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추석에 큰집에 가면 온 가족들이 둘러앉아 송편을 만들었다.
만두에 비해 송편을 만드는 것이 훨씬 어렵게 느껴졌다.
만들기 어렵다고 툴툴대는 나에게 나보다 5살 많은 언니가 송편을 쉽게 만드는 방법을 알려줬다.
반죽 안에 콩이랑 깨를 넣고 반으로 접어 꼭꼭 누르고 손으로 한번 쥐었다 펴면 된다고 했다.
정말 그렇게 하니깐 내가 만들고 싶었던 송편의 주름 모양이 저절로 표현되었다.
송편을 빚을 때마다 큰엄마는 "송편 예쁘게 만들면 예쁜 아기 낳을 수 있어."라는 말을 해주곤 했었다.
미래의 나는 결혼을 선택할지도 혹은 안 할지도 아이를 낳을 수도 낳지 않을 수도 있는 선택지가 있었는데 어린 시절 나는 결혼하고 예쁜 아이를 낳고 싶어서 큰엄마 보라고 송편을 최대한 예쁘게 만들었었다.
그렇게 빚은 송편은 금방 쪄져 나온다. 방금 나온 따끈따끈한 송편에 붙어있는 솔나무 솔들을 떼어 한입 베어문다. 한입 먹었을 때 콩이 나오면 실망이고 깨가 나오면 성공이다.
하지만 송편에는 늘 깨보다는 콩이 많았던 것 같다. 한입 먹고 콩이 나오면 먹지 않고 슬그머니 아빠 입에 넣어줬었다. 추석에 송편을 먹으면서 세상에 맛있는 떡이 많은데(예를 들어 꿀떡) 왜 콩이 들어있는 송편을 먹어야 하나 생각했던 것 같다.
그 이유는 지난 계절 곡식을 잘 여물게 해 주셔서 감사의 의미로 송편을 만들어 먹었다 한다.
추석에 뜨는 보름달 같은 둥근 모양이 아닌 송편의 모양이 반달인 이유는
반달은 시간이 지나면서 보름달이 되기 때문에 조상들은 송편을 반달로 빚으면서 앞으로의 삶이 행복으로 채워지길 기원했다고 한다.(식생활교실 참고)
어른이 된 나는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았다.
추석 때면 큰집으로 안 가고 시댁으로 갔다. 어린 시절 큰집에서 내가 할 일은 크게 없었다.
그저 웃기만 해도 어른들이 "예쁘다 예쁘다"라고 해줬는데 결혼하고는 웃기만 해서는 안된다.
명절에 며느리는 할 일이 많다. 그래서 그런지 명절오기 한 달 전부터 정신적 스트레가 생기는 것 같다.
결혼하지 않았을 때, 신혼일 때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던 <명절 끝나고 갈라서는 부부들>의 뉴스가 눈에 띈다.
요즘은 시댁 어르신들의 눈치보다는 아이들에게도 해서는 안 되는 말들이 인터넷에 밈으로 떠돌고 있다.
여기저기 눈치 보느라 바쁜 세대인 것 같다.
시댁은 다행히 추석에 송편을 손수 빚진 않는다. 대신에 차례상에 올릴 여러 종류의 전들을 만든다.
기름에 노릇하게 구운 동태 전, 동그랑땡 전, 꼬치전등등
그 외에 탕국도 끊여야 하고 산적도 구워야 한다. 만드는 것은 둘째치고 이 많은 음식을 하려면 시장도 봐야 한다는 사실. 이 힘듦을 남자들은 몸소 이해할까?
앞서 말했듯 추석에 먹는 음식들은 모두 열량이 높다.
그래서 추석이면 뉴스에서 어떻게 하면 열량을 줄일 수 있는지에 대해서 정보를 준다.
명절 음식의 대부분이 기름에 튀긴 음식들이 많아서 열량이 높을 수밖에 없다.
어쩔 수 없을 땐 스트레스받지 않고 즐겁게 먹는 것이다.
그리고 그다음은 또 즐겁게 운동하면 된다.
앞서 추석의 추억 이야기 중 송편이 나왔다. 송편 칼로리 낮추는 꿀팁을 말하자면,
깨송편 말고 콩송편을 만들어 먹는 것이 칼로리를 줄이는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
이제는 딸아이가 콩 송편이 나오면 내 입에 넣어준다.
아이를 낳고 어릴 때 그렇게 먹기 싫어했던 콩 송편의 맛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귀향(歸鄕) 길은 언제나 내 마음처럼 꽉꽉 막혀있지만
귀경(歸京) 길은 막혀도 프리패스이다. 엔딩을 다 알고 있으니 올해 추석도 힘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