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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 미정 Jun 13. 2024

유방 수술 하루 전

드디어 D-DAY 

며칠 전부터 편안한 마음을 갖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바라는 기도는 하지 말라고 했는데 부족한 나는 또 바라는 기도를 하고 말았다. 

기도를 하다 보면 해달라는 게 많아진다. 욕심이 과해지는 내 모습에 웃음이 난다.

시간이 다가올수록 빨리 끝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이상하게 이럴 땐 시간이 더디게 가는 것 같다. 이번 수술은 암 수술을 할 때 보다 확실히 긴장감은 덜 한 것 같다. 

어젯밤, 다음날이 무섭다고 신랑에게 이야기했다. 내 말에  "이제 마지막이야. 좋은 일만 남았어. 행복하게 생각하자"라며 "마음 푹 놓고 자."라고 위로를 해주었다. 신랑 말을 들이니 불안이 가라앉았다.

아침부터 친구들에게 연락이 온다. 수술 잘하라는 응원의 전화 그리고 문자들이다. 

아무 걱정하지 말라고, 모든 게 다 잘될 것이라고 아낌없는 응원을 해준다. 어릴 때부터 다니던 절에 스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기도 열심히 할 테니 아무 걱정하지 말라고 해주셨다. 살면서 이런 끊임없는 응원을 받을 수 있는 날이 또 있을까 싶다.

딸은 어젯밤부터 의사가 실수해서 내가 죽을까 봐 걱정하다가 '설마 그럴 일 없겠지'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딸은 어리지만 스스로 불안을 낮추는 방법도 알고 있다. 어제는 생전 처음 들어보는 "엄마, 보고 싶을 거야.'라는 말을 들었다. 그러면서 "수술, 안 할 수는 없는 거야?"라고 묻는다. 그럴 수만 있다면 나도 안 하고 싶다고 말해준다. 누구보다 내가 제일 하기 싫다고 말해준다.  

나 하나 때문에 모든 가족들이 힘이 든다. 아이는 아이대로 어른은 어른대로 말이다. 가족들에게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 든다. 

저번에 입원 가방을 싸봤기 때문에 이번에 어떤 게 꼭 필요하고 어떤 건 소용없는지 확실히 알고 있다. 

꼭 필요한 준비물은 이어폰, 노트북, 쿠션, 미니선풍기, 마이비데가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 나머지 세면도구와 편안한 슬리퍼 이 정도만 챙기면 충분하다. 내 짐도 싸야 하지만 아이짐도 챙겨놔야 한다. 옷가지 몇 개를 넣으니 작은 트렁크 하나가 꽉 찬다. 

나의 컨디션도 좋다. 감기 기운도 없고 머리도 아프지 않다. 모든 준비는 끝났다.

예전에 학교에서 시험을 칠 때 혹은 아이를 낳을 때는 내가 잘하는 것 중요한데 지금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현재 제일 중요한 건 의사 선생님의 컨디션이다.

딸의 말처럼 "될 대로 돼라."라고 마음을 푹 내려놓는 수 밖에는 없다. 

모든 것은 칼을 쥔 선생님의 손에 달렸다.

병원에 도착하니 오라는 곳이 많다. 내일 수술을 위해 준비해야 할 것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보이는 간호사 선생님들에게 "무서워요."라는 말을 "안녕하세요."보다 더 많이 했다. 

내가 두려워할 때마다 선생님들은 "저번 수술보다 괜찮아요." 하며 안심시켜 주신다. 

오랜만에 만나는 주치의 선생님도 "힘들고 어려운 수술도 하셨는데 이번엔 정말 괜찮을 거예요."라고 해주신다. 내일 있을 가슴 성형을 위해 선생님은 나의 가슴에 파란 펜으로 여기저기 쓱쓱 그림을 그린다. 

수술의 대한 설명은 충분히 들었기 때문에 따로 궁금한 것은 없었다. 

내일 수술 시간은 10시라고 했다. 시간은 또 정직하게 흘러갈 것이다. 외래를 마치고 병동으로 오는데 엘리베이터에서 주사 전문 선생님을 만났다. 공포의 시간이 또 온 것이다. 

이번에도 역시 팔에 주사를 맞을 수 없어 발에 주사를 맞아야 한다. 역시 전문가답게 수월하게 주사까지 클리어했다. 




시간은 벌써 18시 저녁시간이 되었다. 오늘 반찬은 가지밥이었다. 출출한 찰나에 맛있게 먹었다. 

병실에 있지만 현실이 맞나 싶다. 걱정하던 그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고통이 없길 바라진 않지만 좀 덜 아팠으면 하는 욕심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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