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러너의 운동일지
MBTI 검사를 하면 J가 나온다. 계획형 인간이라는 것이다. 계획은 특정 부분에만 하는데
여행에는 계획을 세우지 않지만 나의 미래, 나의 꿈을 위해 오늘 하루 해야 할 일들을 계획하고 리스트업을 해둔다. 정리해 둔 리스트업을 지우지 못하면 참 많이 불편하다.
불편한 감정을 느낄 것을 내가 제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시간이 없어 못할 것 같은 일은 애초에 적어두지 않는다. 나는... 지독한 병에 걸린 것 같다. 목표가 없이는 못 사는 병 말이다.
모든 것에는 장단점이 있듯 이 병이 나를 항상 숨 막히게도 하지만 나를 살게 하기도 한다.
유방암으로 병원에 입원했을 때 하루도 빠짐없이 블로그에 나의 병상일지를 적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삶의 의욕이 없어 마음이 더 힘들기 때문이다. 이병은 유방암 보다 훨씬 지독하다.
뛰겠다고 마음먹었으니 목표가 있어야 한다.
한 달 후에는 2킬로를 뛰어보겠다는 목표가 아니라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는 것이다.
고작 1킬로밖에 못 뛰는 주제가 마라톤에 나간다고 하니 신랑이 콧방귀가 아주 크다.
그러다 3월에 마라톤 대회가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빨리 신청하지 않으면 조기마감 될 수 있어요."라는 말과 함께 링크가 왔다.
달리지도 않는데 심장이 뛰기 시작한다. 이런게 바로 도파민이 이라는 건가? 싶었다.
고민됐다. 정말 내가 할 수 있을까? 나를 믿지 못했다. 나 자신을 내가 제일 믿어줘야 하는데 나를 나를 항상 의심한다. 정말 해낼 수 있냐고 묻고 또 물었다.
나에 대한 의심보다는 역시 '도파민'이라는 것이 훨씬 세다. 참가신청서와 참가비 모두 완료했다.
계속 가슴이 뛰었다. 피니쉬 라인에 손을 번쩍 들면서 들어오는 내 모습을 상상한다.
도파민이 분출된다.
3월에 있을 대회 준비를 위해 내 발에 잘 맞는 러닝화도 사고 양말도 구입해줘야 한다. 신던 신발과 양말을 신고 뛰다 보니 쓸려서 그런지 물집이 장난 아니다.
요가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 지하철을 타지 않고 한 정거장 거리를 뛰어보기로 했다. 내 팔에는 요가매트가 있지만 생각보다 뛸만했다. 사실 집까지 뛸 자신은 없었다. 마음속으로 저~~~ 기 보이는 횡단보도까지 뛰자 하고 달렸더니 정말 딱 그만큼만 뛰게 되었다. KM를 확인하니 1.5킬로였다.
다시 터덜터덜 걷는데 요가 수업 때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떠올랐다.
"매트 끝 보다 더 멀리 봐야 멀리 뛸 수 있어요."라는 말을 했다. 요가에 필요한 동작을 설명할 때 하신 말씀인데 내 가슴이 팍 하고 박혔다.
'목표는 역시 높게 잡아야 하는 거야'라고 확신했다. 그래야 목표에는 못 가있어도 그 근처에는 다다를 것이다.
요즘 나는 마음의 기준점을 늘 하향조절하고 있었다. 유방암 수술 했으니 몸을 아껴야 해. 쉬어야 해. 라면서 말이다. 그러다 자괴감에 빠지기도 한다. 유방암에 걸려서 이것도 못하고 저것도 못한다고?라는 생각이 같이 든다. (진짜 어쩌란 말이야...)
뭐든 급히 서두를 것 없이 천천히 끝까지만 하면 된다.
사람의 몸은 모든 것에 적응하게 되어있고 애쓰고 노력할수록 배신하지 않는 것 같다. 달팽이처럼 천천히 뛰지만 저번보다는 500M 더 뛰었으니 만족해 본다. 욕심내지 말고 조금씩 해내보자!