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 미정 Sep 06. 2024

걷기로 마음까지 치유하기

유방암 수술 이후에 병원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걷기밖에 없었다. 의사도 누워있지 말고 힘들겠지만 복도를 걸으라고 했다. 나와 함께 같은 병동에 있던 여든이 다된 대장암 수술한 할머니도 방귀가 나오려면 힘들어도 걸어야 한다고 했다. (그래야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입원한 환자들은 모두 똑같은 환자복을 입고 링거대를 질질 끌면서 걷고 또 걷는다. 나도 그들의 뒤를 따라 눈물을 질질 흘리며 한참을 걸어본다.

몸이 안 좋아 병원에 있다 보니 건강하게 걷는 사람들이 부럽게 느껴졌다. '나도 얼른 퇴원해서 씩씩하게 두 팔을 흔들면서 걸을 거야.'라고 다짐했다.

의사 선생님 말대로 열심히 걷다 보니 밤이 되면 손에 붓기가 하나도 없이 쏙 빠져있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오늘은 복도 왕복이 힘들지만 내일은 복도 왕복을 5번도 할 수 있게 몸이 회복이 된다. 걷는 게 가장 좋은 운동임을 몸으로 느끼게 되었다.


퇴원 후에도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회복을 위해 열심히 걸었다.

시간이 지나 폭염절정인 여름이 왔다. 더위 앞에는 장사 없다.

아침이고 저녁이고 걸을 수가 없는 지경이 되었다. 운동은 해야겠으니 헬스장 한 달 이용권을 끊었다.

헬스장은 쾌적함 그 자체였다. 에어컨과 선풍기가 여러 개 돌아가서 운동하면 덥긴 하지만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문제는 헬스장 러닝머신에서 걷다 보면 '시간이 이렇게 느리게 간다고?' 하는 느낌이 든다. 멍 때리고 유튜브 볼 때는 시간이 순삭인데 러닝머신 위에서는 마치 시간이 멈춘 것만 같다. 공원을 걷다 보면 시간을 잊게 되는데 러닝머신에는 똑딱 되는 느리게 가는 시간만 잘 보인다.


더위는 가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헬스장 두 달째.

이젠 헬스장까지 걸어갈 엄두도 나지 않는다.

하지만 몸의 회복과 나의 건강을 위해 모자를 눌러쓰고 나간다.

헬스장에 가는 것부터가 벌써 운동이다. 땀이 비 오듯 난다. 늘 그렇듯 귀에 이어폰을 꽂고 열심히 걸어본다.

예전에는 러닝머신 타면서 텔레비전 보는 분들이 많았는데 요즘에는 거의 텔레비전 안 보고 핸드폰들을 본다. 또 달라진 풍경은 아주머니들은 보통 러닝머신만 많이들 타고 가셨는데, 지금은 근력운동을 다들 열심히 하신다. 나이가 좀 많아 보이는 아주머니가 데드리프트 근력운동 하는 걸 거울로 보고 흠칫 놀랐다.

나는 그분보다 훨씬 젊지만 절대 사용 못하는 근력운동이다. 예전에는 러닝머신 차례를 기다려야 했었다면 요즘에는 근력기구들의 차례를  기다려야 한다.


오늘은  정말 가기 헬스장 가기 싫다. 뭐 매일매일 가기 싫다.

매일 하는 운동을 하지 않으면 그날 밤이 찜찜하다.

'헬스장 가면 뛰지 말고 살살 30분만 걷다 내려오자. 나는 유방암 환자잖아, 너무 무리하면 못써.

운동이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는 거야.'라고 마음으로 타협하고 나의 몸뚱이를 끌고 나간다.  

그런데 이상하게 막상 헬스장에 가면 뛰고 싶어 심장이 뛴다. 한술 더 떠 '10분만 더 하면 40분이나 타는 거잖아.'라면서 마음이 또 나에게 말을 한다. 그럼 나는 홀랑 넘어가서 40분을 타고 내려온다.

땀에 흠뻑 젖은 내가 너무 멋있다. 절대 못할 것 같았는데 또 해냈다.

매트에 누워 또 못할 것 같은 윗몸일으키기를 한다. 그럼 또 몸이 일어나 진다.

이렇게 나는 매일 만보씩을 차곡차곡 쌓아둔다.


암에 걸리기 전에는 몸과 마음이 하나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몸이 피곤하다고 말해도 정신이 나약한 거라 생각하고 나를 밀어붙였다.

암에 걸리고 나니 몸이 안 좋으면 정신까지 피폐해지는 것을 느꼈다.

정신이 피곤해지지 않게 이제는 걷기로 마음까지 치유하고 있는 중이다.




며칠 전 시골에 있는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몸은 어떠냐는 안부 전화였다.

그러면서 걷기 운동의 좋은 점을 설교했다. 엄마는 시골에서 토마토 농사를 짓고 있는데 농사 후에 걷기 운동을 따로 한다고 했다. 걸은 날과 걷지 않은 날의 몸의 상태를 말해주면서 뛰지 말고 열심히 걸으라고 했다.

비닐하우스에서 토마토 농사짓는 것만으로 피곤할 텐데 걷기 운동까지 한다는 부모님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매일 게으름 피우고 싶었던 내가 부끄러웠다.


딸이랑 소파에 누워 뒹굴뒹굴하던 여름방학 때.

"엄마 진짜 운동 가기 싫다."라고 딸에게 말했다.

딸이 "엄마, 운동 가지 마. 공원 가서 운동해도, 헬스장 가서 운동해도 맨날 뚱뚱해."라고 한다.

'너 T야?'

딸 팩폭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작가의 이전글 여름밤 오이마사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