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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 미정 May 01. 2024

참기름 향기 솔솔 시금치나물 무침

요즘 다이어트 한다고 저녁을 굶고 있어서 그런지 밤이면 먹고 싶은 음식들이 많다.

'내일 아침에는 프렌치토스트 만들어 먹어야지.' 혹은 '내일 아침에는 계란간장밥을 먹어야지, 또는 '김치볶음밥 만들어 먹어야지.' 하며 잠이 드는데 어젯밤엔  희한하게도 참기름 향기 솔솔 나는 시금치 무침이 먹고 싶었다. 새벽에 배달 오는 로켓프레쉬를 연다. 시금치만 주문하면  금액이 맞지 않아 이것저것 욕망을 채워 넣는다. 일어나자마자 대문으로 달려가 주문한 물건을 확인한다. 그런데 막상 아침에 되면 시금치나물 말고 빵이 먹고 싶다. 아침부터 시금치나물 먹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게다가 누가 만들어 주는 것도 아니고 내가 만들어 먹어야 하니 진짜 너~~~ 무 귀찮다. 귀찮음의 이유로 시금치를 방치한다. 분명 먹고 싶어서 샀는데 냉장고에 들어간 지 벌써 4일째가 돼 간다. 냉장고를 여닫을 때마다  '저거 상하면 안되는데.'라는 마음의 불편함이 계속 따라다닌다. (저번에 애호박 전 해 먹는다고 샀다가 멀쩡한 애호박 버린 경험이 있기도 하다. )


이젠 더 이상 시금치를 냉장고에 두어서는 안 된다.



드디어 4일 만에 시금치가 냉장고 밖으로 나왔다. 세척하기 전에 시금치를 먹기 좋게 썰어준다. 

시금치를 손질하면서 주말에 신랑과 이야기했던 게 생각이 난다. 

"여보, 큰일이야. 가윤이는 맨날 저런 거나 먹고."라고 하니 

신랑이 "몸에 좋은 걸 어릴 때 먹지 않는 게 본능이야. 다 나이 먹으면 먹게 돼있어, 우리 어릴 때를 생각해 봐."라고 한다. 신랑 말을 듣고 보니 나도 어릴 적엔

녹색 나물, 빨간 김치는 먹지도 안았다. 엄마가 "딱 한 번만 먹어봐."라고 애원해도 절대 입을 벌리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내 몸이 원하고 있다. 어른들이 나이 들수록 입맛이 변한다는 이야기를 했었는데 어른들 말 틀린 게 없는 것 같다.

신랑과 나는 건강식으로 챙겨 먹으려고 하는데 아이에게 건강식 메뉴를 권하면 가뜩이나 짧은 입을 아예 닫아 버린다. 그래서 딸은 늘 가공식품을 먹고 딸보다 나이가 있는 우리는 신선식품을 먹게 된다. 


시금치는 단체급식에도 가끔 제공한다. 가끔 밖에 제공하지 못하는 이유는 가격이 비싸기 때문이다. 집에서 조금만 사 먹는 건 상관이 없지만 시금치는 보기보다 가격이 꽤 나가는 나물이다. 

시금치는 많이 산 것 같아도 삶으면 한 줌 밖에 안 되는 나물 중의 하나이다. 영양사는 일인당 g으로 발주를 한다. 콩나물이나 숙주나물에 비해 일인당 g 를 넉넉히 잡아야 한다. 그래서 나물로는 못 나가고 신선 제품 말고 그보다 훨씬 저렴한 냉동 시금치로 발주해 국으로 제공하곤 했었다. 잡채에도 시금치가 들어가면 맛있다는 것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이럴 때도 시금치 말고 부추로 대체해주었었다. 


나는 집에서 나 혼자만 먹을 것이니 300g만 샀다. 

나물은 두고두고 먹으면 맛없으니깐 2끼 정도만 먹을 수 있게 사면된다. 


이제 자른 시금치를 깨끗한 물에 여러 번 헹궈준다.

자 그리고 여기가 아주 중요하다.

나물의 맛을 좌우하는 것은 얼마나 삶느냐 하는 것인데 이런 것은 진짜 감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알려줘도 못한다. 대부분 설명하길 끓는 물에 넣었다 바로 빼라고 한다. 그렇게 밖에 말할 수가 없다. 

좀 더 익혀볼까 하다 그 '조금'이 넘쳐 나물이 죽이 되는 수가 있다.

시금치는 정말 끓는 물에 넣었다 빼주어야 한다. 이게 시금치 나물 맛있게 만드는 포인트이다.

많았던 시금치나물은 삶고 물기 빼고 나니 한 줌 나온다. 


많았던 시금치나물은 삶고 물기 빼고 나니 한 줌 나온다. 

만들고 나면 근사하지도 않은데 이거 하나 만든다고 이것저것 꺼내다 보니 설거지거리가 산더미 처럼 나온다. 나물 무침 자체로도 어려운 음식인데 원팬으로 할수 있는 요리가 아니기 때문에 만들려면 큰 마음을 먹어야 한다. 

이제 갖은양념을 넣고 조물조물 무쳐준다. 나물 맛은 참기름 맛이 크게 좌우하는 것 같다. 

엄마가 시골에서 짜온 참기름을 쪼르륵 따라 넣어준다. 

참기름 향기가 솔솔 나는 시금치를 만들다보니 엄마가 싸주던 김밥이 생각이 난다. 엄마는 김밥 안에 꼭 시금치를 넣었는데 어릴땐 시금치 넣는게 싫었다. 하지만 지금은 시금치 없는 김밥은 엄마 말 처럼 맛이 없다. 

그래서 나도 집에서 김밥을 만들때 꼭 시금치 넣어서 만든다. 딸아이는 기겁하며 빼고 먹지만 말이다. 


집게 손가락으로 하나 집어 맛을 본다. "음~~~ 이맛이다." 나는 어쩜 이렇게 간도 잘 맞추는지 모르겠다.

나물은 처음 무칠 때 간간하게 만들어야 나중에 먹어도 싱겁지 않게 먹을 수 있다. (이건 우리 단체급식 조리장님들의 팁이다.) 마지막으로 통깨를 솔솔 뿌리면 완성이다. 

오늘 아침에는 나만을 위한 시금치나물무침을 만들어 먹었다. 

나물 무친 김에 고등어도 굽고 김치전도 구워서 한상 근사하게 차려 먹는다. 왕의 밥상이 따로 없다.

아침에 아이가 등교한 후 여유로운 아침 시간이 좋다. 쫓기는 시간이 아니고 나만을 위해 쓰는 시간들이 소중하다. 회사 다닐 때는 아침 먹을 시간도 없었는데 지금은 이렇게 요리까지 해서 먹을 수 있다. 

식사 후 따뜻한 커피 한잔 마시면서 읽고 싶었던 책을 읽으면 여기가 무릉도원이다. 

암에 걸리고 이런 소중한 시간들을 얻었다. 건강을 잃고 다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시간이 달라지는 것 같다. 나에게 집중하는 이 시간이 참 행복하다. 

참기름 향이 솔솔 나는 시금치무침 덕에 아침 식사가 더 건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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