말고 김서방한테 하라고 시켜. 못하겠으면 사람 사서 집 좀 치워."라고 하신다. "알겠어, 정리할게."라고 짜증스럽게 말한다. "집이 훤해야 복도 들어오지. 내가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네가 유방암에 걸릴 애가 아닌데 집이 그래서 그런 것 같아. "라며 엄마는 말도 안 되는 이유를 갖다 붙인다. 

"집 청소랑 유방암이라 뭔 상관이 있는 거야?"

'아니 말이 안 되지 않는가? 유방암이랑 집이 무슨 상관이람...?'

그렇지만 내 집은 내가 잘 가꿔야 하는 것은 맞다. 너무 맞는 말을 하니깐 짜증이 났던 것 같다. 

사실 매일 바쁘다고 신경을 못쓴 것 사실이다. 

"엄마말 들어. 너는 팔 아프니깐 하지 말고 김서방 보고 하라고 해. 알겠지?" 하며 20여분의 잔소리가 끝이 난다. 


이 집은 우리의 신혼집이었다. 그러다 이 집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다 보니 이 집에 산지도 벌써 13년째이다. 리모델링 싹 하고 처음 들어왔을 때는 짐이 많지 않았는데 세월이 흐르다 보니 짐이 말도 못 하게 늘어났다. 뭐가 이렇게 많은 건지 모르겠다. 정리할 생각은 하지 않고 집의 사이즈가 크면 좀 나아질까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나는 내 욕망의 크기를 안다. 아마 커진 집사이즈만큼 짐을 들어놓을게 뻔하다. 

엄마의 잔소리가 식기 전에 마음을 먹어본다. 일단 뒷베란다 문을 열고 심호흡을 한다.  

수술을 앞두고 행운이 필요한 나를 위해 청소한다라고 마음을 먹는다.  통화중 엄마에게 말도 안 된다고 했지만 '집은 정리가 돼있어야 하는 건 맞지' 하며 나도 모르게 연관을 짓는다. 이런걸 지푸라기도 잡고 싶은 심정이라는 것일까?


뒷베란다에서 가장 많이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단연  종이가방이었다. 다음에 써야지 하고 던져놓은 게 산처럼 쌓여있다. 그걸 보고 이 말이 절로 나왔다.' 미정아 이렇게 많이 샀니... 휴...' 백화점이  따로 없다. 

참 이상한 게, 종이가방이 이렇게 많은데 쓸만한 걸 찾으려면 왜 없는지 모르겠다. 그다음으로는 요리수업한다고 일회용품 사놓은 게 여러 가방에 한가득씩 들어있다. 그것은 욕망의 산물이기도 하고 열심히 살았다는 증거들이기도 하다. 정리하면서 "여기에 오빠 물건은 하도 없네." 하니 신랑이 뜬끔없이  "장모님께 전화드려야겠어."라고 한다.  "우리 엄마한테 전화는 왜?" " 딸의 밑낯 좀 보시라고."라고 한다. 그말에 웃음이 터져나왔다. 내가 봐도 우리 집에 신랑 물건은 별로 없다. 방마다 내 물건들로 다 채워져 있다. 좁은 뒷베란다의 물건을 꺼내고 보니 쓰레기들로 방을 가득 채운다. 50리터 쓰레기봉투를 꺼내 정리한다. 정리하고 보니 발 디딜 틈 없던 뒷베란다에 틈이 생겼다. 깔끔하게 정리된 뒷베란다를 보니 뿌듯했다. 이만하면 복이 들어올 것 같았다. 

자기 전에 법륜스님의 기도라는 책을 읽는다. 내용 중에 사람들은 

기도를 하면서 "돈 많이 벌게 해 주세요.""건강하게 해 주세요."" 서울대 가게 해주세요."라고 ~해달라는 기도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스님은 바라는 기도는 하지 말라고 했다. 그 글을 읽으면서 마음이 뜨끔한다. 나도 마찬가지로 매일 자기 전에 수술 잘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기 때문이다.

법륜스님은 기도는 이렇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저는 괜찮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말이다. 이 말은

내려놓고 수행하라는 이야기인데 부족한 나는 또 그렇게 하면 복을 줄까 싶어 '저는 다 괜찮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기도를 한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이제 예뻐지는 수술 하니깐 기대된다고 말하기도 하는데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기대되는 것도 맞지만 무섭기도 하다.  2차 수술하는 날의 디데이가 다가올수록 미치겠다. 아직 그날이 오기까지는 많이 남았다고 마음이 떨릴 때마다 달력을 보며 마음을 가라앉힌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은 하루하루 지나가는 게 아깝고 일분일초가 소중하다. 예전 공원에서 운동하는 노인분들을 볼 때 별 생각이 없었는데 요즘에는 무병장수 하는 노인들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한다. 노인들을 보며 잘 사는 인생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요즘 내가 생각하는 '잘 산 인생'이라는 것은 현재 돈을 많이 벌고 이름을 날리는 것이 아니라 죽을 때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며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것이 '잘 산 인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살면서 별의별 일이 다 있을 것이다. 여직 부모님 그늘에서 신랑이 품에서 어려움이라는 것을 모르고 살았는데 '암'이라는 병에 걸리고 인생의 많은 것을 배우고 있는 중이다. 역시 모든 일에는 나쁜 것만 있는 것 아닌 것같다. 

오늘 밤에는 진정으로 나를 내려놓고 기도를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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