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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 미정 Apr 29. 2024

사춘기와 갱년기


딸이 부쩍 짜증을 잘 낸다. 숙제하다 버럭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매일밤 숙제를 완수하게끔 해야하기 때문에 아이가 버럭해도 살살 달래 가면서 비위를 맞춰준다. 그런데 하루는 내 화도 불쑥 올라왔다. 

"내가 너를 어디까지 맞춰줘야 하는 거야!" 하면서 소리를 버럭 질렀다. 그러면서 "네가 아무리 짜증 내봐, 나 못 이겨. 나 갱년기야!" 했다. 참아야 했었는데 한바탕 전쟁이 끝났다. 

아이가 집에서 집중을 잘 못하는 것 같아 도서관에서 하면 공부가 더 잘 될까 싶어 끌고 간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 새는 법. 한 시간을 넘기니 집에 가고 싶다며 몸을 꼰다. 

"엄마, 나 이제 집중력 떨어졌어. 나 가고 싶어."라고 소곤소곤하게 말한다. 

나는 집중해서 글을 쓰고 있던 중이라."잠깐만!"이라고 하면서 짜증을 냈다. 아이는 입을 삐죽거리면서 핸드폰을 만졌다. 1-2분쯤 지났을까 또 나를 부르면서 핸드폰 화면을 보여준다. 핸드폰 화면 안에는 갱년기 증상들이 이모티콘으로 그려져 있었다. 그중 확대해 보여준 부분이 감정기복이었다. 

그 그림을 보는 순간 웃음이 팍 터졌다. "잘 아네. 엄마 지금 감정기복 있으니깐 알아서 잘 좀 해."라고 했다. 몸을 뒤틀고 있는 딸을 더는 두고 볼 수 없어 글 쓰던 것을 정리하고 일어났다. 

집에 가는 길에 딸에게 물었다."요즘 왜 자꾸 짜증이야?" 내 물음에 딸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왜~ 왜 자꾸 짜증 내는 건데? 화가 막 나는 거야?"라고 고새를 참지 못하고 묻는 나에게 "엄마, 나 사춘기인가 봐."라고 대답했다. 뜸을 들이고 말한 단어가 '사춘기'라니!!! 너무 웃겼지만 신중하게 말하는 아이의 태도에 웃음을 참고 "사춘기가 왔구나~ 우리 딸 이제 진정한 어른이 되고 있는 거네!"라고 하며 잡고 있는 손을 세게 잡았다. 아직도 이렇게 아기 같은 손, 보드라운 머리카락, 부러질듯한 팔뚝인데. 마음은 벌써 어른을 향해 가는 것이다. 그러면서 "친구들이 킹 받게 하는 말들은 참을 수 있는데."아이의 말을 중간에 자르면서  "그런데, 엄마가 뭐라고 하면 참았던 그 감정들이 올라오는 거야?"" 그런가 봐. 헤헤~"한다. 웃음에 딸바보인 나는 딸의 사춘기 짜증을 다 받아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봄이 되면 에버랜드에 가고 싶다. 튤립들도 볼 겸 환상의 나라로 입장했다. 날씨가 좋아서 그런지 대한민국 사람들 에버랜드에 다 모여있는 것 같았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과 북적이는 곳에 있는 게 오랜만이기도 하다. 

놀이기구 하나 타려고 해도 100분은 기본이었다. 에버랜드의 피날레 불꽃놀이까지 다 보고 집에 가려고 곤돌라를 기다리는데 하루종일 힘들다고 징징대지 않은 딸이 대견하게 느껴졌다. 작년까지만 해도 '다리 아프다, 힘들다.' 했었던 것 같은데 올해는 힘들단 말 한마디 없이 놀이공원을 즐겼다. 놀거리가 많은 즐거운 장소인데 놀이기구 기다리는 아이들은 모두 손에서 핸드폰을 놓지 못한다. 여기 저기 둘러봐도 어른부터 유모차 타고 있는 애기들의 손에는 핸드폰이 한 개씩 다 들려있다. 그중 우리 가족은 핸드폰 보지 않고 있었다. 아이도 핸드폰을 찾지 않았고 우리 부부도 핸드폰을 보지 않고 서로의 얼굴을 보며 기다림을 즐겼다.  

 "가윤아, 우리 오늘은 짜증 한번도 안냈네? 여긴 환상의 나라가 맞네~"라고 하니 딸은 빙그레 웃어주었다.

에버랜드 안에는 가족단위도 많지만 연인들도 많이 온다. 장미정원 불빛에서 다정하게 사진찍는 연인들을 보며 '젊음이 부럽다.'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 '그 젊음이 영원하지 않단다' 라고 질투 한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기 때문이다. 벤치에는 연인들이 붙어서 어쩔 줄 모른다. 그  모습을 곁눈질로 보면서 신랑이랑 눈빛으로 이야기했다. 옆에 딸이 신랑 귀에 대고 속삭였다. 나중에 신랑에게 뭐라고 했나고 물어보니 "아빠. 언니 오빠 있잖아 뽀뽀 8번이나 하는거 있지."라고 했다는 것이다. 안 보는 척하면서 우리처럼 보고 있었던 것이다. 

돌아오는 길에  "에버랜드 근처에 숙박업소가 이렇게 많았어?"라는 내 말에 우리 딸이 그 언니 오빠들이 이제 저 호텔에 들어가서 이불속에서 다 벗고 움~~~ 하면서 뽀뽀하고 그러는 거잖아."라는 기막힌 말을 했다. 

입을 쭉 내밀고 눈까지 감으면서  움~~~ 하는  뽀뽀하는 시늉을 내는 게 웃겨서 손뼉까지 치며 웃었다. 

"도대체 그런 건 어떻게 알았어?"라고 물었다. "뭐, 그냥."이라고 얼버부리며 대답했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어릴 때도 부모님이 알려줘서 알았던 것 아닌 것 같다. 내가 갱년기가 오는 나이가 됐듯 우리 딸도 자신의 시간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신랑이 짜증을 내면 아이가 "아빠도 갱년기야?"라고 묻는다. 우리 집은 "엄마도 아빠도 갱년기야. 너는 사춘기고, 우리 집 지금 전쟁이야. 사춘기랑 갱년기가 붙으면 갱년기가 이긴다는 거 잘 알고 있겠지?"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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