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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 미정 Jun 07. 2024

D-7일 내일 걱정은 내일 모레

다음 주 화요일이 되면 병원으로 입원하러 들어간다. 

날짜가 다가올수록 마음이 불안하다. 자려고 누우면 수술하는 장면을 상상한다. 전신마취를 해서 수술하는 과정을 보지도 못했으면서 바닥에 피가 흥건하게 떨어지는 상상, 다시 한번 상처 난 가슴에 칼이 다시 한번 그어지는 상상들 그런 생각들을 하다 보면  가슴을 들어낸 오른쪽은 감각이 없는데, 그 부위가 정말 아파오는 것 같다.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 잠이 잘 오지 않는다. 그럴 때는 상상의 꼬리를 자르고 자기 전에 봤던 재밌었던 동영상을 떠올린다. 그러나 심란한 마음은 꿈속에서도 이어진다. '가슴을 열었는데 암이 많이 퍼져있다.'는 둥 수술이 끝나고 회복하는 나의 모습이 꿈에 나온다. 다행히 꿈에서는 아픔은 없었다. 

생각보다 아프지 않아서 믿어지지 않은 상태로 꿈에서 꺤다. 이런 꿈을 며칠 동안 꾸고 있다. 다음날이 되면 다시 오지 않을 하루를 즐겁게 보내려고 한다. 최대한 즐겁게 지내보려고 바쁘지 않게 느긋하게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낮잠을 자기도 하고 평일날 맛있는 간식을 먹기도 한다. 

다시 밤이 되어 침대에 누우면 링거주사 맞는 부위에 통증이 느껴지는 것 같다. 3개월 전 병원에서 느꼈던 고통이 다시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하는데 왜 안 잊히는지 모르겠다. 

나는 아이 낳는 게 고통스럽고 무서워서 둘째는 꿈도 못 꿨었다. 이런 겁쟁이가 암에 걸렸으니 지인들이 다들 걱정했었다. 겁쟁이인 나는 어제도 꿈을 꿨다. 

 꿈에 자주 가는 소아과 의사 선생님께 "사실 제가 유방암에 걸렸어요."라고 고해성사하듯 말했다. 

의사 선생님이 꿈에 나에게 무서운 이야기를 하는데, 

"암 환자에게는 커피가 좋지 않아요. 혈액으로 퍼지면서 전이가 될 수 있거든요. 안 먹는 게 좋을 것 같아요."라는 이야기였다. 어찌나 무서운 말인지 눈이 번쩍 떠졌다. 꿈이라 다행이라 생각했다. 

음식이라는 게 먹지 말라고 하면 더 먹고 싶은 법이다. 일어나자마자 '이 좋은걸 먹지 말라고?' 하며 커피 한잔 내려 마셨다. 


저번에 엄마가 말했던 베란다 창문과 블라인드 정리했다. "집이 훤해야 복도 들어오지."라는 말이 마음에 남아서 큰 마음먹고 정리했다. 복은 모르겠고 집이 정말 환해졌다. 약 14년 만에 베란다 창문을 열게 되었다. 정리해 놓고 보니 기분이 좋았다. 뒷베란도 정리도 끝냈고 앞베란다에도 버리지 못한 다 죽은 화분과 어항도 재활용 쓰레기통으로 버렸다. 이렇게 쉬운 일을 왜 그동안 못했는지 모르겠다. 

이번에는 주방 수납장에 안 쓰는 냄비, 프라이팬, 텀블러, 반찬통, 안 쓰는 그릇등을 싹 정리해서 버렸다. 

맨날 쓰는 것만 쓰는데 왜 그동안 매번 수납장의 문이 안 닫히게 썼는지 모르겠다. 수술날이 다가와 내가 가질 수 있는 행운을 모두 끌어 쓰고 싶어 안 하던 짓을 했는데 해놓고 보니 행운이고 뭐고  제일 잘한 일 같다. 

마지막으로 정리해야 할 부분은 옷장이다. 옷장은 계절이 바뀔 때마다 정리하는데 계절이 또 바뀌고 있다. 

정리할 적마다 안 입는 옷은 버릴 것이라고 마음먹는데 '이건 이래서 안 되고 이건 아까워서 안되고'하는 것들 버리지 못하게 한다. 옷장 정리는 수술하고 해야 할 듯하다. 

수술 전에 가장 중요한 임무는 컨디션 관리이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감기 걸리지 않게, 최고로 좋은 컨디션으로 수술장으로 들어가게 만드는 것이 집을 정리하는 것보다 가장 중요한 일이다. 

어제 친한 친구가 전화와 통화를 했다. 다음 수술 잘하고 오라는 안부 전화였다. 

"항암 하는 친구는 어때?"라고 내가 물었다. "3번 항암 했고 이젠 다 끝났지. 방사선만 남았다고 하더라고. 매일 약 먹어야 한다는 것에 속상해하더라."라고 친구가 말했다. 

약을 먹어서 괜찮아지는 병이라 다행이지 않냐고 항암을 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항암 치료도 안 되는 환자들도 있는데 그런 것에 비하면 우리는 행운이었다고 힘든 항암 끝낸 것도 축하한다고 꼭 전해주라고 했다.

이런 내 말은 들은 친구가 "울보가 어떻게 이렇게 바뀐 거야?"라고 했다. 그 물음에 나는 "몰라~"라고 했다. 

불행하게 생각하면 한도 끝도 없다. 뭐가 됐는 다행이라고 생각하기로 결심한 것 같다. 

법륜스님에게 유방암 3기인데 전이와 재발이 걱정된다는 고민을 상담하는 유튜브를 보았다. 

나는 1기임에도 전이와 재발을 걱정하고 있던 터라 얼른 클릭해 보았다. 법륜스님의 말은 마음을 편안하게 먹으라는 것이었다. 40살이 넘었으면 살만큼 살았다고, 본인이 없더라도 아이는 아이대로 잘 클 것이고 남편도 잘 먹고 잘 살 것이라는 것이다. 해볼 것도 다 해보지 않았냐고 했다. 그런 말에 웃음이 나왔다. 

내가 아니면 안 되는데라며 내가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 꼭 쥐고 있어서 이런 고민을 하는 것이었다. 

내려놓자고 하면서 돌아보면 정작 아무것도 내려놓지 못한 것이었다. 

욕심을 많이 부리면 화를 불러오는 것이니 힘 빼고 내일 걱정은 내일모레 하는 걸로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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