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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 미정 Jul 02. 2024

내안에 내가 너무도 많아

유방암 환자에게 가장 안 좋은 건 술 먹고 늦게 자는 것, 그리고 우유라고 한다. 

술은 안 마시니깐 참을 수 있는데 우유는 대체 어떻게 안 먹을 수 있을까?

아침에 시리얼에 우유 말아먹는 것도 좋아하고, 라테도 미치도록 좋아하는데 말이다. 

그리고 먹지 말라고 하면 더 먹고 싶다. 아침에 시리얼 먹는 것은 좀 참아보고 라테는 두유나 아몬드 우유로 변경해서 먹는다. 변경해서 먹을 수 있는 커피 전문점이 많아서 참 다행이다. 카페인은 될 수 있으면 오전에 한잔 마시려고 하는데 당이 미치도록 당기는 날에는 의지가 꺾여 버린다. 아프지 않았을 때는 살찐다고 먹는 것을 조금씩 먹었는데 암환자가 되고 보니 가려 먹어야 하는 게 많아 속상하다. 

하지만 그 외에는 스트레스 제로인 상태로 지낸다. 이렇게 잔잔한 날들이 이어진다고? 하는 평온한 날들이다. 그래서 유방암 환자라는 사실을 믿고 싶지 않다. 

하지만 매일 아침 흉터 밴드를 가슴에 붙일 적에 샤워할 때 이것이 꿈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 준다. 가슴확장기를 빼고 보형물을 넣으면 예전과 같은 느낌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었다. 

하지만 역시나 기대했던 만큼은 아니었다. 가슴 확장기가 있을 때보다는 훨씬 낫지만 예전의 내 가슴의 느낌은 전혀 아니다. 언제쯤 끊어졌던 신경이 돌아올까. 오른쪽 팔과 등에는 여전히 감각이 없다.

유방암 환자는 서지브라라는 것을 하고 있는데 낮에 운동하다 보면 왼쪽 가슴에서 땀이 배까지 주르륵 흐른다. 그런데 수술한 오른쪽 가슴은 그 정도로는 땀이 나지 않는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반드시 그리고 분명히 이 가슴도 적응이 될 것이다. 

적응이 되긴 될 건데 현재는 불편한 게 사실이다. 이만하면 괜찮다고, 이 정도라 감사하다고 했었는데 살만해져서 그런지 암환자가 아니었던 그 시절로 가고 싶다는 생각을 아직도 많이 한다. 

영양사 구인구직란을 가끔씩 들어가 본다. 그동안은 맘에 드는 자리가 없었는데 드디어 마음에 드는 자리가 나왔다. 예전 같으면 돌아보지 않고 이력서를 썼을 것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다 해낼 자신감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내 몸 상태를 떠올리면 한발 물러서게 된다. 이런 나의 모습이 슬퍼진다.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몸이 이러니깐 다음으로 미뤄야 하는 이런 나의 모습이 싫다. 

현재 나의 몸의 컨디션은 누구보다 좋다. 아니 늘 좋다고 생각했었다. 피곤에 절었으면서 '나는 하나도 피곤하지 않다.'라고 혼잣말을 하며 나를 속이며 살았다. 몸은 과부하가 걸렸는데 정신이 아니라고 밀어붙였다.  그래서 암에 걸렸나 싶다.

지금 일하지 않으면 정작 하고 싶을 때 나이 제한이나 경력단절로 아무것도 못할까 봐 앞선 미래를 걱정한다. 

몸이 나아지면 다시 일을 시작하라고 한다. 지금으로서는 그날이 언제인지 궁금하다. 일 년 후를 말하는 건지 혹은 오 년 후를 말하는 건지 말이다. 유방암은 완치가 없는 병이기 때문에 사실 마음이 많이 막막하다. 하지만 지금은 우주도 가는 시대니 깐 암을 정복하는 날이 반드시 오리라고 좋게 생각하고 싶다.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라는 말이 있다. 

오늘은 비가 왔다. 평일 비가 오는 날 나는 집에서 시원한 빗소리 들으면 집에서 쉬었다. 매일 가는 운동도 쉬고 낮잠도 잤다. 그리고 해야지 해야지 하고 미뤄놨던 묵은 때 청소도 끝냈다. 

개운하게 청소를 마치고 시원한 콩국수도 만들어 먹었다. 이정도면 오늘치 행복의 빈도를 꽉 채운샘인다.

입원해서 병원에 있을 때 씩씩하게 걷는 사람이 부러웠는데 이젠 뛰는 사람이 부럽다. 

더 욕심내지 말아야 하는데, 자꾸만 욕심이 난다. 내 안에 내가 너무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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